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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9일 08시 25분 등록


일요일 새벽의 바닷가는 쓸쓸 하리 만큼 한적했다. 일출시간이 지나 해는 떠올랐지만 짙은 구름 속에 숨어버린 탓에 바닷가는 적당히 어둑했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는 바닷가를 천천히 걷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눈은 졸리지만 정신은 청명하게 맑았다. 토요일 오전에 시작한 행사는 저녁까지 이어졌고 밤늦게까지 마신 술도 부담스러웠다. 부산스러웠던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달래줄 만큼 새벽바다는 고즈넉하고 정겨웠다.
모래톱을 타고 줄줄이 누워있는 하얀색 조개껍데기는 이곳이 바다임을 강조하는 듯 하다. 모래사장을 조금씩 넓혀주면서 바닷물은 천천히 빠지고 있었다. 작은 파도가 작은 바위에 부딪치면서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는 듯 조용히 철썩거렸다. 적당한 크기의 철썩거림이었다. 새벽의 바닷가, 천천히 빠지는 바닷물, 하얗게 모래사장을 덮고 있는 조개껍데기, 바다 위에서 가끔씩 우는 바닷새, 바다를 가르며 일 나가는 어선… 새벽 바다의 풍경을 만들고 있는 모습들은 정겹고 마음에 들었다. 바닷물과 모래사장이 만나는 곳을 따라 걸었다. 모래사장은 그리 크지 않아 한눈에 들어왔고 걷기에 좋았다.

천천히 모래사장을 걷는 발길 앞에 바쁜 듯 가로질러 가는 작은 게가 눈에 잡힌다. 게는 옆으로 바쁘게 가고 있었다. 열심히 발길을 옮기는 게는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옆으로 가는 길이었다. 앞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옆으로 가는 부지런함. 게를 보니 부지런히 읽고 쓰는 요즘의 부산함은 게처럼 옆으로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답답함. 그런 답답함이라면 게가 아니라 조개껍데기겠지. 아무리 몸을 움직여 봐도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그런 답답함.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고슴도치 컨셉을 말하고 있다.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일, 경제엔진을 움직이는 것, 깊은 열정을 가진 일. 그 세 가지 원이 겹치는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게 짐 콜린스의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그런 일이 있는가? 지금 하는 일이 그런 일인가? 앞으로 하려는 일이 그런 일인가? 잘 모르겠다.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지금 그런 일이 있는지,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옆으로 부지런히 걷고 있는 게처럼 부산을 떨고 있지만 정작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정신없이 걷다 어느 순간 좌우를 돌아보고 당혹해 할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은 새벽의 바닷가에서 떠오른 짐 콜린스는 그리 반갑지 않았다. 이렇게 고즈넉하고 정겨운 바닷가에서 짐 콜린스라니. 차라리 어제 저녁에 먹은 시원한 조개탕을 떠올리는 게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짐 콜린스의 말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고슴도치 컨셉을 떠올리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모래사장엔 조개껍데기가 사라지고 고슴도치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고슴도치 컨셉을 조개탕 국물에 밀어 넣고 익사를 시켜봤지만 고슴도치는 꽤나 끈질겼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새벽바닷가에 조개와 게만 다니라는 법이 있나. 고슴도치도 기어 다니고 하는 거지.

모래사장 한쪽 끝에 있는 바위 앞에는 여인네 둘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다.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두 여인네는 마치 정물처럼 서 있다. 넓지 않은 모래사장을 돌아 나왔다. 날은 점점 밝아오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바닷가를 찾고 있었다. 바닷가를 벗어나도 고슴도치는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결국 고슴도치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슴도치와 마주 서야 할 것이다.
하루가 지났지만 행사는 아직도 절반이 남아있고 숙제는 절반 이상이 남아있다. 옆으로 걷든 앞으로 걷든 걸음은 계속 옮길 일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느 순간 플라이휠이 날아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고슴도치가 사라지고 쓰린 속을 달래줄 미역국이 떠올랐다. 역시 옛말은 틀린 게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IP *.6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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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9.29 19:27:20 *.244.220.254

ㅋㅋㅋ 웃긴다~
짐 콜린스 때문에 혼자만의 서정을 누리진 못하셨군요. 나쁜 짐! 
생각한 것 보다 김훈스럽게 까칠하지는 않으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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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10.01 22:19:54 *.37.24.93
도서관에서 그 책보다가 고슴도치컨셉 마음을 들켰습니다.
순간 이것을 풀어쓰면 꽤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으로 와 밤을 새워가며 써나갔습니다. 막혔습니다.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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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10.02 21:13:02 *.160.33.149

  왜 물러섰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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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16:22:55 *.64.21.2

뒤로 물러섰더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네요
나아가자니 길이 안보이고
물러서자니 길이 없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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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10.03 23:12:46 *.36.210.239

만약에 누군가 창에게 금고나 자물쇠를 맡긴다면 그는 오래 잘 지켜줄 것이다. 앞으로 가지도 않고 옆으로 가는 것도 싫어하며 뒤로 갈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까칠이라고 하기보다는 나와 같은 징징이 이기 때문에. 발끈 할라나?

그는 누구보다 오래 결코 뒤지지 않는 무지막지한 힘의 한편을 끼고 생존해 왔다. 그것의 허상과 위력을 알아서 이내 짜부되고 말았을까? 세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과 위치의 어느 점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것을 감지 하지 못하는 듯하다. 지나친 겸손에 때로 자기 비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무지하게 많은데 자신의 위치도 능력도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으며 주린 배만 움켜진 채 허허로이 주저 앉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렇다. 그는 정직한 소시민의 울먹임을 갖고 있다.

그는 짐이 말하는 여명의 새벽 바다와 같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는데 인정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한번도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어보지 않은 까닭일지 모른다. 경제 엔진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관심은 어설피 파고들며 재테크 수준에 머물렀다 물만 먹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보다 관심만 있다면 경제 관념에 대한 성장엔진과 동력을 움직일 힘과 배울 여건이 충분하다는 것도 인정치 않을 지 모르겠다. 아니면 조금 시도해 보았지만 더 힘쓸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친 고단한 내력이 약간 있을지 모를 일이다. 깊은 열정을 가진 일, 아마도 속으로 이것만은 불안 불안하게 움켜쥐고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이따금씩 깊은 한숨과 뻐꿈 담배를 피워대며...

외소한 그가 앞으로 중년과 노년을 왕성하게 버틸려면 무엇보다 똥배짱 같은 똥배심부터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구보다 먼저 충실하게 다 만들어놓고 뒤에 가서 비 맞은 땡중처럼 궁시렁대는 버릇은 이류의 한탄일 것이다. 특종이 아닌 이류가 가늘고 길게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분수를 만족하듯 그릇은 키우지 않은 채 아래만을 내려다보며 욕망의 70%나 그 이하를 근근히 살아가는 길일까? 내 보기에는 그가 우리들의 스승님의 전철을 밟아 누구보다 근접하게 짐 콜린스가 말하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충분한 바탕이 있어 보인다. 그에게는 인간적인 따스함이 있고 세상 살이의 고단함에 대한 이해가 있다. 다만 양심의 경계를 조금만 더 확대하고 경영적 마인드만 좀 더 충실하게 보완한다면 그도 훌륭히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쉽지 않다. 바로 내 경우처럼.

그렇더라도 누구보다 확실하고 질기게 글에 대해 꿈만은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죽는 방법도 모르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당연하다. 이 땅의 거의 태반의 대다수의 가장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힌 채 허기진 욕망을 하나 둘 체념하며 근근히 살아가다 아쉬움을 토로하고는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

우리 각자는 저마다 하나의 꿈을 갖고 이 현실을 타파하고자 그 모든 망설임을 이기고 연구원에 합류했다. 이제 각자의 이빨을 갈아 칼을 차야 할 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는 싯귀처럼 더 깨지고 바로 그만큼만 더 나아가야 하는 정직한 성장일 것이기에 때로 지치고 버거워 숨차다. 이 짓거리가 언제 가속력을 붙여준단 말인가? 하고 우리는 수없이 되뇌인다. 하지만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다면 우리도 우리가 열망하는 스승님의 삶을 닮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나 그릇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노력한 만큼의 성취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평범한 한 중년의 사내가 주린 배를 웅켜잡고 똥배짱이 되어 겁없이 칼날을 휘저으며 날뛰는 꼴을 한 번 보고 싶다. 그 정도는 되야 내 친구라 할만하다. ㅋㅋ Mr. 까칠씨가 징징거림을 극복하는 날 위대한 그도 한껏 기를 펴고 통폼을 잡을 텐데... . 친구야, 아무대서나 벌러덩 나자빠지지 마라.. 꽃게도 아닌 것이. 인생 별거 있어? 라고 가보지도 않고 미리부터 닫지 말고 도대체 뭐가 있나 두둘이고 열어보자. 그대에게는 그대만의 특별한 무엇이 있을 것이다. 찾아내라. 인간아, 다음에 만날 때까지 숙제다. 매일 또 매일 생각하고 있어라. 안하면 내가 그대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잊지 마라. 어퍼컷이든 뒷발차기든 당해야 할 것이다. 술은 내가 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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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5 22:26:42 *.163.65.165
써니 선배야.
부끄럽고 고맙다.
내는 할말이 없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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