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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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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9일 20시 51분 등록

벽화.jpg



이름모를 골목길을 가다가 회색빛 벽이 죽욱 늘어선 것을 보았다. 끝나지 않을듯이 죽우욱 길게 늘어선 회색빛 벽. 희망을 말하지 않는 벽은 골목의 끝까지 늘어서 있다. 하물며 그 흔한 개구쟁이 아이들의 낙서조차 허락하지 않은 벽. 보통 저런 벽에는 ‘누구 누구는 누구 누구를 좋아한데요~~’ 뭐 이런 장난들이 섞여 있는 법인데…

상처받은 영혼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안에서 문을 꽁꽁 닫아 걸고 나오지 않는다.

조그만 창 조차 내지 못한채 빗장을 닫아 걸고 숨어든 영혼 같은 벽.

 

삶은 저런 벽 같은 것인가 보다 생각될 때가 있다. 저 절망 같은 회색빛이 도통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저 벽을 따라 가는 것이고 저 벽을 따라 가다보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죽어버리고 말 것 같은 때가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곧 알게 된다. 그 어둠의 시간이 지나 나즈막이 잔기침을 토해내듯 말갛게 깨어나게 될 것을…

투명게 부서지는 아침햇살과 조용히 불어오는 얕은 바람에 간간히 흔들리는 연두빛 여린 잎사귀를 틔우고 그곳에 꽃이 피어난다.

몸살 같은 그리움의 키가 자라 아이들의 까르륵 거리는 웃음을 담은 꽃이 피고

눈시울이 젖은 채로 지샜던 사랑이 모여 성숙한 사랑을 담은 꽃이 되고

칼날 같은 외로움은 철이 들어 칼날 같은 투지와 집념을 담은 꽃으로

기어다니는 벌레를 지나 스스로 자신을 가두어 두는 번데기를 지나 드디어 천상으로 날아오르는 나비를 담은 꽃이 피어난다.
IP *.161.25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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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10.01 22:39:42 *.37.24.93
저 꽃 이름이 뭐야...?


"칼날 같은 외로움은 철이 들어 칼날 같은 투지와 집념을 담은 꽃으로 "

외로움, 투지, 집념 이것이 다 칼날로 묘사됐네....
외로움이 칼날같았다면 투지와 집념은 망치쯤 되면 어떨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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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08.10.02 11:46:52 *.161.251.172

꽃이름 모름.
이것. 너무 너무 챙피했다.
하지만 더 나아질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며..
자책과 반성이 진보하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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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10.03 20:48:16 *.36.210.239

가을 이맘 때면 늘 사소하게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지금쯤 물들이면 늦게까지 손톱에 물들어 있어서 첫사랑이든 시험 합격이든 소망하는 일이 무난히 성취될 것만 같은 봉숭아, 그리고 꿈인지 맺힘인지 수줍게 오물어져 있다가 활짝 피어나는 분꽃, 우리집 화단에도 피어있으나 이름은 모른 채 무심히 지나치던 저 하얀 꽃...
작가는 왜 이 그림을 벽화에 담고 싶었을까?


글이 언제나 탄탄한 짜임만을 요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아름답게 할 수 있지만 언제나 우선해야 하는 것만도 아니다. 자신의 상태와 내면 세계에 대한 표현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울림이 퍼져나가며 의도를 공감할 수 있으면 문학으로서의 완성도와 품격보다 이미 질 높은 그 만의 나눔과 도움이 된다.

꼭 이러저러 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때로는 더 경계할 일이 아닐까? 더러 더욱 자유로워서는 안 될까? 수련기간 동안에 기성이나 혹은 모방을 흉내내듯 마음껏 표출하는 것이 두려운 눈치가 되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아무도 저자다울 수는 없다. 그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자의 마음대로 조리되지 않은, 더 먼저 작가의 숨겨진 뜻과 내포된 의지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글에는 의도된 연출이나 도식화된 흐름보다 일상의 때로 삶에 지치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할 때, 강한 인내와 불굴의 의지로 밝게 피어나고 픈 꽃과도 같은 작가의 열망이 살아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은 한가로울 때 실천하면 그만이다. 영상에 대한 저자의 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에 굳이 덧붙임이 필요치 않다고도 생각된다. 자유롭고 때로 거칠게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아마추어 시절의 보다 활력있고 순결한 내음은 아닌가?
 
"칼날 같은 외로움이 철이들어 칼날 같은 투지와 집념을 담은 꽃으로, 기어다니는 벌레를 지나  자신을 가두어 두는 번데기를 지나 드디어 천상으로 날아오르는 나비를 담은 꽃으로 피어난다. " 아마도 저자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기원하고 자신이 살아내고픈 삶의 여정일 것이다. 우리도 그녀의 의도를 알고 그 의지와 함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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