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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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의 기억 속에 ‘시작’이란 특별한 의미를 지닌 몇몇 순간으로 대표되는 단어입니다. 입학이나 입사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시작’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거창하기만 한 것들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이걸 하고 싶다’ ‘이거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순간에 내 안에서 무언가가 시작되었다고 해볼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입학, 입사와 같은 것들은 제 외부의 상황이 변화되면서 거기에 맞게 생활이 변합니다. 이런 시작은 알아채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내면에서도 행동의 변화를 주는 어떤 생각의 발견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시작들 중에는 길게 이어지지 않는 것들도 많습니다. 작심삼일만 가다가 완전히 잊히는 경우도 있고, 한 번 시도해 보아도 별로 얻는 것 없이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작심삼일을 매우 한심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올해는 운동을
꼭 가야지, 언어 공부를 시작해야지, 매일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동안 안 하던 일을 시작하는 것이니 갑자기 잘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시간도 쪼개
써야 하고 하는 방법도 찾아봐야 하고 무엇보다 나의 즉흥적인 생각으로 곧 별로 안 하고 싶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언어 공부를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것을 막상 실천에 옮기지 않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오히려
작심삼일로 끝날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말고 내 인생에서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에 관심과 노력을 쏟자고 생각하게 되지요. 저도 완성하다만 퍼즐 같은 작심삼일 수집러가 되는 것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심삼일로 끝나더라도 한 번 ‘해보고 싶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을 막상 시작해 보면 의외로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연쇄 식물망여서 저희 집에 들어오는 식물들은 95% 이상이 죽은 채로 나갑니다. 그런데 (지난 편지에도 있듯이) 집에 있는 나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화분을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위치를 바꿔주었습니다. 아직 누런 잎들이 절반이나 되는 비리비리한 식물들이지만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눈 마주치는 식물을 보며 집의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어쩌다 보니 삼일절 연휴에 친구를 따라 짧은 다이어트를 같이 시작하게 되었는데,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먹는 양이 줄고 바지가 잘 맞게 되는 수준은 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작은 시작들이 가져다주는 작은 성과들이 나의 일상에
신선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긴 습관으로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내가 마음먹은 무언가를 시도해 보고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를 한번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작은 시도의 결과들이 모여 나의 일상을 구성했다가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우리 인생은 시작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임을 사고, 플레이할
수 있는 플랫폼인 스팀은 대작 게임 세일을 자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하겠지 하고 게임을
사서 쟁여 놓지만, 현생에 치여서 실제로 게임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 번 게임을 시작하면 시간도 많이 들고, 클리어를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거기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선뜻 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과정으로
책을 사는 것은 좋아하지만 정작 독서를 꾸준히 하지 않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단
몇 챕터만이라도, 단 몇 장만이라도 우선 시작하십시오. 잘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생각보다 큰 즐거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잘 기억했다가 다음 작심삼일에 또 한 번, 그다음에 또 한
번 시도한다면 꽤 괜찮은 결과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것을 일단 시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