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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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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30일 09시 03분 등록
 

 

나에 공고 실습생 시절(1)


  20년 전의 일이다. 공업고등학교인 내가 다닌 학교는 3학년 2학기가 되면 현장 실습을 나가게 된다. 나는 그때 당시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2년 반을 써클 활동과 아르바이트로 보냈다. 졸업 후 어떻게 하겠다는 꿈과 목표는 사실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솔직히 그런 것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3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실습을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컴퓨터를 이용한 제도(CAD)를 할 실습생을 뽑는 회사가 있는데 관심이 있으면 와보라고 했다. 우리 반은 기계제도가 전공이어서 컴퓨터를 이용해 제도를 할 수 있으면 앞으로 좋을 것이라는 선생님의 유혹이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서 실습을 나가기 때문에 남아있는 아이들은 반도 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반 아이들 10명이 신청 했고 우리는 다음날 바로 그 회사를 찾았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홍대역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파트가 무너진 초유의 사태로 유명한 와우아파트 못 미처 회사 사무실이 있었다.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조그만 건물 이름은 하얀색의 샬롬 빌딩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반 아이들은 조금 긴장한 모습을 하고 그 건물에 들어섰다.


  우리를 맞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사장님이었다. 하긴 직원이라고 해봐야 컴퓨터를 배우며 경리를 하는 것 같은 여직원 한명이 전부였다. 사무실 집기는 새것으로 그동안 보아오지 못한 코발트색의 최신식으로 왠지 어색해 보였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컴퓨터는 달랑 3대가 전부였다. 한 대는 컬러모니터에 그 당시 최고기종인 선마이크로사의 SUN386 컴퓨터로 정말 처음 보는 최신기종이었고 2대는 286AT 였다. 그것도 컴퓨터 보급이 거의 되지 않던 우리나라에서는 나름대로 최신 기종이다.


  난생 처음으로 DOS라는 것을 배웠다. 아니 배웠다기보다 CD, RD, MD 라는 명령어를 차례대로 보여주는 것을 나는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하는 건지 몰랐다. 그리고 가르쳐 준 것은 몇 가지 더 있었는데 나는 알아먹지 못했다. 사장님의 시범은 5분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열심히 따라했다. 경쟁심이 별로 없던 나는 일주일 동안 컴퓨터를 한 번밖에 만져보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한번이라도 더 해보려고 하는 동안 나는 양보하기 바빴다.


  일주일 후 우리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반포의 컴퓨터 학원으로 출근했다. 사장님은 시험을 본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배우고 공부한 것에 대한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시험에서 꼴등을 했다. 뭘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잘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내가 정말 열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주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 것을 나는 하나도 몰랐다.


  다음날 사장님이 엄포를 놓았다.

  “너희들 실력은 회사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당분간 보수를 지급할 수 없다. 3개월 후 다시 실력을 테스트해서 그때 결정하기로 하겠다. 배울 사람은 남고 급여를 지급할 수 없으니 싫은 사람은 나오지 마라. 3개월 동안 점심은 먹여준다. 그것이 전부다.”


  사장님 말이 있고난 2주일 후 사무실에는 나 혼자 남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떠나고 없었다. 10명으로 가득 메워져 시끌벅적했던 사무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날 사장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날 사장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나의 거취를 물었다. 나는 계속하겠다고 했다. 급여는 사장님이 줘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때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장님은 아마 그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혼자는 쓸쓸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지만 나는 CD, RD, MD 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중에 학원에서 어린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것은 1시간 꺼리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속으로 창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님도 캐드를 잘 아는 것 같지 않았다. 함께 근무했던 경리 누나가 조금씩 가르쳐 줬는데 선을 긋고 그것을 자르는 것 이상은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CAD로 도면을 만들어 사업을 하겠다는 곳에서 CAD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같은 반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 연락을 한 건 승진이다. 2학기가 시작되면서 작은 건축업을 하시는 작은아버지 밑에서 집짓는 법을 배우겠다며 광주로 떠난 승진이가 한 달 정도 지나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막노동 일이 그리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컴퓨터를 이용한 최신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며 말 그대로 승진이를 꼬셨다. 승진이는 사장님과의 어색한 면접을 통과하고 그날부터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아니 일이 아니라 CAD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그 당시 회사에는 두 종류의 CAD가 있었다. 하나는 Versa CAD 였고, 다른 하나는 지금도 가장 많이 쓰고 있는 Auto CAD다. 우리는 Versa CAD로 도면을 그려야 했다. 그때부터 승진이와 나는 회사에서 살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2개월의 시간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가르침을 청할 직장 선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두꺼운 영문 매뉴얼 3권이 전부였다. 그나마 막힐 때 조금은 도움이 되었던 경리 누나도 처음 들어올 때와 조건이 다르다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퇴근할 때 잠깐 나왔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회사로 들어갔다. 일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퇴근시간도 빨랐다. 겨울이어서 꽤 추웠다. 다행히 회사 사무실 바닥은 카페트를 깔아서 히터를 틀고 신문지를 덮으면 그런대로 지낼 만 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으니 방법은 스스로 터득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CAD 명령어 메뉴 하나하나에 대해 매뉴얼을 찾아가며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치수를 넣을 줄 몰라서 종이에 제도를 할 때처럼 선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던 기억은 어이가 없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나중에는 선(Line)으로 이현세의 까치를 그리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아직 사장님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식 도면을 받을 수 없었고 사장님은 우리가 회사에 다시 들어와 밤을 새우는지 몰랐다.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이 오면 다시 사무실에서 나와 아침을 먹고 들어오기 때문에 한동안 아무도 눈치 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봐야 사장님이 전부였지만.......


  3학년 1학기 부반장을 재규에게 빼앗기기 전까지 줄곧 부반장이었던 이상무를 부른 건 그때쯤이었다. 그리고 아영이라는 여자 아이를 경리로 회사에 소개시켜주었다. 아영이는 합기도 체육관을 다니던 때 알게 된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서울의 명문 여상을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훨씬 좋은 직장으로 취직이 가능했는데 승진이와 내가 지내는 모습이 꽤나 재미있었는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승진, 상무, 아영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모여 일을 하면서 사무실 분위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사장님이 너희들은 소풍 온 것 같다며 역정을 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상적인 테스트는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사장님은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까지 사장님은 우리가 하루 20시간 정도를 2개월 동안 컴퓨터 앞에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정식 도면을 주고 그려보라고 했다. 드디어 도면을 받은 것이다. 정말 좋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사장님은 일을 받으러 가겠다며 들고 갈 도면을 그리라고 했다. 청사진으로 된 건축도면이었다. 승진이와 나는 한 장씩 밤을 새워 열심히 그렸다. 상무는 늦게 합류한 덕에 한참을 더 연습해야 했지만 우리는 항상 함께 했다. 아영이는 경리를 보며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줬다. 밤참을 챙겨서 미리 사놓고 가기도 하고 아침에는 김밥을 사 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얼마 가지 못했다. 사장님은 6개월 동안 아무런 벌이가 없어 사무실을 정리하겠다고 어느 날 저녁에 소주를 사주며 우리에게 말했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함께 반포의 컴퓨터 학원으로 가자고 했다. 컴퓨터 학원은 아파트를 개조한 것이어서 방 하나를 사무실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면 관리하는 직원이 있어 경리는 필요 없었다. 아영이는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솔직히 아영이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여기서 아영이가 배울 것은 없었다.


  반포에서의 생활은 좀 더 쾌적했다. 동교동 사무실과 달리 아파트를 개조한 것이어서 잠자리가 편했다. 우리는 아예 집에서 이불을 가져왔다. 컴퓨터 학원이라 낯에는 아이들이 많아 방안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도면그리기에 열중했다. 그때 우리가 그린 도면은 전철 분당선의 수서차량기지 도면을 CAD로 옮기는 것이었다. 


  실습생으로 들어온 것이 초가을이었다. 우리는 그 다음 봄에 첫 월급을 받았다. 7개월이 지난 후였다. 나는 월급 20만원을 받아서 어머니께 드렸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돈을 가져다 드린 날 어머니는 뒤돌아 눈물을 훔치셨다.


  실습생으로 들어온 것이 초가을이었다. 우리는 그 다음 봄에 첫 월급을 받았다. 7개월이 지난 후였다. 나는 월급 20만원을 받아서 어머니께 드렸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돈을 가져다 드린 날 어머니는 뒤돌아 눈물을 훔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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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0.07 14:52:31 *.97.37.242

Change Directory, RemoveD, MakeD. 참 오랫만에 들어보는 단어군.
나도 처음 컴퓨터를 배우면서 DOS 메뉴얼을 보고 배웠지. 국내에 나와있는 책들은 성에 차는게 없어서....

아무 보장도 없고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일에 밤새도록 매달리는 젊음의 열정이 느껴진다.
무엇인가에 자신을 잊어버리고 몰입할 수 있는 열정. 그게 젊음인 것 같아.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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