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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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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30일 11시 57분 등록

 

 

그의 글을 읽다 보면 하지만 이란 접속사가 유난히 눈에 자주 띈다. 그래서 읽기가 좀 거북하기도 하다. 그러나 50쪽 쯤 읽다 보면 어느새 그의 문장에 익숙해지고 어눌한 듯한 이 고수 할아버지의 페이스에 말려든다. 슬슬 글에 재미가 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먼저 일반적인 사실을 늘어놓고 읽는 이의 동의를 구한 다음 바로 하지만 하면서 반전으로 돌입한다. 그 반전이 바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몇 문장 예를 들어보자.

 

요즘 사람들은 이혼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는 거리낌없이 이혼을 하고 또 애당초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도 생각한다. 불행한 결혼을 계속한다는 것은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합의 이혼보다 더 나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혼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은 벼룩 생활의 큰 축복이다. 회사 사정이나 동료들의 필요에 맞춰 일정을 조정하던 내가 아무날이나 내 마음대로 약속을 잡는다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스케줄을 잡는 대신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며, 라고 말할 줄 아는 강인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우리는 읽기, 셈하기, 쓰기를 배워야 한다. 그것은 나중에 사회로 나가는 문을 여는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이다. 하지만 그 문 뒤의 인간적 시스템을 잘 다루지 못하는데 문만 열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나 자신이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역할을 맡아서 연단에 올라가지 않는 한 평소에는 냉정하고 침착하며 수줍고 말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꿈이 하나 있었고, 그것은 조용한 열정으로 성숙되어갔다.'


글이 그 사람을 표현하고, 문장이 그 사람의 스타일을 드러낸다면 찰스의 글 역시 그를 잘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위의 문장들은 책의 문맥을 떼어놓고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문장들이다. 그런데 반복되는
하지만과 읽으면 꼭 그렇지도 않다. 왜 그의 책에는 하지만이 그렇게 자주 등장할까.

 

찰스는 어린 시절이 자기 안에 아직 고스란히 남아서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기 전까지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글쓰기에는 그 점이 잘 드러난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어떤 것이 여전히 그를 움직이는 동인으로 그 안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는 아일랜드 한 시골의 고지식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결코 어떤 사람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때문에 그는 회사 관리자가 되어서도 부하직원들에게 성과와 업적을 달성하라고 강하게 밀어부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의 고민과 애로상항을 듣고 위로하는 일에 더 많이 신경을 썼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도 안돼라고 말하는데 심한 어려움을 느끼고 나아가 죄책감까지 느낀다. 그가 가진 진실 결벽증, 개인에 대한 존경과 배려, 이런 것들은 좋은 미덕이긴 하지만 그가 사회생활을 하는데는 장애가 되었다. 그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내 유년 시절의 이런 유산과 타협하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만약 내가 그것을 바꿀 수 없다면, 또 바꾸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미덕들이 장애가 되지 않는 생활방식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남들을 움직여야 할 책임이 없는 벼록이 되었고 이렇게 내가 본대로 진실을 말하는 작가가 되었다.(42)

 

그러니 우리는, 49살이 되어 벼룩의 삶을 선언하기까지 그가 그런 순진함 때문에 얼마나 애로와 고초를 겪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알려면 먼저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게 찰스 핸디의 생각이다. 그의 글은 그 누구의 글도 아닌 그의 글이어야 했다. 그는 현학적이거나 논문처럼 질서정연한 글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닥치는대로 모든 관련 도서를 펼쳐놓고 훑어내리며 책마다의 특징을 살폈을 그가 어떤 글이 더 세련된 글이란 걸 모를 리 없다. 그는 자신 것이 아닌 세련된 글쓰기를 포기하고 자기의 약점(?)인 진실성을 강점으로 내세워 진솔하고 편한 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른 바 '남과 다른, 나의 글쓰기'를 시도했다. 그런 그의 글은 사람들에게 어필했고, 감동을 주었다. 그 결과 많은 출판사들이 그를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간판 작가로 모셔가려고 경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도 그는 자신의 장기인 솔직함을 무기로 잘 읽히는 글을 쓰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나는 국외자였다. 나는 괴롭힘을 당했다기보다 놀림을 당했고 내가 결코 맞서 싸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들과 한편이 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나 자신을 비굴하게 굽혀가면서 덩치 큰 아이들에게 불필요하게 아첨했고 그들의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원숭이처럼 그들 흉내를 냈다. 그 때 이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그렇게 행동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곤 한다.

 

비굴한 성격을 고쳤다고 말하지 않고 아직도 그런 유혹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의 솔직함은 이 정도 되면 확실한 차별화다. 남보다 더 좋은 책을 쓰기 보다는 남과는 다른 책을 쓰겠다는 그의 소신은 그의 전략이 되었다.(전략이란 단어조차도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책 표지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을 잘 쓰는 그의 문체를 보면 그가 그다지 조직적이거나 체계적인 사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의 글이 일반 경영서와 다른 것도 그런 점에서다. 하지만 글쓰기는 읽는 사람을 아주 많이 배려하는 글쓰기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직선적으로 피력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은 방어적이다 싶을 만큼 에둘러서 표현한다. 그는 미리 글에 대한 밑그림을 치밀하게 그려놓고 글을 쓰는 것 같지도 않다. 무엇을 써야할지 머리에 윤곽이 잡히면 그것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써나가는 게 그의 방식이다. 아마 그는 그런 글 쓰기를 즐기는 것 같다. 자신도 예상치 못한 글들이 튀어나와 훈훈한 미소를 안겨주고, 가끔 뼈아픈 통찰로 숙연해지기도 할 것이기에.

사부님도 언젠가 말했었다.
쓰다 보면 글이 제 길을 간다는 걸 느낀다. 아마 찰스 핸디는 글이 자기 길을 찾아가도록 좀 더 여유를 부리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은 독자의 여정을 즐겁게 한다. 그의 글은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이 책은 절대 가볍지 않다. 다루는 내용은 단순히 경제나 경영에 관한 것 이상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딱딱한 전문 용어들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글은 사뭇 유머에 넘친다. 20년 전 그가 미래를 예측할 때 사람들은 조롱하고 믿지 않았다. 쇼펜하우어의 말(진리는 첫째 조롱받고, 둘째 반대를 받다가, 셋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을 빌어 그의 예측이 이제는 사실이 되었음을 주장하는 그의 글에는 해학이 함께 한다
 

글이 제 길을 찾아나선 책은 필요한 말이라고 해서 꼭 진지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내가 보기에 찰스 핸디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장점은 바로 그의 약점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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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10.01 22:50:35 *.37.24.93
필요한 말이라고 해서 꼭 진지하게 할 필요는 없다

자꾸만 보게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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