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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5일 22시 21분 등록


신입생 환영회에서 냉면그릇에 소주를 마시던 대학생 김모(19)씨가 사망했다. 신입생인 김모씨는 선배들의 강요로 냉면그릇에 반쯤 소주를 따라 마시다 급성알코올중독으로 숨졌다. 또 강화도의 한 수련원에서 열린 신입생 수련회에 참석한 대학 신입생 박모(20)씨가 술을 마시고 잠들어 있다 숨졌다. 박모씨가 잠든 채 숨져 있는 것을 동료 신입생 이모(20)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숨진 박씨에게 음주 강요나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지난달에는 모대학 인근 농수로에서 신입생환영회에 참석했다 실종됐던 이모군이 실종 이틀만에 시체로 발견됐다. 이군의 사인은 저체온증. 신입생환영회에서 술에 취한 이군은 귀가 중 넘어져 머리를 다친 상태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서울고법 민사26부는 회사원 김모(여)씨가 직장 상사였던 박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상습적으로 음주와 늦은 귀가를 강요한 피고는 5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김씨는 주량이 맥주 2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일주일에 두번 이상은 ‘직원 단합’ 명목으로 박씨가 마련한 술자리에 참석,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박씨는 김씨가 술마시기를 거절하면 ‘남자 직원에게 대신 마시게 하고 키스를 시키겠다’고 하는가 하면 회식 자리를 먼저 빠져 나가면 심하게 질책했다. 몸이 좋지 않아 물을 섞어 마시기라도 하면 박씨는 김씨에게 양주를 다시 부어주며 “마실래. 아니면 나한테 쪼일래”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참다 못한 김씨는 박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오늘 신문에서 본 기사 중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아무래도 술 이야기겠다. 이제 중학생인 네가 보기에 이해하기 어렵고 충격적인 것들이지만 모른척하고 넘어가기는 힘든 이야기들이지. 그래서 오늘 같이 할 이야기는 술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게 있다. 바로 이런 질문이지. “나도 대학교가면 저렇게 술을 먹고 죽을 수도 있겠지?”하는 것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면 신문기사처럼 억지로라도 술을 먹어야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그렇게 묻는다면 단순히 술 이야기가 아니라 술과 선택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된다. 두 가지 이야기를 같이 하는 게 좋겠다. 어차피 하나를 시작하면 같이 매듭처럼 엮여있는 이야기이니까.

네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술 이야기를 하자. 술이란 도대체 무얼까? 술이 무언가 간단히 알아보자. 사전을 보니 ‘술=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취하는 음료. 적당히 마시면 신진대사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맥주, 청주, 막걸리 따위의 발효주와 소주, 고량주, 위스키 따위의 증류주가 있으며, 과실이나 약제를 알코올과 혼합하여 만드는 혼성주도 있다’ 이렇게 써있다. 이건 참 재미가 없다.
술은 사전에서처럼 단순히 하나의 정의로 단정하기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류가 탄생하고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술은 사람의 역사와 함께 했고 개인의 삶과 함께 했다. 술에는 문학이 있고 철학이 있고 우리가 살아 온 민속과 풍속이 담겨있고 전통이라는 것도 가득하다. 마치 술독에 가득한 술처럼 말이다. 이집트에 있는 유적에는 맥주 양조에 대한 흔적이 BC 3000년경에 이미 있었다고 한다. BC1500년경 묘 에는 비교적 상세한 맥주제조의 기록도 있다. 요즘 먹고 있는 맥주는 8C에 이르러 중부유럽에서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지.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나쁜 술이 왜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했느냐고? 모든 게 그렇지만 활용하기 나름이란다. 한국 사람들이 술을 즐기는 건 사실이고 소비량도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힐 만큼 많다. 조금 오래 됐지만 1996년에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15세 이상 순수 알코올 소비량 국제비교’ 통계를 보면 한국은 당당 2위에 올라있다. 1인당 14.40리터. 정밀한 통계치는 아니지만 한국 사람이 술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한국주류공업협회에서 집계한 2001년 통계에는 한 해에 1인당 맥주 118병, 소주 82병, 위스키 1.7병씩 마셨다고 나온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렇게 많이 마시니 술값도 당연히 많아진다. 2000년 국내 술 생산액은 5조8460억 이었는데 이 액수는 공장도 가격이다. 실제 소비액은 이 금액의 3배 정도로 추산 하는데 그렇게 계산하면 15조원이 된다. 막대한 돈이다. 한국 사람이 처음 술을 마신 것은 언제일까? 그거야 알기 힘들지만 역사책에는 ‘위지동이전’에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표현이 있다. 고대부터 생활 속에 이미 뿌리를 내렸음을 알려주는 문구다.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 해보자. “나도 대학교가면 저렇게 술을 먹고 죽을 수도 있겠지?”라는 질문은 듣는 사람도 섬뜩하다. 더구나 그게 자기의 자식이라면 그 놀라움은 상상으로 가늠하기 조차 힘들어진다. 자기 자식이 다른 일도 아니고 술을 먹다가 죽는다? 그걸 이해 할 부모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술을 먹다가 사람이 죽어나간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는 부조화다.
그 부조화는 어디서 생기는 걸까? 술을 즐기는 문화, 강요하는 사회구조, 개인을 위해 거부하지 못하는 정서적 교육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부조화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와 집단이 만들어 낸 것이다.
술을 즐기는 문화는 이미 말한 것처럼 고대시대부터 있었다. 현대에는 얼마나 즐기고 있을까? 통계치를 또 인용해보자. 전국 18세 이상 남녀를 표본 추출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 사람들은 70% 정도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꼭 술을 먹는다고 한다. 한 번 마시면 취할 때까지가 많고, 마시는 양은 남자의 경우 소주 1~2병이다. 많은 양이다.

한국의 술자리는 집단적 음주와 잔 돌리기가 대표적 문화다. 집단적 음주란 혼자서 즐기는 술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집단적으로 갖는 술자리가 많다는 것이다. 필요에 의해서란 마시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술자리라는 뜻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인간관계나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는 대답이 가장 많다. 실제로도 술자리가 아니면 인간관계나 비즈니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에 충실하고자 하는 한국 사람들은 술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맴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술자리를 만들어 내고 끊임없이 술을 마신다. 그래서 술은 ‘묘약’의 자리를 굳건히 지킨다. ‘묘약’으로 시작한 술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약’으로 변한다. 술을 주고받아야만 유대관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술이 없으면 인간관계와 비즈니스의 단초를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불편하지는 않다. 많은 사람이 그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술자리에 조용한 관조의 시간 같은 분위기는 없다. 원하는 만큼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는 자유도 거의 없다.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들고, 많이 눈치보고, 많이 강요하고, 많이 강요당하고, 취해서 쓰러진다. 장렬한 ‘전사’다. ‘전사’ 뒤에는 그에 걸 맞는 ‘훈장’이 따라온다. ‘사회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멋있는 사람’이라는 브랜드도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을 때도 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에 충실한 사람에게는 황홀한 ‘전과’다. 그런 ‘전과’에 취한 ‘한국사회의 사회적 동물’은 술이 깨기도 전에 또 다른 ‘전쟁’에 나선다. 그렇게 술자리는 이어진다. 쉬지도 않고.

술에 익숙해진 생활은 친구나 이웃집 사람과 교분을 나눌 때도 술을 필요로 한다. 사회생활이라고 하기에는 비중이 크게 낮은 관계임에도 역시 술이라는 ‘묘약’을 동원한다. 밥만 먹는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고 무언가 유대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밥만 먹는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차를 마시자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차를 앞에 두고 앉으면 더 어색해진다. 결국 술을 놓고 마주 앉아야 뭔지 모르게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술집은 한국의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도심의 한 가운데는 당연한 것이고 주택가의 골목골목까지 술집은 즐비하다. 룸살롱에서 조그만 호프집까지 집 현관을 나서면 어디서든지 술을 마실 수 있는 ‘편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요가 공급을 만들어 내는 꼴이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술자리는 편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잔 돌리기가 이어지는 이유도 그러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서양에서는 자신의 잔으로만 마시고, 같은 동양인 중국과 일본도 남의 잔이 비었을 때 따라주는 첨잔만 한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마신 술잔을 남에게 넘긴다. 자신의 입술에서 뗀 잔을 바로 상대방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인간적 유대감의 표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동료의식의 발현이고 ‘우리가 남이가’ 하는 끈끈함이 담겨있는 표상이다.
집단적이면서 유대감을 꼭 만들어내야 하는 술자리에서 당연히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집단만 있고 우리만 있다. 그런 까닭에 술자리는 강요와 억지로 먹기와 먹이기라는 고유의 술 문화가 지배한다. 술잔의 거부는 사회생활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손실이 따른다.

술자리의 배치도 그런 인식이 그대로 따라간다. 직장상사가 중심에 앉고 그 주변에 상사와 친분이 깊은 사람이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포진한다. 돌아가는 술잔도 자연스레 그들에게 순서가 많이 가기 마련이다. 술을 즐기지 못하거나 상사와 거리감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레 구석으로 앉는다. 그런 사람들이 중심 부위에 앉으면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좌석배치가 끝나고 술이 돌기 시작하면 젊은 세대까지도 예외 없이 전체주의에 휘말린다.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고 개성을 입에 달고 다니는 그들도 술자리에서 만큼은 몰개성의 세대가 된다. 개성을 내세워 전체의 문화를 거부하면 그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개인에게 그러한 인식을 심어준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전체주의에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있는 것이 큰 영향을 준다. 군사문화에 아직도 한국사회가 지배당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절실한 현실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 술 먹는 것이 업무는 아니지만 술자리에서 유대감을 키우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거리감을 보이면 자신에게 이롭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호기 있게 술잔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술잔을 뿌리치지 못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전체주의와 위계질서와 군대문화와 개인의 무시라는 큰 파도에 몸을 싣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파도에 묻혀 죽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그 파도에 묻혀 정신을 잃은 사람이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신문기사로 만났다. 무분별한 술 문화가 가져온 결과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면 신문기사처럼 억지로라도 술을 먹어야 하는 것이냐?” 라는 질문은 결국 선택의 문제일 터인데 뭐라고 답하기가 힘들다. 한국 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술독에 빠져 산다고까지 말하는 한국 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그 고충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들은 비주류(非酒流)이면서 비주류(非主流)이다. 다양한 관계가 술을 고리로 해서 이어지는 한국사회에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장애인과 비슷하다. 여러 면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 삶이 그렇고 사회생활도 그렇다. 쉴 새 없이 생기는 술자리는 고문 받는 자리이고 폭탄주가 사정없이 돌아가면 공포에 빠진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들의 고충을 헤아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술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행동이 지탄의 대상이 될 뿐이다.

술자리에 가면 억지로 먹어야 하는 술에 죽을지 모른다. 술자리를 거부하면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버리고 홀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그게 한국사회에서의 술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개인과 이해와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의 선택이 허용되지 않는 다는 것. 그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선택은 없다. 그래서 술은 ‘묘약’이면서 ‘마약’이면서 ‘쥐약’이다.

술을 억지로 마시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기사를 아직도 봐야 하는 게 아직 한국의 모습인가보다. 그게 한국의 술자리이고 한국 사람의 삶의 일부분이라는 게 서글프기도 하다. 더구나 그러한 사회 속에서 너희들이 살아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 어느 곳에나 술집이 있는 사회, 술이 없으면 인간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사회,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는 없는 사회, 술이 없으면 마치 세상이 돌아갈 것 같지 않은 사회. 무엇보다 “나도 대학교가면 저렇게 술을 먹고 죽을 수도 있겠지?”라는 질문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면 신문기사처럼 억지로라도 술을 먹어야 하는 것이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게 부끄럽다. 너희들이 커서 만드는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너희들은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 부끄러움을 잊으려면 아무래도 술을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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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5 22:25:01 *.163.65.165

또 빗맞았습니다. 과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무턱대고 쏩니다. 제대로 맞지가 않습니다. 이게 제대로 겨냥한 과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힘든 쓰리쿠션도 가끔은 맞아주는데 이건 도대체 맞지가 않네요. 쓰리쿠션보다 몇백배 어렵습니다. 이런 소리가 나오는 군요. "주여, 제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래도 갑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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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10.06 01:00:52 *.36.210.239

하하하. 그대 답다가 놀러갔다가 돌아왔구나. Mr.까칠씨의 덧글의 유머가 즐겁다. 늦게까지 과제를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이불 속 마나님께 포근히 안길 때에는 술이 때로 보약이 되기도 하지. Go!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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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0.07 11:48:11 *.97.37.242

절제하지 못하는 우리 술문화. 이거 반드시 고쳐져야 하지.
술자리에서 내가 지키는 두 가지 원칙이 있네.
싫다는 사람에게 권하지 않기. 가겠다는 사람 붙잡지 않기.
이정도면 괜찮은 편이지?... 과녁은 잘 보고있네, 열심히 쏘면 되는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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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10.07 21:16:21 *.37.24.93
술문화도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는건 아닌지요.
저도 정산 형님처럼 싫다는 사람에게 권하지 않고 가겠다는 사람 붙잡지 않을려고 노력하거든요..ㅎㅎ
그래도 아주 가끔 있는 '전사'는 그것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중학생인 나'의 입장에서 본 글로는 중학생의 나이가 좀 의심스럽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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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8 09:42:25 *.38.102.209
젊은 세대의 바뀐 술문화도 다뤄보면 어떨까요. 창 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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