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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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소명이라는 형태로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기도 한다. 세계적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야구장에서 야구경기를 보다말고 소설가로서의 소명을 얻고 작가가 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위대한 밥벌이가 그냥 어느 날 그렇게 다가온 것이었다. 우리의 국민 남동생 박태환과 국민 여동생 김연아는 부모의 선견지명 덕분이었는지 어렸을 때부터 그 꿈들을 찾아 지금 아주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들에게 소명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피터지게 찾고 또 찾아야 한다. 어린 시절 소풍에서 보물찾기 게임을 하듯이 설렁설렁 찾으면 안 된다.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속의 보물을 찾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목숨 걸로 바다 밑에 가라앉은 난파선을 찾듯이 치열하게 찾아야만 한다. 그래야 찾을 수 있다. 아니면, 주위를 둘러보라.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어쩌면 당신의 곁에 당신이 찾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이 그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말로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하고 싶다. 그것만 찾으면 모든 것을 다 걸고 열심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찾았다 싶으면 또 자신에게 묻는다. 이게 아니면 어떡하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아니면 어떡하지? 사실 지금하는 일도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잖아. 그리고 예전에도 취미로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가 몇 달도 못 되서 그만 둔 것이 어디 한 두개야? 이것도 막상 해보면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닐 수도 있어. 그냥 참아야지.
그렇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단지 그것을 따르느냐 그냥 묻어두냐의 차이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가 되었던 신의 소리가 되었던 그 무엇이 되었던간에 그 소리를 믿고 따르는 방법뿐이다.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던 한 남자가 세계적 작가가 될지 그 누가 확신을 했을까?
두려움.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너무 싫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한다. 지금까지 하던 일은 재미없고 따분하긴 하지만, 일단 편하지 않는가? 지금의 일은 하기 싫지만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경우도 많다. 단지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되기 때문에 이것저것 제쳐 놓다보니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갖가지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일까? 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두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쩌면 어떻게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이란 게 참 우습다.
당신이 혹시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매일 같이 아침에 눈을 뜰 때면 괴롭기 짝이 없다. 오늘도 가서 매일 반복되는 무료하기 짝이 없는 업무를 해야하며,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상사에게 미소 띤 얼굴을 보여야 한다. 가기 싫다. 잠을 조금 더 자서라도 그 감정을 회피하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이것은 나의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직장을 때려치기로 마음먹는다. 용기를 낸다. 하지만, 두려움이 또 엄습해 온다. 당장 내일부터는 무엇을 해야하지? 요즘은 취직도 안되는데, 이렇게 나갔다가 영영 다시 직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매달 나오는 청구서들은 도대체 어떻게 처리하란 말인가? 지금 그만두면 몇 달 정도는 그럭저럭 버텨보겠는데, 그 때도 취직이 안 된다면? 우리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그려진다. 그리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리고는 다시 주저앉는다. 단지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상상속의 현실에 그만 넉다운당하고 만다.
단지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할 때 뿐만이 아니라, 두려움이란 놈은 우리의 삶 곳곳에서 나타나 우리는 소심하게 만들기 일쑤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 이 두려움만큼이나 만만한 것이 없다. 이 두려움이란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오지 않은 미래를 우리의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이를 키워내는 데 사용하고 있다. 원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벌지 못하고 현재보다 못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일을 하면 지금보다 확실히 돈을 많이 벌면서 지금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 아닌가? 답은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결코 알 수 없는 것을 알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진짜 좋아하지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걱정이 된다면? 해보지 않고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자신이 그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아닐지를 해보지 않고 알 수 있는가?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알 수 있을까? 현재의 일을 그만두고 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세상에는 공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껴봐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두려움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다. 그리고 두려움이란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니다. 절벽 앞에 서서 우리가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두려움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는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많은 두려움은 또 실재하지도 않은데 우리가 상상 속에서만 만들어낸 위험요소들로부터 오는 것도 많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스로 상상속의 위험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굴복하며 산다. 자신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마치 엄청난 위험부담을 앉고 사는 듯하다. 그런데 또 그러한 위험들은 말 그대로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현실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해나갈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미래의 위험을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은 바로 그것에 압도되어 주저앉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예상하여 그것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 써야할 것이다. 어차피 오지 않은 미래는 알 수 없고,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다. 원한다면 직접 가서 맛보고 느껴라. 그것이 독이 든 음식도 아닐텐데 뭐가 그리 두렵고 망설여진단 말인가?
만약 당신이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무엇을 해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