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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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까지 자신의 일이 정말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1998년 나는 제대를 했다. 나도 역시 대한민국 남자인가? 글의 시작부터 군대이야기를 꺼내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군대 이야기가 아니니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저 그 때의 시간적 배경이 중요하기에 때를 언급하고 넘어갈 뿐이다. 아무튼 제대를 하고 나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겸 학교를 찾았다. 친구들 몇 명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들은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행정고시, 사법고시, CPA, 변리사 등의 시험을 하나씩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CPA니 변리사니 하는 시험도 처음 들었을 뿐더러, 모두들 나름대로 꿈이 하나씩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다들 비슷한 시험준비를 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정말 좋아서 하는거냐?". 친구들의 대답은 시원찮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대안이 없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길 뿐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 무슨 시험인가를 준비하던 친구들 중에 그 시험에 붙어 목적을 이룬 친구는 단 한명도 없다.
요즘에야 다들 첫 직장에 어렵게 들어간다. 나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남들처럼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대뽀였다는 생각이다. 어찌어찌해서 우여곡절 끝에 그리 크지 않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사람은 많지 않지만, 가족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탓에 난 첫 직장에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배들의 일하는 모습이 열정적이라 느껴졌다. 그곳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도 좀 나누면서 나는 내가 보아왔던 것이 모두 진짜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모두들 그 직장을 나처럼 정말 좋아서 다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들의 상당수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여느 직장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대부분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 결혼을 했으니, 쉽게 옮길 수가 없고, 그 회사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옮기기가 힘들다는 등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말들을 했다. 내가 그 회사를 나온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여전히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일을 갖기 전 나는 대학교에서 근무를 했었다. 학교에서 근무를 한 터라 가끔씩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특히 내가 직업이나 진로에 대한 관심이 많아 친한 학생들이 있으면 항상 그런 쪽에 대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꽤 오랜 기간동안 근로장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여학생과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3학년인 그 학생에게 나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질문을 받은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한 숨부터 쉬는 것이 물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못해 이야기 하듯 학생은 그저 다른 학생들처럼 대기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답하는 것이 시원찮아 이유를 물어보니, 그렇게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정말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학생은 마음 속으로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마음 속의 꿈으로나 간직할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의 선택은 이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요즈음은 사람들이 인터넷 쇼핑을 많이 한다. 나 역시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돌아다니며 시간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왠만한 것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다. 요즘에야 책 한권도 무료에 당일배송까지 해주기에 나같은 사람에게 그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인터넷 쇼핑이 편해도 인터넷으로 사기 꺼려지는 것이 바로 옷이다. 사실 옷을 그리 자주 사는 편도 아니지만, 그래도 옷은 실제 입어보고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고 사야 후회가 없기에 옷만큼은 직접 매장에 가서 고르는 편이다. 신발도 그렇다. 신발은 그 종류에 따라 발사이즈가 조금씩 달라 실제 신어보고 사야 후회가 없다. 그런데 실제 매장을 여러군데 돌아다녀봐도 딱히 사고 싶은 것이 안보일 때가 있다. 오랜 쇼핑으로 다리는 아프고 빨리 사서 집에 가고픈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사가면 비싼 돈주고 사서 몇 번 입지도 않을 것이기에 갈등이 생긴다. 더 돌아다녀야 할지. 아니면 지금까지 봐 온 것중에서 그나마 가장 괜찮은 것을 사서 돌아갈지.
이러한 상황은 단지 옷을 살 때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흔히 겪는 경우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봐왔던 것 중에 가장 괜찮은 물건을 살 것이며, 어떤 사람은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을 살 때까지 쇼핑을 계속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저런 상황이 오기 전에 이미 처음으로 방문한 매장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고 그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같은 상황에서 사람마다 선택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직업이라는 옷을 선택할 때는 많은 사람들의 선택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봐온 것 중에 가장 괜찮다 싶은 옷을 골라 입고 다닌다. 하지만, 그 옷을 입고 다니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내 옷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계속 입고 다닌다. 그 옷은 나에게 잘 맞는다고 자기암시를 하며 입는다. 계속 입다보면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내 몸처럼 편하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나에게 이 옷은 최고의 옷이라 생각한다. 이제 그 옷은 그냥 나의 옷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구도 어떤 결정이 최선인지 판단해주지 않지. 바로 자기 자신이 판단하는거잖아.
그러니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면 최선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거지.
최선이라고 생각하면 만족하며 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더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 하면서 다른 기회를 엿보고.
그건 그렇고, 지환이 글을 읽으면 네가 말하는 모양이 생각난다.
차분하게, 천천히, 또박또박, 조용조용히, 논리적으로, 미소를 지어 가며..... 읽다보면 머리가 맑아 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도 거암 생각과 동감이다. 다른 보따리도 구경좀 시켜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