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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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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2일 22시 19분 등록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미스 앤트로피 양처럼 열심히 사는 인간도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 내내 잠자는 시간 외에 그녀는 항상 무슨 일인가를 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새벽 6,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졸리운 눈을 비비고 그녀가 달려가는 곳은 영어 학원이었

습니다. 어젯밤 야근으로 어깨가 묵지근 하고 눈 주위가 시큰 거리지만 얼마 안 있어 볼 토익

시험을 생각하면 빠질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녀 말고도 그 새벽에 학원을 찾는 직장인들은 너무

도 많습니다. 3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교실은 오늘도 가득 찼습니다. 미스 앤트로피 양 말

고도 토익 점수가 혹은 영어 능력이 필요한 직장인들은 너무도 많으니까요. 도대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영어 점수가 직장인들의 퇴출 순위를 결정하는 이상한 잣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날마다가 불안 합니다. 아마 여기 교실 한 켠에서 졸리운 눈 꺼

풀을 비비고 수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죄다 미스 앤트로피 양과 같은 생각을 할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침에 한 1시간 더 자고 마음 한켠이 불안한 상태로 사느니 보다 이런 피곤함을 자초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비몽사몽 수업을 마치고 그녀가 가는 곳은 회사 앞 매점이었습니다. 미처 챙기지 못한 아침을 대

신 하려는 생각에 김밥 한 줄을 사서 핸드백에 넣습니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회사로 달려가서는

책상에 앉습니다. 김밥을 꺼내 하나 집어 먹으면서 그녀는 컴퓨터를 부팅합니다. 밤사이 지구 건

너편에서 메일이 참 많이도 왔습니다. ‘그녀가 잠든 사이에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고 돌아가 주었

던 사실에는 매우 감사할 일입니다만 지난 밤부터 새벽 이 시간까지 7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30통의 메일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옵니다.

 

김밥을 오물거리면서 그녀는 열심히 이메일을 열어 보고 있었습니다. 태평양 건너 미국 지사에서

온 일들이 수북합니다. 이쯤 되면 목에 걸린 김밥이 제대로 넘어가질 않습니다. 갈비뼈 바로 밑으

로 위장의 근육이 놀라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 같아서 이제 더 이상 김밥도 먹을 기운이 나질 않

습니다.

 

이제부터는 전력 질주입니다. 아침에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정리하여 2시부터는 회장님 미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녀는 어제밤 대충 만들어 놓은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좀 더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시각적인 효과를 만들기 위해서 소프트 웨어의 새로운 기능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합니다. 어떻게든 회장님 눈에 들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또 다른 경쟁에 들어섰습니다. 요즘 새로 들어온 신입 사원들이 만들어 내는 자료들을 생각하면 대충대충 만들어 버릴 수 없습니다. 1000 1이나 되는 경쟁률을 뚫고 새로 입사한 승자들-신입사원들-의 능력에는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강자들을 누르고 그녀도 살아 남아야 합니다.

 

머리 속에 온통 회장님 미팅 때 쓰일 자료가 들어 있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한 작업은 겨우 1 40분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미스 앤트로피 양은 미팅 자료를 마무리 해 놓고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출근해서 처음으로 화장실을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닦으면 거울을 보니 퀭한 눈을 한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얼굴에는 화장을 덧씌우고 옷 매무새를 매만졌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사무실에 시계가 7시를 가리키고 이제서야 그녀는 겨우 전쟁터 같던 미팅에서 돌아왔습니다. 긴장이 풀린 다리로 제자리로 돌아와 털썩 앉았습니다.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새는 하루였습니다. 삼일 밤낮 밤도 못 먹고 만들어낸 발표 자료가 모두 쓸모 없이 되어 버렸습니다. 회장님은 그녀가 준비한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새로 프리젠테이션을 해 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인데도 화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입에서는 단 냄새가 나고 어깨 근육은 빳빳하고 두 눈은 토끼눈 입니다. 퇴근 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장 난 텔레비전 수신기가 하얀 화면을 드러내듯이 머리 속에 새하앴습니다. 오늘은 도저히 헬스 클럽에 갈 기운이 없을 것 같습니다. 미스 앤트로피 양은 터덜터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하루를 생각하니 너무 허무합니다. 밥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을 하면서 정작 한 끼도 제대로 챙겨 먹질 못했고, 며칠 동안 노력을 쏟아 넣은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아침에 졸리운 눈을 겨우 뜨고 배웠던 영어 단어는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오늘 하루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천근만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서 그녀가 이를 닦고 있었습니다 이를 닦고 나서는 오랜 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물에서 나와 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뉘였습니다. 눈이 저절로 스르르 감겼습니다.

 

미스 앤트로피는 어딘가로 막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도망가가 있었습니다. 낙엽이 쌓인 숲이었습니다. 누군가 미스 앤트로피 양을 계속 쫓아 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웬일인지 그녀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녀는 달리고 있었습니다. 다리가 아파오고 숨이 턱에 차 올랐지만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숲 속의 장면은 변하질 않습니다. 20분 정도 전속력으로 달릴 것 같은데도 숲 속의 장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똑 같은 숲의 반복 입니다. 미스 앤트로피 양은 여전히 다리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숨이 차오르지만 멈추는 법은 아직도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회의실에서 뵌 회장님 얼굴이 마구 그녀를 쫓아 왔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무척 그녀에게 화가 난 듯 합니다. 회장님의 화난 얼굴에 화들짝 놀란 그녀가 이번에는 방향을 전환하여 반대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멈출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조금 있으려니 미국의 지도가 그녀를 쫓아 왔습니다. 지도 뒤에는 못 알아듣는 언어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들이 왼쪽에서 그녀를 쫓아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제 오른편으로 방향을 전환해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그 때 갑자기 커다란 곰이 그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달려오는 곰을 너무 늦게 발견했습니다.

 

 

곰과 그녀와 회장님과 미국 지도와 이상한 나라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부딪혔습니다. 순간 그녀의 몸은 하늘로 붕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한참이나 올라가다가 낙엽 위에 쿵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 졌는데도 그녀에게는 외상이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그녀는 얼굴에 웃음까지 띄고 있었습니다. 전혀 고통이 없는 듯한 그녀의 얼굴은 아이러니 했습니다.

 

바닥에 누워서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그녀 자신의 몸뚱아리를 미스 앤트로피 양은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서서히 밀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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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29.19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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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10.13 10:49:55 *.244.220.253
구라현정~
이번 준비하는 글이 '그림과 함께 하는 여행' 아닌가? 이 꼭지의 글과 그림이 전혀 이해가 안가는데...........혹시 그림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적 구성과 함께 그림이 따라가는 건가???..... 주인공은 본인같은데........이름도 엔트로피라고 지은 것을 보니, 무슨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은데........맞나?
(지난번 오프 수업에 늦게 참여해서..... 대략적인 아웃라인을 몰라서시리..........설명 부탁!)
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느낌을 받았어~ 갑자기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듯한........재밌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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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0.13 14:54:15 *.97.37.242
미스 애트로피양 사망?
아니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꿈꾸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여지껏 열심히 산게 아까워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지... 아깝다. 아까버...

그림과 함께하는 이야기.
누가그린 어떤 제목의 그림인지는 모르겠지만, 꿈 속이나 상상 속을 그린 것 같네.
고단한 직징인의 허무. 꿈 속에서 만나는 죽음을 통한 자유로움.
그림과 잘 엮어지는 글인 것 같다. Good Job!

거암. 그러게 수업에 늦으면 진도 못따라 간다니까. .^^. 참고 하시게.
정산은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현정아 나 잘하고 있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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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3 20:37:49 *.163.65.181
구라현정, 그림과의 시종始終을 매끈하게 연결하면 그림같은 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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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00:33:21 *.180.129.135
현정아, 너는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 네가 내게 할말은 또 있겠지만. ㅠㅠㅠ 네 상상력을 일상이 잡아먹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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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10.14 10:33:36 *.122.143.151
나도 위의 <희초리 당신>님의 말에 동감이야..
글에서 무쟈게 힘든 티가 난다... 벗어나고 싶어하는 갈망, 안타까움도 묻어나고...
현재 틀안에서 방법을 찾든가, 틀 밖에서 방법을 찾든가...
뭔가 필요한 시점인거 같은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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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쟁이
2008.10.14 15:55:32 *.128.98.93

현재 상황에선 회사를 그만두는 수밖에..
그런데 당장에 그 선택을 하려면 알바 라도 먼저 구해야 할 판...

그림 취재에, 상상력 발동에, 북리뷰까지 함께 하기엔 여유가 부족한 듯함.

불평을 하자는 건 아니고 현재 상황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함량 미달의 글을 매주 올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돌파구를 찾겠지요. 지금은 딱히 수가 안 나서 그냥 가는 중입니다.
근데 그럴 때도 있지 않던가요? 막혔을 때...
사실, 제 경우엔 이럴 땐 막 놀아주면 뻥 뚫리는 데 '막 놀아줄 수 있는 상황'이 지금은 안 되네요.
그게 뭐냐면 글로만 취재를 하거나 해서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서 입니다.
그래서 한 번 놀면 어떨까 싶어서 연구원 숙제도 한 번 건너 뛰었는데 별 성과는 없었다는..

그래서 말인데요..몸으로 뛸 수 있는 알바 구합니다!!!
언제든 연락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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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08.10.14 15:57:43 *.161.251.172

구라현정 ...구라가 안됐구나.
그대얘기를 쓰고 말았군^^
벽에 부딪힌 느낌이지.
나역시 그렇고 ...힘내서 넘어서 보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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