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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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며칠후면 스승의 날이 돌아옵니다. 학교라는 곳을 떠난 이후 스승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상에 지치고 힘들어지니, 스승과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이런저런 방황 끝에 저는 책을 통해 여러 스승을 만난 것 같습니다. 구본형 선생님도 그렇고, 법정 스님도 그렇고, 그 밖에도 많은 가르침을 책 속에서 얻었습니다. 지금은 책 속에서 얻은 가르침들을 삶 속으로 확장해나가는 시기인 듯 합니다. 배움에 끝이 없듯이, 이런 과정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번 편지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저작 <싯다르타>를 통해 스승과 깨달음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석가모니가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죽기 전에 이 말을 남긴 석가모니조차도 구도의 길 초기에는 스승을 찾아 헤멨습니다. 그는 알라리 칼라마, 웃다카 라마풋다라는 두 명의 큰 스승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궁극의 경지를 위해 그는 결국 두 스승을 떠나게 되고,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게 되죠. 만약 석가모니가 두 명의 큰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처음부터 혼자 고행을 했다면, 과연 정각에 이를 수 있었을까요? 스승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영웅의 여정에 조력자가 없었다면, 위대한 서사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겁니다. 또한 스승은 큰 스승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스승도 있고, 못된 스승도 있습니다. 친구도 스승이 되고, 길에서 만난 장삼이사도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세 명이서 길을 걸으면 분명 그중에 자신의 스승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외부의 모든 존재는 나의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후의 스승은 내부에 존재합니다.
소설 <싯다르타>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싯다르타입니다. 사실 헤세가 묘사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석가모니의 복제판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역사 속의 석가모니가 아니지만, 곧 석가모니 그 자체로 봐도 무방합니다. 우리 모두가 결국 부처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메고 다니며, 많은 외적, 내적 사건을 겪습니다. 그러던 중 싯다르타는 실제 석가모니인 고타마를 만나게 됩니다. 싯다르타는 고타마로부터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죠. 하지만 주인공의 친구 고빈다는 고타마를 스승으로 삼고 주인공을 떠나지만, 주인공 싯다르타는 결국은 고타마를 따르지 않기로 합니다. 최고의 스승인 고타마를 떠나며 싯다르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어떤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을 찾기 위하여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다른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외면은 내면과 일대일로 대응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더 쉽게 말해 가르침은 가르침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디가 말한 대로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불완전한 스승은 용납될 수 있지만, 진리의 세계에서는 불완전한 스승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과 괘를 같이 합니다. 완전한 스승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고 법정스님 또한 외부세계에는 완전한 스승은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법정스님이 <산에는 꽃이 피네>라는 책에서 말하길 사람들이 매번 찾아와서 좋은 말씀을 해달라고 조른다고 했죠. 좋은 말씀만을 쫓는 그들이 사실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만으로도 그들 모두 부처가 되고도 남았어야 한다며 스님은 탄식합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은 깨달음이 아닌 거죠.
좋은 스승은 등불이 되지만, 스승의 행로를 그대로 따르도록 내버려둘만큼 우리네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앞에 놓여진 모든 각자의 인생은 전인미답입니다. 아이의 인생을 부모가 살아줄 수 없고, 인생에는 교과서도 정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말한것처럼, 어떤 곳이든 말로 갈 수도, 차로 갈 수도, 둘이서 갈 수도, 셋이서 갈 수도 있습니다만, 맨 마지막 한 걸음은 자기 혼자서 걷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인생은 말에서 내려서, 차에서 내려서 결국 자기의 걸음으로 완성시켜야 하는 숙명을 가집니다.
고타마(석가모니)를 따르게 된 친구 고빈다에게 주인공 싯다르타가 전한 말을 마지막으로 이번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고빈다, 우리가 열반이라고 부르는 것,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열반이라는 단어만 존재할 뿐이지"
추신. 이번 편지는 2018년 변경연 연구원 과정에 썼던 칼럼을 재구성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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