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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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슬픔의 등껍질에 힘겨워 내 날개는 지쳤습니다.
그 무거움에 끝없는 연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날아오를 수 있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잠시 쉬어 가려 했을뿐인데..내 날아오를 하늘길들 검은빛이 되고
멀리 절망의 파장으로 눈 멀어 솟대위에 꼼짝없이 갖혀버렸습니다.
타닥 타닥 소리가 내 마음을 밟고 지나갑니다. 하늘을 물들이는 구름과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와 보라빛의 해지는 하늘위로 하나 둘 새롭게 총총 떠오르는 별들이 내게 말을 합니다.
“날아 오를 수 있어. 걱정하지마. 날개를 활짝 펴고 힘차게 날개짓을 해봐”
눈 감고 있으면,,,어느새 가슴으로 두려움이 툭~~떨어져 내리지만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말해주는 사람 없어도 어느새 갈 곳을 알게 되고 마음 놓고 내 몸을 하늘에 누이며 유유히 깊어 가는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음을.
그것이 바로 진정 ‘나’임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당시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은 상태였으며, 그 절망을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며 희망으로 바꾸는 장면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쁨이나 행복만 있지는 않다. 슬픔이나 고통이, 기쁨이나 행복들과 적당한 배합을 이루고 있는 게 인생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 본질이다.
겪어야 할 어려움이 없다면, 기쁨이나 행복의 참 맛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사람들이 기쁨이나 행복을 감사하는 이유는 고통의 쓴맛을 알기 때문이다. 멀리한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게 아니라면,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한다. 감당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칫 슬픔이나 고통이라는 감정은 다른 것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시간들을 모두 슬프거나 우울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슬프고 어려울 때는 혼자인 경우가 많아진다. 어쩌면 삶은 언제나 혼자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함께 해줄 거라는 생각에서부터 슬픔이 파생되어져 나오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자기에게 스스로 희망을 주어야 한다. 내일의 태양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심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라고 피하거나, 안 좋은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경솔함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슬픔도 기쁨처럼 기꺼운 마음으로 맞아 준다면 슬픔 또한 반드시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 갈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기쁨을 맞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건 노력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몸에 베어있다. 그러나 홀로 선다, 라는 것은 스스로 감당해내기에 충분한, 혹은 누구와든 기꺼이 나누어질 수 있는 '기쁨을 맞는 방법'이 아니라 '슬픔을 맞는 방법'에 익숙해지는 것인듯 하다. 그리고 '슬픔을 맞는 방법' 중의 하나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일런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