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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3일 11시 58분 등록

 

선글라스를 잃어 버렸습니다.
당신 손으로 골라 준  그 선글라스는 '당신' 에 대한 기억과 동의어였습니다.

특별한 것을 좋아하는 당신이 남들 다 가는 해외 신혼여행 대신, 남도여행을 즐겨 보자해서
우리는 소도시 어디쯤에 머물러 있었지요.
  당신은 제가 쓰고 있는 낡은 선글라스가 자꾸 걸리셨던 모양입니다. 렌즈가 좋아야 자외선을 차단시킨다며,  제 손을 이끌고 읍내에 있는 안경점으로 들어갔지요.
그 안경점에서 당신은 저를 위해 구찌나, 에스까다등 이른바 명품 브랜드를 찾았지만. 작은 소도시 안경점에서, 명품브랜드 구색을 갖춰 놓았을 리가 만무였어요. 새 안경을 제게 씌워주며, 당신은 말했습니다.

“‘그래도 지금 쓰고 있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아. 서울 올라가서 브랜드로 바꿉시다. 당신처럼 명품인 사람에게 이런 조악한 물건은 안 어울려. 시골구석에 제대로 된 것이 있을리 없지.”

하지만, 저와 함께 여행을 하며 세월을 함께 묵은 저의 낡은 선글라스도 제게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을 즐기는 당신 눈에는 차지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제 눈에는 당신만한 명품이 없었으니까요.
폴로 티셔츠와 휴고보스 벨트, 아르마니 선글라스를 착용한 당신은 어디서든 반짝였습니다. 

 당신의 곧게 뻗은 튼튼한 다리와 완고해 보이는 등,   짙은 눈썹, 시원한 눈망울에 오만하게 솟은 코.

 우리가 작은 배를 타고 섬을 건너 갈 때 혹시, 당신은 알고 있었는지요. 당신을 눈부신 듯 바라보던, 그리고 나를 선망하던 여인네들의 눈길, 당신은 어디서든 주목을 받았지요.

그런 당신 곁에 제가 서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제게는 설레는 일인 당신.
저는 줄곧 당신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박 오일동안의 남도 신혼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저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당신에게 저는 과연 명품일까 하는 의구심이 눈덩이처럼 커져 있었습니다.

첫날을 제외한 삼 일을 당신은 자주 혼자만의 상념 속에 잠겨 있었고, 마지막 날에는 침울한 빛이 역력했습니다. 당신의 환한 웃음을 보고자 했지만, 그때마다 더 당신은 홀로인 듯, 남인 듯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러던 당신이 슈트케이스를 끌며, 집을 나간 것은 결혼식을 올린 후 보름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른들 뵙기가 죄송했던 저는 당신을 막연히 기다렸습니다. 우리 사이의  아무것도 결정 되지 않은 그것이 무엇보다 저를 기다리게 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이미 다려 놓은 당신의 와이셔츠를 다리고 또 다리며,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에 대한 희망의 증거로  열심히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어머니와 함께 집안일을 도우며, 애써 환하게 지냈습니다. 
그런 제가 딱했는지 당신의 친구가 찾아와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었지만, 저는 찾아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당신을 찾아 가면, 당신을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어머니에게 저를 집에서 내보내라는 전화를 건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시절, 때때로 어머니와  저는 그것이 아주 대단한 일인양 휴일에 김밥을 싸서 대공원으로 소풍을 다녀오곤 했습니다.

“그짝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바람 같다고, 지 입으로 줄창 하던 이야기다. 아직 결혼 생활이 적응이 안 되어 그런 것이지 곧 돌아 올 것이다” 라는 말을 습관처럼 들려주시며, 어머니는 저를 다독이셨습니다.

아직도 저는 그 공원 옆을 지나가기가 싫습니다.

제가 당신을 기다렸던 이유 중에는 당신에게 저의 신뢰를 되찾고자 하는 오기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었다는 신뢰를 회복 시켜서 함께 가고자 하는.

회사로 출근하는 길에 바라 본 오늘 같은 하늘,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짐을 챙겼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일 년은 참으로 길었지만, 짧기도 했습니다.
달랑 가방 하나가 제가 그토록 꿈꾸었던 결혼생활 중 남은 것의 전부였습니다. 

 
너무나도 지쳐 있었습니다. 당신 집도 저의 친정도 아닌 곳, 제게는 그런 곳이 필요했습니다.
 당신의 집을 나와 시내의 호텔,  두 번째 만나 당신이 청혼했던, 근사하게 만찬을 즐기던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되돌아 보면, 그때 의심했어야 했습니다. 그토록이나 신속하게 당신이 내것이 될 수 있는 사실에요.

수분이 부족해 조금씩 시들어 가던,  저는 조금씩 약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죽으려던 것이냐구요? 아뇨. 그저 오래 잠들고 싶었을 뿐입니다. 오래 잠들었다 일어나면, 혹시 당신처럼 명품이 되어 있을까 싶었던, 바람도 있었지요. 그저 좀 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삼일 후, 깨어나 빛을 다시 견뎌야 했고, 무생물처럼 흐느적거리며 오년이란 시간을 다시 견뎌야 했습니다.

당신이 사 준  선글라스. 그것을 쓰고 있을 때는 당신만이 명품인 줄 알았는데 이제 안경을 벗으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제대로 보입니다. 저 빛나는 가을빛과 물결이 헤적이는 바닷가 풍경이 어찌 짝퉁일 수 있겠는지요.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상어가시 같던 이유, “명품신상인 줄 알았는데 구시즌의 재고였더라” 던 당신의 저에 대한 소회도 가뿐히 뽑아 버립니다.

선글라스를 잃어 버렸습니다. 아니, 당신과의 아픔뿐인 추억과 함께 그 배안에 버려두고 왔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저는 당신이란 명품으로부터 자유로와졌습니다.

 

핸드폰이 울립니다. 그이입니다. 결혼한 지 삼 년째인 남편. 평생 어떤 모습이더라도, 저를 명품으로 알고 사랑해 줄 남자의 전화입니다. 자주 감동하게 되는 그의 전화에 저는 즉각 시원한 대답을 합니다.

“ 배에서 내렸어요. 이제 역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갈 거에요. 사랑해요. 당신.”

 

아참, 그동안 제게는 스므살이 넘은 딸아이도 생겼습니다. 탐색전을 끝내고, 이제 막 친구가 되어 가는 그 아이에게 남자친구를 고를 때, 제가 말하는 첫 번째 주의 사항은 ‘짝퉁을 조심하라’ 입니다.

그대. 
당신을 사랑하던 그 마음이야말로 명품이란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당신을 귀히 여기는 사람을 홀대하는 무례를 범하며, 십 여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던힐과 아르마니의 신상을 즐기고 계실 그대. 
당신은 진정 '명품' 이었을까요?   


                                                  

 Circle Of Moons - Bill Douglas

 
IP *.180.129.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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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10.13 16:03:00 *.244.220.253

이거 실화같은데요. 자신의 흐릿한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놓고 계시군요.........
글을 읽으면서, 약간 두근거리는 것은 왜일까요? 마치 관음하는 착각이...........ㅎㅎㅎ

음~ 과거의 짝퉁여인을 그리워하신다는 것은 아니죠?
잃어버린 선글라스로 제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누님은 아직 소녀적 감수성을 많이 간직학 계신 것 같습니다. 위험한 영혼............농담!

인터뷰에서 방향을 선회하셨나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4기 연구원 중에 소설의 형태로 승부를 보는 분들이 많네요~ 선의의 경쟁, 모두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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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3 19:00:06 *.180.129.135
중환씨.그래도 우리 함께 공부한 것이 육개월도 넘었는데, 어찌 이 글이 제 이야기라고, ㅠㅠㅠ

타인의 상처를 인터뷰하다 보니, 어떻게 잘 전달 할 수 있을까 싶어 형식을 다양하게 해보려, 서간문의 형식으로 써 봤는데.

당연히 실화니, 소설은 더욱 아니지요. 인터뷰를 풀어 놓은 것이에요.

앞으로도 여러 모양으로 써 보려구요.
 여기에 올리는 시련 극복기는 인터뷰이의 귀한 사연이니 제 이야기라고 여기지 말아주세요. ㅎㅎㅎ

응원 쌩유. 중환씨 글도 잘 읽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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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10.13 23:25:44 *.111.35.149
아~하! 실화라.......인터뷰는 삶의 흔적과 상처들을 보듬어주는 좋은 친구군요.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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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3 21:58:44 *.163.65.181
좋은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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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00:19:55 *.180.129.135
음악을 올려 봤는데 버튼을 누르면, 음악이 들리네요. 발전한 홈피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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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10.14 09:42:55 *.160.33.149

앤이 점점 귀여워 지기 시작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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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10.14 10:08:27 *.122.143.151
당신의 글을 프린트해서, 지하철에서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무릎 위에서 사연이 스물스물 올라와
잠들어있던 마음 속 감정으로 파고 들어왔습니다.
사람의 인연을 끊고 잇는 것이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애닯고 가슴아픈 몸부림 속에 우리는 웃고 울게 되는 것 이겠죠...
먼 훗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리가 눈을 감을 때 쯤,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린 세상의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노라고 인정할 수 있겠죠...
그땐 아름다운 추억으로 아스라이 사라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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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0.14 13:50:41 *.97.37.242

인터뷰 형식보다 훨씬 맘에 드네요. 부드러워요.
소설이나 수필 같기도 하고, 한편의 시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책 쓸 때 이런 형식을 포함해서 여러가지 형식을 섞어 놓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이야기에 맞는 형식에 따라서 변화를 주는 거죠.
항상 컬럼을 늦게 올리더만, 이런 명품을 만들고 계셔구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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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10.14 17:11:55 *.127.99.29
이런 글이 그대의 매력이야.
시도 중에 가장 좋아.
이런 식으로 나가봐.
감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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