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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4일 14시 30분 등록

종종의 종종편지

덕질의 효용에 대한 고찰 - 덕질평행우주론




가끔 선물을 받습니다.

생일도 아니고, 기념일도 아니고, 딱히 답례를 받을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을 때가 있어요. “야, 딱 니거다!” “이거 보니까 종종님 생각이 났어요”라며 건네주는 선물들은 참 다양해요. 에코백, 텀블러, 조그만 인형, 안경집, 손수건, 동전지갑, 파우치, 책, 간식 등등. 이유도 없고 맥락도 없는 이 각양각색 선물들에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소품들이라는 것이죠. 


저는 주변 지인들은 물론 회사 내에서 잘 알려진 냥덕이자 고양이 집사입니다. 그러니까 제 지인이나 동료들은 딱히 챙겨야 할 기념일이나 답례할 일이 없어도 그냥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재미난 물건을 만나면 자동연상으로 저를 떠올리고는 “옛다, 너 이거 좋아하지?”라며 선물로 투척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조그만 선물 덕분에 그냥 저냥 흘러가던 하루가 축복과 감사와 발견의 날!로 변하는 기적을 경험하죠. 이것이 바로, 덕후만이 누릴 수 있는 덕질의 수많은 긍정적인 (그리고 매우 직접적인!) 효과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당장이라도 덕질을 시작해야 할 이유, 직간접적인 덕질의 효용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편지를 쓰는 중입니다. 이렇게 주변인들의 선물 투척과 같은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혜택도 물론 좋지만, 덕질의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효용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각지도 못한 커뮤니티의 형성인 것이죠. BTS의 팬이라면 아미의 이름으로 나이와 성별과 국경을 초월한 커뮤니티를 이루듯, 한 존재를 알고 사랑한다는 것으로 나누는 그 끈끈한 연대의식과 동질감! 



수년 전 남편이 길에 상자째 버려진 아기 고양이를 주워 오면서 시작된 저의 냥집사 입문은 정말이지 나홀로 용감+무식한 고군분투였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나름 베테랑 집사로 알려져 지인들이 고양이의 입양을 고민할 때마다 연락을 줍니다. 그러더니 하나씩 둘씩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아들인 지인들이 제법 많아졌어요. 덕분에 소식이 뜸했던 선배나 친구들이 나도 이젠 고양이를 키운다며 어여쁜 고양이 사진을 보내주거나, 좋은 고양이 병원이나 관련 책을 소개해달라며 연락이 오기도 하죠.


고양이를 모티브로 하는 전시나 예쁜 카페, 베이커리를 발견하면 서로 정보를 나누고, 고양이가 주인공인 영화가 개봉하면 집사들끼리 같이 영화 볼 약속을 잡기도 합니다. 전국 냥집사들의 지갑에 겨울을 선사한다는 궁디팡팡 캣 박람회에 갈 때는 아예 트렁크를 끌고 가족이 총출동하고요. 평소 외출 한 번 같이 하기 힘든 아들들도 지들이 애지중지하는 고양이 용품과 관련 굿즈를 사러 갈 때는 군말없이 따라 나선단 말이죠. 그렇게 끊겼던 인연이 다시 이어지기도 하고, 원래 친했던 지인이나 가족과도 남들은 모르는 집사의 세계를 공유하며 더욱 돈독한 사이로 발전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요즘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덕질을 하다보면 뜻밖에 교양까지 쌓게 됩니다. 처음엔 너무 어린 고양이의 육아법을 찾느라 시작된 독서가, 고양이와의 생활을 그려낸 에세이(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카렐 차페크)로, 고양이를 예쁘게 담아낸 사진집(하루를 견디면 선물처럼 밤이 온다/김하연)에서 그림책(100만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으로 옮겨가더니 동물생태학(캣센스/존 브래드쇼)으로 확장되었고 나중에는 신적인 존재에서 악마의 동반자를 넘나드는 고양이의 문화적, 상징적 기원을 다루는 심리학 서적(고양이와 융 심리학/루이제 폰 프란츠)과 역사 서적(고양이 대학살/로버트 단턴)까지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본인의 직장에 홍보 차 전달되는 책들 중 반려동물에 관련한 책들이 쌓이면 챙겨주는 신문사의 지인까지 생겨나는 짭짤한 부수 효과도 있었네요.^^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수집하고 섭렵한 고양이책 컬렉션이 빼곡하게 꽂힌 책장을 보면  흐뭇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었지요.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긴,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의미랍니다. 그게 꼭 사람이 아니어도, 무언가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요즘 멀티버스니 평행우주니 하면서 또다른 내가 살고 있는 다른 세상이 수없이 존재하는 차원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유행이잖아요. 이 곳에선 내가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살고 있는 행복한 엄마지만, 또다른 세계에서는 세계의 종말을 불러올 초능력자이고, 그 둘이 세계를 넘나들다 만나게 되면 우주의 붕괴가 온다! 이런 설정, 익숙하시죠? 


새로운 관심의 대상을 발견하고, 애정이 싹터 덕질을 시작한다는 것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멀티버스 못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내 안에 구축하고 또 외부로 확장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물론 우주를 붕괴시킬 위험 따위는 없는 새롭고 멋진 세계를 만나는 거죠. 제가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이자 냥덕이었기에 다시 만나게 된 친구, 한 커뮤니티에서 교류하게 된 나이도 직업도 천차만별인 집사들, 읽게 된 새로운 책들과 전시와 영화와 이벤트들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요. 골치아픈 회사일이나 끝없는 살림의 쳇바퀴 속에 좋아하는 이런 소소한 취향을 공유할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 쉴 틈이 만들어지고 기분 좋은 에너지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도, 어린 고양이를 키우고 가족으로 받아들임으로 인해 생겨난 나 스스로의 변화는 정말이지… 편지 한 두 장으로는 다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다음 기회에! 여튼 고양이로 시작한 덕질의 소소하고 부수적인 효용의 설파는 일단 여기까지 소개 드리고, 오늘은 누구나 한 번 들으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숨겨진 명곡, 선우정아의 ‘고양이’를 소개해드리며 오늘의 편지를 마칠까 합니다.


다시 생각해봐

이게 우리 최선은 아닐 거잖아

왜 애써 네 맘을 숨겨 자 나를 봐

이렇게 금방 낚이는 시선

좀 더 가까이 그렇게 말고

이렇게 포근하게

작은 내 심장 소리에 감동하게

함께 좀 더 있자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

난 외로웠 아니 심심했어

어차피 넌 늦었어 분명 후회할 걸

뒤돌아 선 순간부터

넌 날 그리워하게 될 거야

넌 날 그리워하게 될 거야

한 번 빠지면 답이 없지

어쩔 수 없어 태생인 걸

다시 생각해봐


선우정아의 고양이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AKSpQUPbb74


고양이든 강아지든,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고 애정을 쏟을 대상이 되어주는 모든 귀여운 존재들과 그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덕후들에게 이 새침하고 어어쁜 노래를 바칩니다. 즐거운 오후 되세요~   



        To cats,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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