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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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꽃샘추위 이겨내고 붉은잎이 온통 사방에 터져나온다.
이쁘고 곱다. 그런데 웬지 모르게 슬프다.
저 이쁘게 피어나는 복사꽃을 보면 ‘난중일기의 이순신’이 생각난다.
철갑을 두르고 긴 칼을 차고 매서운 눈매를 지닌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이 떠오른다.
난중일기를 속의 이순신은, 아들을 잃고 한걸음에 달려가지 못했다.
혼자 들끓는 가슴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장군이 너무도 안타까워 차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오래도록 울었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공무를 보고 일기를 쓴다. 다음날도 공무를 보고 일기를 쓰고 그 다음날도 공무를 보고 일기를 쓴다. 그리고는 마침내 코피를 한되 남짓 쏟고 그는 울고 또 울었다.
그는 용맹하였으나 인간이기에 바다가 두려웠고, 바다를 뒤덮은 열 배가 넘는 수량의 왜선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는 나라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였으나 자신을 시기하는 무리들과 그 시기에 휩싸여 죽음까지 몰아갔던 임금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자식으로서 어머님의 상을 치루지도 못하고 백의종군 하여야 했던 그의 삶이, 자식의 죽음을 먼저 보아야 만 했던 그의 비통함이 저 복사꽃 속에 짙게 묻어있는 듯 하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망망대해의 수루에서 달빛이 찬연히 빛나고 비단결 같은 물결이 일 때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절규가 바람에 흩날리는 저 꽃잎속에 들리는 듯 하다.
내일이 더 환해지기를 원하거든, 혹한을 지펴 피어오른 복사나무의 분홍 곁으로 가라.
복사의 오래고 긴 참음이 아니면, 산과 들 어찌 저리 물들겠느냐
그 아픈 힘 아니면, 산이 마을까지 내려와 말 걸겠느냐 / 이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