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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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라지고 나니 이런 것들을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은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한낱 기록과 내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제 엄마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오롯이 내 숙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돌고 도는 인생인지, 또 얼마나 달콤 쌉싸름한 일인지. 자식이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 주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 보관인을 기록하는 일이. -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제 첫 책은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기억과 애도를 담은 책이었는데, 최근에 <H 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을 찾아보다가 저와 비슷한 부모님에 대한 상실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부모님을 먼저 떠나보내게 되는데, 이 상실감,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도, 함께 했던 추억,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생각들이 마음을 가득 채워 뜻밖의 상황에서 눈물을 흘린다든가, 비슷한 연배의 사람을 보면 분별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들에서 저만 특별히 헤어 나오질 못 했던 것이라기보다는 상실의 고통을 겪은 남겨진 자식들 대부분의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실에 대한 생각을 담은 더 다양한 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 며칠 사이 아빠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아빠의 절친, 제자를 만났고 심지어는 일로 만난 동료 중에 아빠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셨던 동료의 자제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시점에서 아빠와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가 아빠에 대한 책을 쓰긴 했지만, 그것은 딸로서 가진 기억뿐이니, 아빠의 전체 인생을 놓고 보았을 때는 어느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공간에 같이 있었어도 각자 생각하고 경험한 것이 다를 수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나의 가족이었지만 아빠라는 개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대 중반까지의 삶이 어떤 식으로 개인에게 다가오는지를 알게 되면서, 비슷한 시기의 부모님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지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혹시 사진이 남아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지난번에 크게 이사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사진들을 처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부모님의 결혼식이나 부모님 친구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친구가 되었는지, 친척들이 부르는 아빠 친구의 별명 같은 것을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저희 부모님은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시는 편은 아니셨지만, 제 쪽에서도 한 번도 여쭤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얼마 전에 만난 아빠의 지인들을 통해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어떤지는, 그 대상을 잃어보면 안다는 말이 있는데 부모님이란 존재가 특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물어보지 않으면 영영 물어볼 사람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님에 대해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대로 남겨지게 됩니다. 어디서나 나를 걱정해 주고 나에게 전화를 걸고 잔소리를 해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이 어디서 결혼하셨는지,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셨는지 알고 계시나요? 제 나이 또래에 겪게 되는 중대한 일을 부모님은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혹시 물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반대로 자녀들에게 자신의 지난 일을 이야기하신 적이 있으셨나요? 저는 제 지금까지의 인생을 전부 지켜보았던 부모님의 삶을 조금씩 더 묻고 기억해 보려 합니다. 물론 이것조차 완벽하지 않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제 자신을 좀 더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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