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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9일 17시 2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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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편지 - 종종의 종종덕질

이야기, 어려운 시절을 끈질지게 버티는 방식

 

코로나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또 코로나였습니다...

무려 2년 반만인가요?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지침이 보도된 순간부터 이제 팬데믹은 끝인가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들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며칠 전부터 일일 확진자 수가 4만 명을 넘었고 다시 코로나 난민생활이 시작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맥이 탁 풀립니다. 이제 무료검진이나 격리와 치료를 위한 지원도 없다는데, 다가올 코로나의 파고를 이번에는 각자 알아서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고 허탈한 기분도 들고요.

 

어쨌거나 주말, 다가올 긴 터널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갔습니다. 그리고 2층 인문학 열람실의 서고를 어슬렁거리다 집어든 책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데카메론 프로젝트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였습니다. 책이 발간된 것은 2020년 말, 코로나의 1차 파고가 전 지구를 강타하고 미국과 유럽이 완전봉쇄에 들어간 시기였죠. 마거릿 애트우드를 비롯, 걸출한 작가 29인이 모여 팬데믹을 주제로 이야기를 써 모은 단편집이 나왔다더니 그게 바로 이 책이었던 겁니다.

 

안 들어본 사람은 없지만,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저 유명한 데카메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페스트로 유럽 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진 시기에 전염병을 피해 시골로 피난 온 10명의 등장인물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눈 10개의 이야기를 모은 책입니다. 감이 딱 오시죠? 이런 전례 없는 팬데믹을 맞은 마당에 출판기획자가 어찌 데카메론을 그냥 둘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코로나의 시대를 통과하는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이 비현실적인 현실을 소재로 이야기를 써낸다면 어떤 작품들이 탄생할까, 라는 생각이 들 법하지 않나요.  이에 20203, 뉴욕타임스 편집자들이 현재의 팬데믹이 지구를 휩쓰는 동안 집필된 단편소설을 한곳에 모으겠다는 목적으로 단편선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놀랍게도 단 시일 내에 29개의 작품이 모여 2020년이 가기 전에 떡하니 책이 나오게 된 거죠.

 

저는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참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당시에는 도저히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지금 전 세계를 온통 지배하고 있는 전염병의 시대를 책에서까지...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그 예리한 필치로 파헤친 현실에 직면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나서 그 책을 다시 만난 거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의 시대에 여전히 붙잡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겪은 게 있다고, 그때처럼 책이 버겁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책을 빌려 띠지부터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한 자 한 자 눈으로 읽고 장면들은 마음 속 캔버스에 구현하며 읽어 보았습니다. 덕분에 푸른 수염과 천일야화를 영리하게 뒤집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부터 코로나 봉쇄로 인한 배급제의 해프닝을 따뜻한 우화로 풀어낸 매튜 베이커의 단편까지, 한 코스도 빼놓을 수 없는 29가지 코스의 멋진 성찬을 즐길 수 있었지요. 대부분 10페이지 내외의 초단편들이고, 마치 차 한 잔을 놓고 솜씨 좋은 이야기꾼들이 그러니까 말야. 이 이야기는 내가 직접 들은 건데…”라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같은 구성이라 술술 넘어갑니다.

 

이 보석 같은 단편들의 스포일러를 노출시키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다행히 이 29개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와도 같은 글이 한 편 있거든요. 첫 글로 삽입된 리브카 칼첸의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들의 한 문장과 편집자가 남긴 기획의도의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 이 책을 권하는 이유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소설을 읽는 것은 그 시기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그 시기를 끈기 있게 버텨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들>, 리브카 갈첸

 

초현실적인 현실을 이해하는 가장 멋진 소설적 상상들!

이 작품들은 우리 생애의 그 어느 때와도 다른 지금의 시간과 장소에 바치는 역사적 헌사로 기억될 것이며, 현재의 독자, 그리고 우리의 바람대로 코로나 19가 그저 기억으로만 남게 될 미래의 독자에게 통찰과 위안을 제공할 것이다.’

 

참 신기하지요? 다시 시작된 코로나의 시간을 예감하며 답답했던 제 심정은, 이 책을 읽고 기획자의 의도처럼 조금은 누그러졌거든요. 전세계가 코로나로 가장 힘든 터널을 건너는 동안 기록하고 상상한 29가지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묘하게 위안을 받았어요. 지난 2년 여간 우리는 어쩌면 책 속의 단편들보다 더 기이하고 무시무시하고 고독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겪었잖아요. 그런데 그 긴 터널을 어떻게든 지나온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우리와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다시 어두운 터널에 들어가야 할지라도, 어떤 것이 그 어둠 속에 숨어 있을지 알지 못한 채 들어가야 했던 때보다는 훨씬 준비된 나를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이번 화요편지는 다가올 또 다른 코로나의 시기를 씩씩하게 건너가자는 다짐과 함께, 공감과 위로를 선사할 책 한 권을 소개하려는 목적이었구요. 이 멋진 책과 함께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로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마빈 게이, 타미 티렐의 듀엣 버전이 너무 좋은, Ain’t No Mountain Higher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함께 라면, 오르지 못할 높은 산이 어디 매며, 건너지 못할 깊은 강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C_3eYj-p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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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0 21:26:47 *.169.227.25

술 마신지 오래 됐는데  오늘은  술 한 잔 마시며  다시 들어 보고 싶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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