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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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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4일 14시 12분 등록

주변소화(周邊小話, 주변의 소심 이야기) #2


 

  그의 외모나 성격은 보잘것 없었지만 음악적 재능은 조금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대학생 시절, 그는 열심히 교회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다녔던 교회는 작은 규모긴 했으나, 그 곳에서 청년부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그가 그렇지 못한 일반 사람들에 비해 약간의 음악적 탈렌트를 가졌었음을 보여주는 한가지 예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고등부때 교회 회장이란 감투를 썼다고 하는데, 이는 그가 남들 앞에 서서 리더의 역할도 했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게다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도 반장으로 선출된 경력이 있다고 우기니 어쨌든 리더로써 활동했다는 그의 경력도 인정해주지 않을 순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그가 리더의 길을 승승장구하며 걸었던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교회 고등부 회장으로 활동할 때, 그의 독선적이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집으로 인해 부회장을 비롯한 다른 운영진들과 많은 트러블을 일으켰다고 한다. 게다가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선 특유의 우유부단함을 발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만들어 주변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조그만 교회의 회장자리도 그러했으니 학교의 반장 역할은 어떠했겠는가! 담임 선생님의 계속되는 요구, 반 학우들의 끊임없는 반발에 힘들어하다가 결국 1학기만 마친 채 눈물을 흘리며 반장자리를 내 놓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가 리더로써의 자질이 있었는지, 혹은 자격이 되는지 아닌지를 떠나 그의 소심한 성격상 책임을 지고 남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는 이때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 후로 그는 절대 남의 앞에 서는 일을 잘 하지 않는다. 매사 주변을 돌며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자리를 지켜 나가는 것.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방식이 되었다. 또한 자발적으로 먼저 나서서 하는 일은--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가능한 한 하지 않게 되었다. 한마디로 스스로를 소심 속에 가두게 된 것이다.


  그의 소심한 성격상 어떻게 결혼까지 성공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는가? 그처럼 소심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연애와 결혼을 잘 할 수 있을까? 아마 그에게도 나름대로의 전략이 있지 않았을까? 그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그가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미팅이란 걸 해본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라고 한다. 교회 여자 후배가 그를 비롯한 몇 명의 선배들을 위해 자신의 친구들을 동원하여 미팅을 주선하였다. 인원은 총 8명으로 4 대 4 미팅으로 진행되었다. 조그만 빵집에서 빵과 음료수를 앞에 둔 채 미팅은 시작되었지만, 그는 소심에 대해서 만큼은 남들이 전혀 따라오지 못할 두각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일단 얼굴이 빨개진 상태에서 고개를 반쯤 숙이고 제대로 상대 여학생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한 채 곁눈질로만 힐끔힐끔--들킬까봐 최대한 신중하게 조심해가며-- 상대방을 쳐다보고만 있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답답하며 황당한 시츄에이션이었겠는가!! 그가 그 자리에서 입을 열어 말을 한 건 아마도 2, 3번 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 또한  꽤나 용기를 내서 한 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결과는? 불문가지 아니겠는가? 그는 크게 낙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몹시 자책했다고 한다. 자신의 소심에 대해서, 용기 없음에 대해서. 하지만 의외의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미팅 자리에서 그와 파트너를 했던 여학생이 아닌, 다른 친구와 파트너를 했던 여학생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관심을 보였다는 그 여학생은 미팅 주선을 한 여자 후배와 제일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길 잃고 비에 홀딱 젖은 강아지마냥 초라한 그의 모습을 본 여자 후배가 그 여학생을 반 강제로 협박하여 그를 한번 만나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녀는 제일 친한 친구의 부탁에 감히 거절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이제 미팅이 아닌 소개팅 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심기일전, 의욕충만한 그는 새로운 전략-소심을 이겨내고 대화를 주도한다-을 들고 나와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한다. 그는 이번기회를 놓치면 여자친구를 가지기 어렵다는 생각에 더욱 열정을 가지고 대화를 이끌었다. 그 결과... 역시나 1번의 만남이 마지막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들어본 즉, 그 여학생은 소개팅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은데 반해, 그는 너무 진지하게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라.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좋았지만, 그 주제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의 인생에서 죽음의 의미란 무엇인가?’, ‘기독교인으로써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자주 절망하며 포기하는가?’와 같은 종류의 것들이라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앉아있고 싶었겠는가? 소개팅이 끝난 후 그 여학생은 여자 후배에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제발 부탁인데 그 사람 다시는 소개팅에 보내지 마라. 이제 희생자는 나 하나로 족하다.....”


  그의 충격은 이루 비길 데가 없었다고 한다. 그 충격에 그 이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일절 미팅이며 소개팅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 여자에게 인기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소심한 자신이 미웠다. 대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더욱 소심해졌다. 소심과 자주 어울려 놀았고, 소심과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의 곁에 항상 머물러 준 유일한 친구는 바로 소심이었다. 그는 과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고, 그런 그를 찾는 사람은 몇 명되지 않았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조그만 회사에 취직하였다. 그리고 업무상 필요한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 등록을 하였는데, 그 곳에서 여자 후배를 한명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바로 그에겐 산타클로스였다고 한다.  왜냐면 그녀는 발이 넓어 주위에 알고 지내는 많은 여자선배들이 있었고, 특이하게도 소심한 그를 이쁘게(?) 본 그녀가 그에게 소개팅 자리를 무한리필(?) 해주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그가 그녀에게 받은 정신적?물질적 피해는 만만치 않았지만 그녀는 결론적으로 그에게 결혼상대를 소개해 주는 엄청난 도움을 주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딱 2번의 소개팅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이 말은 그가 소개팅에서 2번째 만난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삶이 재밌다는 건 2명의 여자 모두 키, 외모, 풍기는 이미지까지 비슷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2번째 여자와 결혼하였다. 어째서였을까? 그의 말에 의하면 첫 번째 여자와의 실패 때문이라고 했다. 그 실패가 두 번째 만난 여자와의 결혼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패라고 하니까 웬지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딱 2번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만날 때마다 주룩주룩 장마비가 이어졌고, 비 때문에 만남의 자리는 밝고 활발한 느낌보다는 다소 침체되고 침울한 분위기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야기 또한 무겁고 진지해져--마치 고등학교 첫미팅 때처럼--2번째 만남 이후 여자 쪽에서 그만 만나자고 연락이 왔고, 그는 다시 깊숙한 바다 속으로 점점 가라앉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마음을 곧추 잡았다. ‘무한리필’이란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을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 속으로 다시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한다. 그리고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문제가 진지한 이야기만 하는 자신에 있다 판단하고, 무조건 첫 번째 만남에선 상대를 즐겁게 해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약속장소에 나가기 전, 갖가지 재밌는 이야기들을 주워 모아 외울 건 외우고 도저히 외워지지 않는 건 쪽지에 적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떠벌렸다. 상대 여자는 그의 이야기에 많이 웃었다. 예상치 않은 반응에 그는 신이나서 더욱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 내었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그 여자는 그의 ‘썰렁함’에, 그리고 그 ‘썰렁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열심히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이 재밌어서 웃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첫 만남에서 호감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리고 그는 용기를 얻어 과감히 두 번째 전략을 구사하였다. 첫 만남에서 그녀가 꽃을 좋아한다는 것--여자라면 누구나 좋아하겠지만--을 용케(?) 알아채고 두 번째 만남부터 장미꽃을 한 송이, 한 송이씩 늘려갔다고 한다.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장미꽃은 점점 다발이 되어갔고, 커지는 크기만큼 그들의 사랑도 커갔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11개월 후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서로의 모습을 결혼식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 안데르센도, 철학가 칸트도 평생 이루지 못한 대단한 일--결혼--을 이루어내고야 만 것이다!! 박수~ 짝짝짝!!!


  소심한 그가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탁월한 전략? 용기? 자신감? 내 생각엔 모두 아니다. 그가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소심함을 눈치채고도 그를 너그러이 받아 들여준 그녀의 대범함에 있었던 것이다!! 그 뭐냐, 유행가 노래제목도 있지 않은가. ‘남자는 소심한 배 여자는 대범한 항구’라고... 아무튼 그는 그녀의 넓은(?) 품에 안겨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면서 다들 눈치채셨을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의 주인공은 나다. 소심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때로는 자책까지 했었던 바로 나의 이야기다. 나는 소심함이 싫었다. 아마 대부분의 소심남녀들이 그럴 것이다. 소심함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자신만만하게, 대범하게 인생을 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주저 앉아 울고 있을 것이다. 끈질기게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소심 때문에 스스로의 인생이 필 수 없음을 탓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소심한 자신을 고치거나 바꿀 수 있을까. 어느 곳을 찾아가야, 누구를 만나야만 이 ‘소심병’을 완쾌할 수 있을까. 궁금한가? 나도 궁금하다. 혹시 누가 알고 있다면 나에게 답을 다오. 나도 고치러 가고 싶다. 혼자만 살짜꿍 가지 말고, 꼭 나도 데려가기 바란다. 연락주시라......... O_O......    제발...........   풀히이즈(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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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10.24 23:03:46 *.111.35.149
축하드립니다. WkrWkrWkr!
험난한 과정을 통해 지금의 미인을 얻으셨군요. 옥동자와 공주님도.......언제 한번 노래 실력 함 보여주시죠?
(참고로 글 속에서는 전혀 소심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두 얼굴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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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0.27 14:31:26 *.97.37.242

장미꽃다발. 소심을 극복해낸 비밀이 거기 있었군.
나도 결혼 전에 엄청난 장미 공세를 보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혼자일껄?
성공한 사람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게 마련이야. 그치? 우리 성공한거 맞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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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10.27 18:50:38 *.37.24.93
형 정말 성공했네. 형수님 아니었으면 어쩔뻔했수.
형수님이 더 대범하다는데 적극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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