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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편지 - 종종의 종종덕질
인사 담당자와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책 선물을 좋아하시나요?
공짜는 무엇이든 좋다지만, 저는 직접 고르지 않은 책을 잘 읽지 못합니다. 물론 저의 관심사를 잘 알고 일부러 책을 골라 선물해주시는 경우는 염치불구하고 넙죽 받아 읽지요. 하지만 책에 대해선 워낙 관심사와 선호도가 뚜렷하고, 나름의 기준으로 골라 읽는 책들의 리스트가 늘 대기 중인 상태라 읽을 시간이 모자라요. 게다가 아는 사람이 쓴 책은 읽을 엄두가 안 납니다. 사이가 가까울수록 더 그렇죠.
왜냐면요. 너무 잘 쓴 책이면 질투가 나서 속이 쓰릴 거 아닙니까. 주제가 제 관심사 밖이면 책을 펼치는 것 자체가 힘들고요. 무엇보다도 책이 맘에 안 들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난감합니다.
가까운 지인의 책이면 응당 성실히 읽고 피드백을 해야 할 텐데, 사실 저라는 사람은 어느 작가분이 말씀하셨듯 ‘손은 무딘데 눈은 높은 자의 슬픔’이라고, 자기 글 쓰는 건 죽도록 어려워하는 주제에 눈만 높아서 까탈하기 짝이 없는 독자거든요.
그런데 최근, 가까운 지인이 저를 위한 메시지를 담아 사인까지 한 책을 선물 받고 말았습니다. 분야 또한 제가 자의로는 읽을 일이 없는 자기계발서인지라 내가 이 책을 과연 읽어낼 수 있을지… 난감했어요. 며칠째 받은 책을 가방에서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가, 지난 주말 맘 먹고 책을 읽어볼 요량으로 털레털레 카페에 갔습니다.
저자는 기업의 인사책임자로 오랜 커리어를 쌓아온 전문가입니다. 과거 한 직장에서 각각 인사팀과 홍보팀의 팀장으로 일했던 그녀와 저는, 함께 일했던 기간도 길지만 각기 다른 회사로 옮긴 후 편하게 만나온 기간이 더 긴 업계의 동료이자 친구 사이지요. 그런 그녀의 책을 대충 읽을 수도 없고, 안 읽고 모른 척할 수는 더더욱 없는 터라 내심 부담이 됐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 책을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형광펜으로 이곳 저곳 인용할 문구까지 표시해가며 단숨에 읽어 버렸습니다. 읽는 내내, 이영애와 똑 닮은 목소리의 소유자인 그녀가 제 곁에 앉아 조곤 조곤 자신의 생각을 들려 주는 것만 같아 반갑고 흐뭇한 기분으로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어요.
‘인사의 다섯 가지 시선’이라 이름한 그녀의 책은,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은 30대를 위한 인사담당자와의 커피 한 잔’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존감, 성장, 관계, 다양성, 삶’이라는 다섯 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일의 의미를 찾고 자신을 성장시키게 해준 다양한 경험과 통찰, 당장 써먹어도 좋을 꿀팁을 서른네편의 에피소드에 담아 들려줍니다.
20여 년간 다양한 기업과 지역에서 인사책임자로 활약해온 전문가답게, 그녀는 조직과 개인의 관계를 꿰뚫는 예리한 시각과 노하우를 담아내면서도, 때로는 정글 같은 조직 안에서 살아남고 성장하고자 최선을 다한 개인의 진심을 곳곳에 묻어 두었더라고요. 게다가 성공한 부분만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통해 배운 점들마저 아낌없이 나눠주려는 마음씀이 많은 이들에게 가 닿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저는 모든 직장인들을 헬게이트로 몰고 가는 ‘성과 평가’에 대해, 인사전문가인 그녀가 해준 말이 너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매년 성과평가가 끝나고 나면 낙담하며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종종 보게 된다.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결과를 만들었는데, 기대보다 낮은 평가등급을 받으면 상사에 대한 배신감과 자기역량에 대한 의문으로 힘들어 한다. 일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조직정치까지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렇죠! 정말이지 이놈의 성과평가 시즌만 되면 평가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난리가 납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과평가 후 퇴사나 이직을 결심하고요. 이 말 많고 탈 많은, 그러나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성과평가를 관리하고 정당성을 옹호해야 하는 인사팀의 리더로서 그녀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 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성과 평가는 ‘사람’이 아닌 그냥 ‘성과’에 대한 평가일 뿐이다. 다음에 잘 받으면 된다. 기대와 다른 결과를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장기적으로는 스스로의 성장과 조직에서의 성공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 그렇죠… 다음에 잘 받으면 되죠. 그래도 상처받은 마음이 어디 그리 쉽게 정리가 되나요. 하지만 지금 직면하고 있는 것이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닌 그 기간의 특정한 성과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되짚어보는 것은, 계속 제 자리를 맴돌게 만드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철학자 강신주 씨가 한 TV프로그램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공감이 가는 말이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의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서 나의 가치를 찾으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단단히 부여잡고 있기를 바란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인사책임자인 그녀가, 성과평가의 한계와 그것을 넘어서는 방법에 대해 이토록 담담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조언해준 것이 저는 고마웠습니다. 하긴, 회사는 버티는 자가 승자인 공간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자신을 지키며 버티는 방법이지요. 그녀의 말은 모든 평가를 무시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를 내도, 남이 하는 평가가 내 일의 가치를 늘 제대로 반영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 직면하면 나의 노력과 역량이 부정 당한다는 생각에 분노와 좌절을 넘어 이 곳에서 계속 일하는 게 맞는가 의문을 품게 되지요.
그런데 남의 인정이란 한 때, 한 국면에 불과하고, 조그마한 변수에도 달라집니다. 같은 성과도 조직이 처한 상황과 상사의 이해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정당한 평가를 받고 노력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에도 나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런 순간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을 믿고 버티면서, 장기간의 레이스를 통해 계속 스스로를 성장시켜서 좋은 평판을 쌓아온 이들이 지금 인정받는 리더들로 남아있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까 당장의 좌절 앞에 부서지기 일쑤였던 30대의 나에게, 그녀와 같은 든든한 조언자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서 저는 아끼는 후배들에게 이 책을 선물할 생각입니다. 아, 저의 서른 시절에도 그녀와 친구 아니었냐고요? 맞아요. 그런데 그 시절엔 이 냥반도 저 못지 않게 우당탕탕 고군분투하며 지내던 시절이었다, 이겁니다. 심지어 그녀와 나는 일하는 방식이나 취향, 성격, 외양마저 완전히 상반된 스타일이라, 당시엔 서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때가 많았습니다. MBTI로 설명하자면 ‘ISTJ와 ENFP의 잘못된 만남’이랄까요...^^;
그럼에도 상대방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번번이 충돌하면서도 나와 다른 강점을 가진 동료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가까이하기엔 너무 달랐던 두 사람이었지만, 오랜 시간을 부대끼며 결국 부서를 넘어 협업하는 파트너로, 회사를 떠나서도 서로 조언을 구하는 좋은 친구로 남게 되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책에서 주목한 경력계발의 키워드 중 ‘다양성’의 의미를 저는 그녀와의 관계에서 배웠네요. 덕분에 ‘달라서 힘든 게 아니라, 달라서 재밌고 더 큰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분투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에, 저는 그녀의 첫 책 출간이 남의 일 같지 않게 기쁩니다. 나아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올린 동료의 내공을, 그리고 사람의 일 ‘인사’를 사랑하는 친구의 진심을 간증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인사전문가와 커피 한 잔’, 딱 책의 부제처럼 일의 의미와 성장의 키워드를 찾고 싶은 당신을 위한 살뜰한 조언과 다정한 위로를 꼭 만나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조언은, ‘진짜’거든요.
오늘, 비 온 뒤 말끔해진 거리처럼 싱그러운 한 곡을 띄우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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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그랬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성과 없이 돌아오면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였지요 ... !
"스포츠의 세계"
삶의 동력을 '지연, 학연 같은 인간 관계'에 두지 않고 '더 나은 능력의 확보를 통한 승부'에 두었던 저는
생존을 위한 절박함을 끝없는 에너지로 작동시킴으로써 삶을 꾸리는 방식을 택했죠
변명이 불가능하고 너무도 적나라한 제로섬의 세계, 순위를 안고 돌아 올 때마다,
임자없는 선수촌의 침대에 누울 때마다 비장한 각오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전쟁이었지요.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전쟁, 어쩌면 가장 처절한 전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그 반 백년의 세월을 돌이키는 나이가 됐습니다.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고 멈추어 선 그 순간들은 아직 열정과 회한의 떨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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