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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6일 20시 44분 등록


“사람 살 곳이 아니야”
몇 사람이 밥을 먹다가 나온 소리다. 어디가 사람 살 곳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지칭 당한 곳은 한국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다는 동네다. 교육열이 높다는 것은 공식적인 표현이고, 한국적으로 말하면 경쟁이 심하고, 좋은 고등학교나 대학교 진학률이 높으며, 잘 가르친다는 학원이 많다는 뜻이다. 그 곳이 왜 사람 살 곳이 아니냐?
말인즉슨 이렇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얼마 전에 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좀 써보자는 의식이 행동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사를 가던 날 이삿짐을 나르고 있는데 앞집 문이 열리면서 사람이 나왔다. 그래서 인사를 했다고 한다. “앞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입니다.” 했더니 앞집 사람 왈 “예전에 앞집에 살던 사람과는 왕래가 없었어요.” 무슨 말인가 하니, 서로 모른 척 하고 살자 이 말이다.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내린 결론이다. “사람 살 곳이 아니야.” 거기에 덧붙이는 말. 이사 오기 전 살던 곳에서는 앞집 사람이 재배한 상추도 나눠먹고 했는데 새로 이사 간 곳은 너무 삭막하다는 것이다. 그 동네는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아이들 교육만을 목표로 살기 때문에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단다. 오로지 돈으로 내질러서 아이들 성적을 올리고 좋은 학교 보내는 게 그곳에 사는 오직 하나의 목적이란다. 그러면서 그런 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적은 좋고 좋은 학교는 갈지 모르겠지만 성정이 어떻게 형성될지 걱정이란다.

이해가 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소리다. 말 그대로 삭막하다.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말이다. 같이 밥 먹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이가는 말이다. 정말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말이다. 이건 지나친 아이러니가 아닌가. 그렇게 삭막한 곳에 사람들은 왜 모여드나. 왜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사를 가려하고, 위장 전입을 하면서까지 아이를 그곳 학교로 보내려 하는가. 다른 사람 말할 것 없다. 당장 우리 자신을 생각해도 그렇다. 사람 살지 못할 곳, 아이들 성정이 걱정되는 곳, 부모로써 아이들이 걱정되는 그런 곳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은 무어냐 말이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아이들이 자라면서 남을 돌아볼 줄 모르고, 친구도 경쟁자의 하나일 뿐이고, 모든 것을 취하려고만 하는 성격으로 자랄 것이 걱정된다면 그 지역으로 이사를 가지 않으면 된다. 이미 이사를 갔으면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된다. 맹자의 어머니도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면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요즘 부모들이 이사 세 번이 두렵겠나. 세 번이 아니라 삼십 번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니 다른 걱정이 앞선다. 자기 자식이 좋은 고등학교를, 좋은 대학교를 가지 못갈 것 같은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이제 선택이 앞에 있다. 둘 중에 하나의 선택이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교를 가느냐, 아니면 아이들답게 사람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느냐 이다. 이 선택은 사실 모두가 알고 있는 큰 함정을 지니고 있다. 학군 좋은 곳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좋은 학교에 진학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 지역 아이들이 모두 좋은 학교에 간다면 이미 그 인원으로도 정원초과다. 어차피 그 곳에서도 성과는 나누어진다. 인정이 삭막한 곳에 산다고 아이들이 모두 비뚤어지지도 않는다. 학군은 별로 좋지 않지만 사람 사는 것 같은 동네에서 학교를 다닌다면 좋은 학교에 진학할 확률은 뚝 떨어진다. 반면에 모두 성정 좋은 아이로 자라나는 것도 보장이 없다. 성적이 안 좋아지면서 되레 빗나갈 우려도 있다. 명문대학에 아예 못가는 것도 아니다. 실력만 좋으면 어느 학교든 갈 수 있으니까.
어차피 모든 것은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고, 모든 것은 기대감에서 나온다. 가능성과 기대감을 뛰어넘는 것은 욕심이다. 자신의 아이들이 명문 대학에 가고, 명문 대학 졸업장을 토대로 사회에서 남보다 훨씬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훨씬 나은, 훨씬 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좋은 점수를 맞아야 한다. 남들 다 하는 학교공부로는 부족하다. 고액 학원을 다니고 고액 과외를 한다. 월급으로는 모자라 아내들도 돈을 벌기 위해 나선다. 경쟁은 경쟁을 부르고 경쟁은 마침표도 없이 질주한다. 질주가 이어지다보면 무엇을 위한 질주인지조차 잊어버린다. 그냥 달린다. 너 나 할 것 없이 죽기 살기로 달린다. 당연히 주위사람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눈에 들어오는 주위사람이 있다면 그는 넘어서야 할 대상일 뿐이다. 같이 뛰어야 할 친구가 아닌 것이다. 그 욕심이 선택을 좌우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간다. 아이들 성정보다는 좋은 대학 가는 것을 우선으로 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돈이 여유 있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돈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한다. 수요에 따라 집값이 오르고 비싼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돈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돈 없는 사람들은 위장전입을 하거나, 학군 좋은 곳에 사는 걸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게 아니야” 또는 “이게 아닐지도 몰라”라고 말한다. 학군 좋은 곳으로 집을 옮긴 사람도 얼마 전에는 “나도 좋은 학교 나왔지만 좋은 학교 나왔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더라, 행복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렇다.”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 아이들은 학원을 한 곳밖에 보내지 않는다. 왜 아이들을 새벽까지 학원에 보내는지 모르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이제 그 사람은 다른 누구 못지않게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성적을 챙긴다. 서로 욕하면서 우리들은 자신이 욕하는 사람들 곁으로, 욕을 먹는 곳으로 기를 쓰고 간다. 그 테두리에서 튕겨져 나올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산다. 그것이 심적 위안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제일 공부 열심히 하는 동네에 있으니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욕심이 부모와 자식 모두, 결국은 우리 모두의 현실을 힘들게 만든다. 미래에 잘 살자고 현재를 무지막지하게 희생하는 아이러니다. 우리는 잔칫날 먹자고 사흘을 굶고 있지만 잔치가 열릴지 안 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IP *.163.6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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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0.27 15:30:52 *.97.37.242
과녁을 정확히 겨냥했구먼.

어떻게 사는 게 더 나은 훌륭한 삶인지를 생각안하고 대충 사는 사람들이 많지.
생각은 하더라도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들도 많고.
그 비싼 동네에  이사갈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얘기지?

지난 주말에 여섯살 딸아이의 내년 유치원 교육에 대해 와이프와 얘기를 했네.
와이프는 언제부턴가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게야.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일곱살 짜리에게 영어 유치원이라니...
코끼리도 벼룩도 웃을 일 아닌가?
그렇게 영어 안 배워도 훌륭하게 성공한 반기문 총장도 있는 데 말이지.
결국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지금 다니는 훌륭한 유치원을 계속 다니기로 했지.

내가 보기엔 별 생각 없이 남들을 따라하는 부모들의 과도한 욕심이 제일 문제야.
그렇게 하는 게 사실은 애들을 버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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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10.27 19:10:20 *.37.24.93
그러게요. 노는 물을 바꾸면 더 좋아지려나.
내가 보기엔 그 물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데 말이죠.
지금 집인데요. 우리집이 마치 놀이방이 된것 같습니다.
우리 애들 포함해서 여섯명이 놀고 있어요. 가끔 아내가 다른집 아이들을 봐주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아이들도 다른집에 부탁하고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낼때도 있죠.

한달전에 지인이 초대해서 그들 가족이 사는 전원주택엘 놀러갔었는데요.
옆집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수준이 가히 30년 전 제가 시골에 살던 때를 연상시켰습니다.
보기 좋더라구요. 여유로워 보였고. 사는 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드랬습니다.

경쟁 또 경쟁 그렇게 지지고 뽁으며 사는 것이 과연 좋은 삶인지 저는 생각해볼 문제도 아닌듯 한데
많은 사람들이 그 무리에 못들어 안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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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10.29 23:51:32 *.36.210.167

"신림동에 살아요." 하면서 나도 니들에게 신세 안 지고 살 수 있거든? 하는 반발심 같은 것을 갖거나 니들이라고 하루 다섯 끼 먹고 사냐? 하는 것보다 "강남에 살아요." 하면서 수수한 듯 보이는 것이 낫지는 않을까? "왜 이곳에는 이렇게 집 값이 안 오르고 사람들의 의식도 촌스러우며 학교 수준도 낮은지 몰라 "라고 푸념이나 해대기보다 "강남에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예요" 하며 제법 우아하게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되는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닐까? 안 가기보다 갈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아예 체념하면서 위안이나 받아보려는 소시민적 행위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신림동에 살아요" 하면 사람들은 "아, 그 서울대가 있는 곳?" 하면서 위로(?)해 준다. 그래도 신림동은 신림동이기 때문에 요즘에 동네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한 것 같다. 미성동이라나 뭐라나...
아직은 살고 있는 내가 다 낯설고 헛갈리는 이름이다. 그러나 그렇게 까지 하면서라도 바꾸고 싶은 것이 대부분의 생각이기에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속으로는 강남 못지 않은 땅값이 되어주기를 은근 바라고 8학군의 아성 못지 않은 우수한 학교가 들어서길 염원하며 천지가 개벽하듯 인생이 반전되기를 갈망하는 아니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나아져가고 싶은 열망들이 있는 것일게다. 뛰어봐야 벼룩일 테지만. 지금 난곡동은 더 이상 서울 시내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도심재개발지역의 달동네가 아니라 어엿한 품위로 재 탄생하며 도로 확장과 새건물들의 생성으로 여념이 없다.

공부 잘하면서 어디에 다니든 그건 상관이 없다. 잘 살면서 어디에 살든 그건 상관이 없다. 비록 일상이 책과 같지 않더라도 일단 책을 낸 놈들은 그들의 세계에서는 당당하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그런 말을 듣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없으면서, 갖추지 못하고서, 하지 않고서, 미치지 못하고 갖는 위안은 푸념에나 가까운 것은 아닐까? 마치 내가 책은 쓰지 못하고 헛소리나 떠벌이는 것처럼 말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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