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불씨
  • 조회 수 1032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22년 8월 24일 09시 52분 등록
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여서 평소에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된 책들을 자주 보는 편입니다. 소프트웨어가 탄생한지 아직 채 100년도 되지 않았지만, 나름 소프트웨어 분야에도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이 있습니다. 물론 소프트웨어의 짧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연식이 오래된 책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발전속도를 생각해 본다면 까마득한 8비트 컴퓨터 시절의 책들이면 그리스 로마 시대 고전과 맞먹는 것들이죠.

제럴드 와인버그는 유명한 책들을 많이 낸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작가입니다. 이 업계에서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이면 다 아는 사람입니다. 완전한 기술서를 제외하고, 소프트웨어 분야의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보면 대부분 우리가 보는 일반서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얘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사람 사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거기서 얻는 지혜들 역시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적용가능한 것들이 아닌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지혜와 진리는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럴드 와인버그가 쓴 <대체 뭐가 문제야>는 말 그대로 뭐가 문제인지 잘 좀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문제를 만나고 해결하는 것이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해나가는 방식이자 삶의 흐름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인지도 잘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해결해봤자 결국 시간낭비를 한 셈이니깐요.

이 책에는 터널 전조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래전 스위스의 어느 지역의 고속도로 터널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네요. 

터널을 들어가기전에 "터널안에서는 전조등을 켜시오"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문구죠. 우리나라 터널들도 들어가기 전에 같은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위스의 그 터널의 경우 터널에서 빠져나온 후 불과 몇 백미터 앞에 경관이 멋진 전망대 휴게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운전자들은 터널을 빠져나와서 휴게소에 차를 주차한 다음, 전망대에서 아메리카노(스위스에 아메리카노가 있나??) 한 잔 때리고 떡볶이도 사먹고  멋진 풍광을 구경하다가 한참후에 차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토라이트 기능이 없었던 그 시절,  운전자들이 차로 돌아와 보면 차가 방전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터널 들어갈 때 라이트를 켠 다음 깜빡하고 라이트를 안 끄고 차에서 내려 휴게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거죠.

별 것도 아닌 일인데 이런 문제가 너무 많이 생기니까 당국에서 조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당국에서는 터널이 끝나는 곳에 "전조등을 끄시오"라는 표지판을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밤에 터널을 나가면서 전조등을 끄는 바람에 사고가 나는 경우들이 생기더라는 겁니다. 좀 어이없긴 하지만 스위스인들이 법과 규칙을  잘 지키나 봅니다. 그래서 당국에서는 다시 고민한 끝에 개선안을 내놓았습니다.  터널을 빠져나가기 전에 다음과 같은 표지판이 새로 설치되었습니다.

"낮인데 전조증이 켜져 있으면 전조등을 끄시오.
   밤인데 전조증이 꺼져 있으면 전조등을 켜시오.
   낮이고 전조증이 꺼져 있으면 그냥 놔두시오.
    밤이고 전조증이 켜져 있으면 그냥 놔두시오."

착하고 규범을 준수하는 바르고 뻣뻣한 스위스 운전자들은 표지판의 문구들을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표지판의 긴 문구를 읽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거나 가드레일을 넘어가는 사고가 속출하고 시작했습니다.  당국은 다시 사면초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냥 원래 처음대로 복구하라는 여론이 거세졌습니다. 담당자들은 과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깊은 시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똑똑한 친구 하나가 표지판의 문구를 한 문장으로 줄임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전조등이 켜져 있습니까? are your lights on? "

스위스당국은 운전자들을 너무 로봇과 같이 생각했던 거죠.  운전할 수 있는 연령의 성인이라면 맥락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겁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결국 느낌과 관련된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문제가 있는 거죠.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인지 아는 것은  또다른 일입니다.
대게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문제인지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경우가 많죠.
스위스에서 있었던 터널안의 전조등처럼 말입니다.
논리적으로만 접근하면 오히려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 할 수 있는 겁니다.

이제 여름도 막바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남은 한 주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IP *.242.225.204

프로필 이미지
2022.08.24 15:52:41 *.9.140.10

그런 거 같아요 ! 진단도 중요하지만 처방도 잘 해야 하고 그리고 지시대로 시간을 지켜 잘 먹어야 하는 것 같은...^^
일류와 일등의 약간의 차이를 규정 짓는 요인이랄까...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070 달력에 담긴 꿈, 그녀를 응원합니다! [4] 차칸양 2018.11.20 922
4069 [수요편지] 할말을 사이공에 두고 왔어 [10] 장재용 2019.01.02 922
4068 [수요편지] 떠난 자리 [2] 장재용 2019.03.13 922
4067 [화요편지]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100배 활용 가이드 [1] 아난다 2019.06.18 922
4066 [금욜편지] 산사수행 중 수희향 2019.10.18 922
4065 [금욜편지 123- 책쓰기에대한 이야기를 마치며] 수희향 2020.02.14 922
4064 화요편지 - 함께라면 어디라도, '다음 달에는' [1] 종종 2022.05.10 922
4063 창업결정 전 5가지 셀프질문 (네번째) [4] 이철민 2017.08.31 923
4062 누군가의 창업은...... [2] 이철민 2018.01.25 923
4061 [일상에 스민 문학] -샬롯 브론테 <제인에어> 정재엽 2018.05.30 923
4060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짐승을 인간으로 만든 빵 file [2] 알로하 2019.03.09 923
4059 목요편지 - 사막과 오아시스의 대화 [1] 운제 2019.04.18 923
4058 [수요편지] 잠들지 않는 유년 장재용 2019.07.25 923
4057 [금욜편지 23- 첫 책 출간] file [2] 수희향 2018.02.02 924
4056 [일상에 스민 문학] 애틀란타 공항에서 - 마거릿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정재엽 2018.10.24 924
4055 [일상에 스민 문학] 주유소 할아버지 [2] 정재엽 2018.11.21 924
4054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20. 아빠와 함께 헌책방 나들이 [1] 제산 2019.04.01 924
4053 [금욜편지 83- 인생최고전략 필살기] [4] 수희향 2019.04.05 924
4052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21. 한국문학 함께 읽기_염상섭 [2] 제산 2019.04.08 924
4051 [금욜편지 87- 불공평한 세상을 살아가는 법] [2] 수희향 2019.05.10 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