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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7일 10시 38분 등록
 

  얼마 전 교육부와 국회는 실업계 고등학교의 명칭을 전문계 고등학교로 개칭하는 법안을 통과 시켰다. ‘실업계’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면이 없다는 판단에서 내린 궁여지책으로 보이는 이 법안이 만들어지고 통과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실업계에서 전문계로 교명을 바꾼다고 해서 더 좋아지는 것이 어떤 것일까?


  나는 실업계고등학교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글을 써보겠다고 3개월 전 9년을 다닌 회사를 떠났다. 나 자신이 실업계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회사에 있는 동안 출신학교는 다르지만 꽤 많은 후배들과 함께 일을 해본 경험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제 2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그때와 지금에서 바뀐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나아진 것은 없고 골은 더 깊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20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유지가 아니라 퇴보를 의미한다.


  작년 9월의 일이고 이제 해결된 일의 아래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실업계고등학교 위상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씁쓸함을 넘어 원망스럽다. 우리의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2002년 동호공고 주변에 ‘남산타운’이라는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생기면서 동호공고를 이전하고 초등학교를 설립해 달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올 한해 교육계에서 큰 화두중 하나가 된 것이 ‘동호공고 폐교’논란이었다. 동호공고 폐교 논란은 우리나라에서 실업계고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 논란을 되짚어보며, 새해에는 실업계 학생들도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길 기원한다. -편집자 주


  올해 동호공고의 폐교논란은 실업계 학생들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삐딱한 시선과 비인간적 대우를 여실히 드러냈다.


  지역 주민들한테 혐오시설 취급받는 실업계

  “동호공고는 쓰레기장이고 우리는 쓰레기다”


  그동안 동호공고는 인근 주민들의 계속 된 민원에 못이겨 여러번 학교부지 이전이 논의됐지만, 그때마다 예정된 지역에서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무산되고 말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사회 지도층인 지역구 국회의원과 구의원들은 학교이전을 선거 공약으로까지 내놓았었고 이전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수많은 언론 매체에서는 이러한 일의 부당함을 이야기 했고 인터넷에서는 보다 활발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2007년 9월 동호공고의 이전 안은 철회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입었을 마음의 상처는 누가 치유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그 학생들의 부모님 가슴에 밖힌 대못은 어쩌란 말인가?


  실업계고교에 입학하는 학생들 중 집안 형편이 넉넉한 학생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중학교 때 공부를 잘해서 그것을 살려보겠다고 오는 학생은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공부 못하고 집안 형편까지 좋지 않은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 학생들은 이미 중학교 시절부터 사회로부터 내몰리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단지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입시교육에 모든 역량이 집중된 교육현실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을 취업연령이나 군대에 가기 전까지 말썽부릴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 왜 그러냐면 그놈들은 공부는 뒷전이고 항상 말썽만 피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은 학생 취급도 받지 못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실업계고등학교인 셈이다. 실업계중학교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씁쓸하다.


  아래의 글은 『실업계 얌순이들의 보고서』라는 책을 보고 어느 실업계고교 교사가 쓴 서평이다. 서평이라고 하지만 이 글속엔 한국의 실업계고교에 대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내가 가르친 아이 중에 과학고에 다니다 일반계로 전학온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미용실엘 갔는데 어느 학교 다니냬서 '부산과학고' 다닌다고 했더니 '주간이냐, 야간이냐?'고 물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했다.


  000 컴퓨터 과학고, 00 디지털 고교, && 정보 과학고... 이런 학교들이 숱하게 있다 보니, 그 미용실 아가씨는 부산과학고를 그런 실업계 고교로 혼동했던 모양이다.


  상고, 공고들이 더 이상 존재 의미를 잃어 가면서, 허울만 '과학, 정보'로 바뀌었다. 교사도 그대로고, 교육 과정도 그대로인데, 학교 이름이나 학과 이름만 희한하게 바뀌었다. 이건 명백한 눈속임이고, 과대 과장 광고임에 분명하다.


  태풍의 눈에 들면, 잠잠한 지역이 있단다. 실업계 고교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교육의 질은 떨어지지만, 분명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곳임에도 교육은 없다.


  이 책의 가치는 실업계 고교의 문제를 아이들의 시각으로 분석하려 했다는 점에 있다. 대부분의 이런 책을 낼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실업계를 알지 못한다. 그것도 30년 전의 산업 사회에 맞춰서 생긴 실업계 고교가, 그 투자 효과를 다 얻고 이젠 시들해져 버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재정적 투자를 요구하는 공룡처럼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할 때가 많다.


  일반계 고등학교엔 시설이랄 것이 별로 없다. 그저 교실에 형광등이나 부지런히 갈아 주고, 여름에 에어컨, 겨울에 히터나 잘 때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실업계 고교엔 시설이 많다. 공고의 경우에는 학과 별로 실습 동이 있고, 수천만원대 기기들이 수두룩하다. 상고(요즘엔 정보고로 많이 탈바꿈했지만)의 경우에는 고액의 기기들은 적지만, 최신 기종의 컴퓨터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실업계 고교는 존재 이유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이 책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집어내고 있다. 고교의 교육과정과 교사의 구성이 학생들과 사회의 요구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얌순이들이란 용어는 연구를 위해 저자가 만든 용어다. 공부를 잘 하면서 얌전하게 생활하는데, 취업을 준비하지 않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실업계에 들어오면 열패감에 젖어든다는 것을 모르는 학부모나 중학생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일반계 커트라인 안에 드는 아이들은 수백 명 중에서 몇 되지 않는다. 일단의 패배감에 젖어 들어오는 것이다. 그 안에서도 물론 '여기서 잘 해서 대학을 가야지'하는 아이들도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학교 전체가 도와주지 않는다. 교육과정 자체가 실과 위주로 편성되어 있고, 교사 요인에선, 실과 교사는 70년대 풍 그대로 강압적인 실세가 많다. 연령대는 거진 50대 이후다. 실과 교사는 이동이 별로 없거나 이동하더라도 서로 아주 잘 알아서 사립학교나 다름없는 분위기다. 70년대처럼 생활검열을 하고 소지품 검사를 한다.


  일반 교과에는 잠깐 머물다 가는 뜨내기 의식을 가진 교사들이 많다. 어쩔 수 없이 근무하긴 하지만, 의욕적으로 뭘 해볼 염은 낼 수 없다. 그저 몸이나 건강하게 돌보고, 월급이나 타먹으면 된다는 식이다. 신규 여교사가 많다는 것도 하나의 한계가 될 수 있다. 학생 요인이 제일 심하다. 학습 장애 수준의 학생들이 수두룩하고, 파괴된 가정에서 사랑없이 자란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교사에 대해서는 무조건 부정적인 아이들도 많다.


  물론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얌전한 아이들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일반계 아이들보다 이 아이들이 진학률도 더 높다. 80%를 상회한다.


  실업계 고교는 더 이상 '실업 교육'을 원하지 않는 중간 단계의 교육기관이 된 지 오래다.

  이 책이 갖는 한계는, 실업 교육의 대안 내지는 개선 방향의 제시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식 자체가 '보고서'로 명확하게 한계를 긋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실업계 학교에도 적응하고, 사회에도 적응하려는 '얌순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기는 했지만, 현재의 실업 교육의 <진실>에 다가가기에는 한계가 너무도 명확하다.


  지각, 조퇴, 결석 등으로 '개기거나', 수업 시간에 무관심하고 엎어져 자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모습을 띠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흡연, 절도, 폭행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외부에서 음주, 절도, 폭행, 패싸움, 원조교제, 임신 등의 사고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 아이들을 감싸안을 수준이 못되면서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아이들을 고스란히 받아 대책없이 내굴리는 교육의 무풍지대가 한국의 실업계 교육이다.


  내일까지 중학교 3학년들의 원서 접수가 실시되고 있다. 이미 거의 접수를 마쳐 가는데, 78% 정도에서 마무리 될 듯 하단다. 이 아이들이 가지는 행동 특성에 맞도록 학교를 리모델링하기엔 너무도 공룡처럼 거대하다.


  한국은 이미 가고 있는 기차는 멈출 수 없다는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한 나라 아니던가. 세계적 쪽팔림을 감수하고 있는 <새만금>이 그렇고, 이미 실패임이 실시 전부터 예고된 <제 7차 교육과정>이 그렇고, 돈만 퍼붓고 교육은 이뤄지지 못하는 <실업계 교육>이 그렇다.


  미래가 없는 학교에서 현재의 아이들과 부대끼는 하루하루는 날마다 힘들고, 조금은 서글프고, 매일 어깨가 늘어진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자조석인 개탄만을 반복할 것인가?


  나는 실업계고교의 교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교과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도 전혀 없다. 실업계고교를 나와 버젓이 사회생활을 한 평범한 기술자였다. 그렇지만 나는 꼭 하고 싶다. 자의든 타의든 지금의 이러한 현실 속에서 꿈을 잃어가고 있는 내 후배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싶다.


  “우리 꿈을 잃지 말자.”

  “애당초 꿈같은 건 꿔보지도 못했다면........”

  “그래 잘 됐다. 지금부터 꿈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한걸음씩 다시 내딛자.”


  우린 무시 받을 이유도 멸시받을 그 어떠한 이유도 없다. 대한민국의 실업계고교 학생들이여! 우린 잘 할 수 있다. 뭐든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업계고교 선생님들 힘내세요. 당신의 의지와 노력에 수많은 젊은이들의 미래가 꿈틀거립니다.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의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은


너의 하늘을 보아

IP *.37.2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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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8.10.27 12:36:23 *.105.212.77
오늘 새삼 다시 느끼는거지만 우리 주위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너무 많구나. 각자 자기다움을 가지고 도울 수 있는 영역에서 살아있는 역할모델이 되는 것만큼 의미있는 일은 없을꺼다. 현웅이가 후배들에게 실업계의 마에스트로가 되는 모습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마. 화이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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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0.27 16:58:36 *.97.37.242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멸시 받거나 무시 받을 이유가 없다.
세상 만사는 자기 하기 나름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꿈으로 생각하던 것들을 이루게 된다.
현웅의 열정으로 꿈꾸는 실업계 학생들,  성취해 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함 보고싶다.
열심히 하고 있지? 잘 될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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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10.28 17:06:49 *.244.220.253

실업계 학생들에게 꿈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멘토'가 되시길........
박노해 시인의 글은 볼 때마다 가슴을 울컥하게 하네요........4편의 칼럼을 모두 읽었는데, 고슴도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네요........만화방에서 죽(!) 때리는 효과가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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