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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부터 온 축하 편지
아범아. 오늘이 너의 오십 번째 생일이구나. 너의 처가 아침에 굴을 넣은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을 차리고, 손자와 손녀가 아범을 축하하려 며칠 전부터 즈이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의논 하는 것이 꼭 너희 형제들, 어릴 때 모습과 흡사하더구나. 그 아이들, 특히 우리 집 장손, 큰 손자가 성품이 따듯한 것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너를 꼭 닮은 듯하다. 그리고 둘째, 손녀딸은 성품이 밝고 명랑하여, 어디서든 사랑을 받을 거야.
네 어머니가 오대 종손을 출산했다고, 집성촌이었던 고향에서 어른들께 치하를 받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 네 나이 50이라니, 참으로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단 말을 실감하게 된다.
공자가 말하기를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는 나이라며, (五十而知天命) 지천명이라 일컬었는데 어떠하더냐. 50년을 살아 보니 이제 네가 거기 왜 서 있는지 이유를 알겠더냐.
내 나이 70이 넘은 지금, 공자가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했지만, 선인의 말대로 순차적으로 배우고, 정해진 답대로 살면, 번뇌도 줄 것 같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구나. 너 역시 살아지기는 하여도 그 이치를 다 깨닫는 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더냐. 나 역시 그러했으니, 너 역시 나이 쉰에 이르렀다고, 그 답대로 살았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부쩍 담배가 늘고, 네 식솔들에게 짜증이 늘었더냐. 업무는 과중하고, 건사해야할 식솔의 지출은 늘고, 죽게 애는 쓰며 살아 왔는데 돌아보면, 번듯이 이루어 놓은 일은 없고. 그래서 자꾸 부화가 치미느냐.
아범아. 우리네 사람들의 인생사에서 특별한일이란 신문의 사회면처럼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제쯤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도 성실하게 살았지만, 겨우 느이 삼형제 공부 시키고, 결혼시켜 분가 시키고, 손자손녀 재롱 보는 것, 그것이 특별한 일이었다는 것을 느지막히 알게 되었다.
그러니 아범아. 우리 부부가 너희를 사랑한 만큼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너희 부부의 삶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고, 인류를 지속시키는 근간이다. 이제와 제일 후회가 남는 것은 너희들이 어릴 때 함께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다.
지난 사월 초파일, 나의 생일날, 너희 형제들이 모여 상을 차리고, 화목하게 둘러 앉아 사진도 찍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거기서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했던 이유를 봤다. 둘째와 셋째네 손주들이 얼마나 우람하게 자랐던지 먹지 않아도 그 모습만으로도 든든하더라. 그 광경을 보면서 너의 어머니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너희는 모를게다.
그렇게 무탈하고, 무연한 모습으로 너희들이 다시 둘러앉기까지 네가 그간 얼마나 애면글면 했던 지도 아버지가 잘 알고 있기에 더 보기가 좋았다.
아범아. 네 마음속에 들여 놓은 그 무거운 바위. 아버지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네가 들여 놓은 그 바위를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이다. 12 년 전, 일어났던 그 사고로 우리가 세상을 한순간에 뜨게 된 것은 너의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부부가 세상과의 인연이 다 되어 떠나오게 된 것이지 누구의 책임도 아니란 말이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생일날 아버지를 기쁘게 해 주려 떠난 가족 여행길에서 부모를 사고로 잃게 된 것 일 뿐. 그런데 너는 그날 우리가 탄 차를 운전했다는 이유로 그 무거운 바위를 들여 놓고, 힘겨워 어쩔 줄 모르면서 지금까지도 내려놓을 줄 모르는 구나.
조물주가 한날한시에 나와 함께 세상 뜨겠다고, 입버릇처럼 하던 네 어머니 말을 들어 주신 거라는, 장례식 때 쌍관이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하던 말을 잊었느냐. “마음 아파 말아라. 좀 일찍 가신 거고, 이렇게 가게 되어 너희들에게는 상처가 되겠지만, 너희 어머니 소원대로 되지 않았느냐. 한날한시에 그것도 아버지 생신 때 가신 것도 분명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 말아라” 던 말.
우리가 작별한 지도 이제 십 이 년이다. 아버지의 원은 네가 잠궈 놓은 걸쇠를 풀고 네 마음속의 바위를 밖으로 내쳐 버리는 것이다.
네 생일날 손주들이 50이 된 제 아빠에게 훌륭한 아버지상장을 만들어 주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는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네가 자랑스러웠다. 그런 바위를 끌어안고도 한 번도 힘들다고 주저앉지 않고, 꿋꿋이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위치를 지켜 온 것은 네가 유학자인 증조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부부에게 듬뿍 받고 자란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 때로 생각해 보게 된다.
평생 정치판을 떠돌며, 아버지의 의무를 소홀히 한 나와 선생노릇을 했던 너희 어머니에게도 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효자였다. 또한 누구보다 동생들을 사랑할 줄 아는 맏이이고, 아이들과 네 처를 네 방식대로 아끼고 있는 아비이고 남편이다.
아범아. 다시 당부 하건데 이제 그 일을 사고가 아닌 추억으로 여기거라. 다복한 가족여행이 아니었더냐. 그것은 실수도 아니고, 사건도 아닌, 그만 돌아가야 할 때가 되어 돌아 온 우리 부부의 이별식이었을 뿐이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돌아 올 수 있었으니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쁠 것이 하나도 없는 일이었다. 좀 일찍 헤어지게 되어 아쉬울 뿐. 하지만, 아쉽다고만 할 것도 아닌 것이 몸만 너희를 떠나왔을 뿐 이렇게 너희를 다 보고, 느끼며, 지켜보고 있지 않느냐. 만날 때 까지 너희들이 천수를 누리기를 조상님께 간구하고 있으니 건강 지키는 일을 소홀함이 없도록 해라.
아무것도 잘 못한 일이 없다는 아버지의 말을 받아들여 이제 그만 속울음을 그치고, 너를 편하게 하거라. 그것이 우리 부부에게 네가 해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너는 우리의 보람이고, 기쁨이었으며, 지금도, 우리가 다시 만날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귀한 진실이다.
늘 나보다 나은 어른으로 이끌고 싶어 한 번도 얼굴을 맞대고 칭찬 할 줄 모르던 아버지이지만, 그만하면 아버지보다도 훌륭하게 잘 살았느니, 네 나이 오십이 되도록 책무를 다하며, 열심히 살아 온 너의 지나온 날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음을 다해 축하한다.
사랑하는 장한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