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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9일 12시 41분 등록
 

이제 철 든 선배가 후배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이야기 하면서 높임말을 쓰는 것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올려보자고 마음을 먹고도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게 되는군요. 말을 놓는 것 보다 그냥 높임말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더 편합니다. 그래서 높임말로 글을 쓰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자의든 타의든 현재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잘 해 명문대에 입학하려는 후배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서입니다. 또한 수능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이 시점에서 마음조리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힘내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 이야기가 주제 넘는 잔소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수만휘’의 회원이 제 상상을 넘는 숫자여서 더욱 조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봅니다. 글이 좀 길어질 듯싶습니다. 바쁘신 분은 그냥 넘기셔도 됩니다. 그래도 뭔 소릴 하려는지 궁금하신 분은 중간은 뛰어넘으셔도 됩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만휘는 최상위 0.0001%~최하위 99.999% 의 건강한 정신을 가진 수험생들의 모임입니다.”


  윗글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만 그래도 밝혀야 할 것 같군요. 방년 38세입니다. 사회에 나오면 아직 새파란 나이입니다만 ‘수만휘’에서는 할아버지 소리 들을만한 나이인 것 같습니다.


  저는 1990년에 실업계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업계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저는 대학에 대한 목표가 없었습니다. 물론 중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었다면 실업계고등학교를 가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겁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은 참 가난했습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막 이사했을 무렵 집은 단칸방에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 거기에 저까지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제 중학교 시절입니다. 상황이 그래서인지 저는 무작정 돈을 먼저 벌어서 가난을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에 실업계고등학교를 지원 했습니다.  아무래도 돈을 빨리 벌려면 인문계를 가는 것 보다는 실업계로 가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평생을 농사를 짓던 농사꾼이셨습니다. 아들 공부는 서울에서 시켜야한다는 일념으로 그냥 무작정 서울로 가족 모두가 이사를 했습니다. 생계에 대한 별 대책도 세우지 않으셨었습니다. 그때 저는 중학교 2학년 이었습니다. 제 부모님은 학교에서 성적표를 집으로 보내는 지도 잘 모르셨던 분들입니다. 솔직히 말해 ‘공부해라’라는 말도 잘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그냥 별 탈 없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 정도의 말씀만 하셨을 뿐입니다.


  참 평범하게 지낸 제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별 볼일이 없습니다. 그 공부 안한다는 실업계고등학교에서도 중간 정도의 성적이니 정말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그런 놈이었죠. 공부가 하기 싫었습니다. 목표도 없었습니다. 사실 공부를 왜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습관처럼 학교만 오갈뿐 이었습니다.


  “공부를 왜 해야 하지.” 라는 말을 생각해 볼 정도의 수준도 되지 못했던 것이 제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첫 해에는 대학이란 것을 생각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온 나라가 학력고사로 시끌벅쩍 했을 때 나는 내 친구와 도면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입니다.

  “대학은 생각하지 않는 대신 남들보다 빨리 돈을 벌 것이다.” 이 순진하고 순수한 생각에 밤낮없이 일에 미쳤었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한 달에 집에 한번 들어갔습니다. 사무실에서 친구이자 동료 단 둘이서 하루 네 시간도 채 자지 않고 6개월을 일하면서 버텼습니다. 그 당시 컴퓨터를 이용한 도면을 그리는 일을 하는 회사였는데 우리는 컴퓨터를 그때 처음 봤을 만큼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사용법을 빨리 익히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르쳐 줄만한 사람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냥 맨땅에 헤딩해가면서 하나하나 직접 해보는 수밖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흔해 빠진 학원도 그 당시엔 없었습니다.


  그리고 18년이 흘렀습니다. 1년 반 정도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백수생활을 했습니다.

  3수 케이스가 되어 대학을 들어가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6개월 정도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운 좋게도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여기 계시는 많은 분들은 별 볼일 없는 대학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때 당시 제가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이었습니다.

  대학졸업 후 1년을 학교에서 보낸 후 취업을 했습니다. 대학시절에도 고등학교 때 만큼이나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학점이 형편없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친구들은 그런 저를 불쌍한 눈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조사해본 바로는 저보다 학점이 좋지 않은 애가 딱 2명 있었습니다. 그런 결과 남들 다 써보는 대기업에는 원서조차 내보지 못했습니다. 자격 미달이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대기업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원서조차 내보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더 크게 낙심시켰던 것은 대기업은 커녕 변변한 중견기업에 조차 원서를 낼 형편이 아니었던 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아! 정말 내가 뭘 크게 착각하고 있었구나!”


  후배 여러분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저는 그때서야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뭘 하려고 공부를 했지?”

  이런 생각을 했을 때의 제 나이는 30을 넘고 있었습니다.


  목표라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막연했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런 저에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었습니다. 나약해졌고, 자꾸만 자꾸만 움추러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30이 다 된 나이에 하게 된 내가 너무나 한심해 보였습니다.

  한참의 방황 끝에 다시 맘을 다잡았습니다. 그때 제가 한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지금 내 모습은 지난 내 과거의 결과물이다.”


  순간 답이 보였습니다.

  “그래 내가 대기업에 원서조차 넣을 수 없게 된 것은 내가 그런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변변한 중견기업에 조차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은 여지 것 살아온 내 과거를 보면 되. 누구를 탓할 것도 사회를 비정하다 말할 필요도 없어. 그건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야.”

  나는 이렇게 씁쓸한 독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답을 알고 났을 때 더욱더 초라해지는 나를 나는 봐야했습니다. 씁쓸한 독백보다 훨씬 더 썼습니다. 공부를 못했던 내 모습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대기업에 원서조차 낼 수 없이 살아온 것뿐만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건 ‘꿈을 잃어버린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에게 꿈이란 것이 있었는지 조차 느끼지 못하며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산송장이란 이럴 때 쓰는 것이란 생각이 치밀었습니다. 난 살아있는 송장이었습니다. 젊은 놈이 꿈도 없이 30년을 살았으니 어찌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영화 ‘빠삐용’에서 빠삐용의 죄는 ‘시간을 허비한 것’이었습니다. 죄 값으로 그는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저는 빠삐용처럼 시간을 허비한 죄를 지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다 할 목표도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저는 제 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34살이 되어서야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세 가지 되고 싶은 직업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작가, 컨설턴트, 교육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조직의 능력을 높이는 컨설턴트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게 꿈과 용기를 찾아주는 교육자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일입니다. 그때 당시 제 능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조그만 중소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던 평범한 셀러리맨이었던 저에겐 가당치도 않은 꿈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꿈이라도 꿔보자.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실컷 꿔보자”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지 나는 한참을 보지 않았던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책은 밤을 꼴딱 새가며 단숨에 다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책 속에서 나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가끔씩 책장을 넘기며 울컥하는 기분을 느낄 때마다 나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점점 더 빠져듭니다.


  꿈을 갖기 시작하면서 목표로 정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목표중 하나가 ‘2008년 독립’ 이었습니다. 기술경영컨설턴트로 독립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5년 동안 관련된 책을 꾸준히 봤습니다. 지금 집에 경영관련 서적만 200권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각종 세미나를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목표가 세워지고 나니까 그냥 지나치던 메시지들이 이상하게도 잘 들어왔습니다. 관련된 자격도 이수하게  되었습니다.

  기술경영컨설트에 관련된 것은 회사의 제 업무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계엔지니어였으니까요. 결국 저는 올 7월부로 9년간 다닌 직장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사표를 던질 때 5년 전부터 꿈꿨던 일을 드디어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기술경영컨설턴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자기개발교육기관에서 목표와 시간 관리에 대한 강의를 합니다.

  그리고 2년간의 책을 쓰기 위한 트레이닝 코스에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코스는 1년 동안 매주 500페이지 정도의 지정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야 합니다. 그 독후감은 적어도 12페이지 이상의 분량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매주 칼럼 한편씩을 제출하는 것이 강제 규정인데 만약 이 규정을 지키지 못하면 그냥 탈락됩니다. 꽤 고통스런 연습입니다. 그러나  나는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마라톤 이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저는 앞으로 50년 정도는 더 살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금 수험생인 여러분들은 적어도 70년은 더 살게 될 겁니다. 조급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입니다.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이럴 때 일수록 고삐를 늦추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한 후의 결과라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혹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지금 최선을 다하지 못해 후회하면 내년엔 더욱더 힘내기가 어렵습니다.


  여지 것 공부보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쓴 후배들에게 수능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남은 기간만큼 최선을 다해보라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건데 그건 결국 모두 자기 할 몫이라는 겁니다.


  군자는 세상을 탓 하지 않습니다. 혼탁한 세상이 밝게 변화되도록 힘쓰지 못하는 자신을 탓할 뿐입니다.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저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 누구보다도 공부에 열정을 불사른 후배들을 존경합니다. 학창시절 공부에 담을 쌓았던 공부 이야기만큼은 별 볼일 없는 선배가 감히 그대들의 열정을 이야기하기 부끄럽지만 후배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길 기원하네.......

이제 글로벌화 된 인류는 평화로운 발전을 위해 그대들의 명석한 두뇌를 필요로 할 것이네.......


  자신의 소신과 꿈을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려는 후배들에게 그대들의 소신 있는 행동이 머지않아 빛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내.......세상을 살기 좋게 변화시키는 것은 우직한 사람들의 몫이란 걸 많은 현자들이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지. 후배가 이 말을 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네........ 밀어 붙이게.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많은 후배들에게........

  우리, 인생은 마라톤임을 잊지 말자. 여기 이 글을 쓰고 있는 선배도 후배와 꼭 같거나 더 못했다. 포기하지 말자.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이제 또 다른 기회 앞에서 당당히 맞서보자. 세상은 분명 그대들의 이글거리는 맑은 눈동자에 반할 것이다. 쓰러졌다 일어나는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난 본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쓰러진 사람들은 남들보다 몇 곱절 아름다울 수 있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다시 시작해라. 지금 당장.



IP *.37.2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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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10.29 12:47:03 *.37.24.93
이 글은 네이버 수능 수험생 카페 '수만휘'라는 곳에 오늘 게시한 글입니다. 이곳에 게시글을 보면서 우리 후배들이 참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쉬움이 컸습니다. 소위 인류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회의 낙오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후배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문과/이과의 선택에서 부터 자신의 장래문제까지. 하루에 100건이 넘는 그런 글들이 올라오는 곳입니다. 처음에 하나하나 읽어보고 답글을 달아주려고 했다가 시간이 다르게 늘어나는 게시글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서 게시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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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10.29 13:32:08 *.169.18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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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10.29 22:52:24 *.36.210.167

제목에 호소력이 있네.

그런데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약간 힘이 빠지는 느낌이야. 뭐랄까 미로를 걷는 것 같은. 왜 갑자기 ...... 이 그리 많이 나와야 하는 거야? 마치 미심쩍은 사람처럼. 마지막 부분에 더욱 피치를 날려 주었으면 해. 스스로의 간담이 서늘해 질 정도로. 그래서 스스로가 여러 수험생들 앞에서 그렇게 지켜가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말이지. 마치 빠삐욘이 절벽 아래를 뛰어내릴 때의 그 기분으로 안타까움이나 아쉬움보다는 확고한 임팩트를 주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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