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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30일 09시 32분 등록


전화를 끊고 나서 커튼을 걷어 제쳤다. 환한 햇빛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드디어 오늘 그를 만난다. 이태리 땅을 밟는 순간부터 그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은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샤워할 때 유난히 내 몸을 더 자세히 살폈고, 허리 곡선을 살리기 위해 먹는 걸 조심하였다. 태연한 척 가장했지만 나는 그를 만날 시간만을 손꼽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그를 만난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심장의 욕구를 따르기로 했다. 귀국 날짜를 연장하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모든 걸 운명에 넘겨버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틀, 그 이틀은 서로에게 최선의 시간일 터였다.

 

그러나 전화기를 내려놓는 순간부터 나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를 만난다는 생각이 머리를 너무 꽉 채워버려서 숨 쉬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몸은 자꾸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발이 땅을 제대로 밟고 서있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침 밥을 먹으면서도 몇 점의 음식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늦은 아침 식사 후 그룹들이 짐을 싸는 동안 나는 페스티벌 본부로 달려가 사람들과 작별을 하였다. 벌써 며칠 함께 일하며 정이 듬뿍 든 사람들이었다. 이태리 사람들은 반도 기질이 있어서인지 우리 한국 사람들과 성정이 비슷했다. 그들은 잘 먹고 잘 떠들고 자신들의 감정에 솔직했다. 가족적인 연대가 유난히 강하고 다혈질이지만 그만큼 정이 많고 다정했다. 무엇보다 서두르지 않고 인생을 즐기는 그들의 여유는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이었다.

일일이 그들과 포옹을 하고 볼 인사를 나누었다. 페스티벌 제너럴 매니저인 로사나와는 포옹한 채 오래 오래 서 있었다. 호방한 46살의 아가씨 로사나는 아직 처녀였다. 그녀와 나는 누구보다 마음이 잘 통했다. 내년에 다시 보자는 인사로 그녀와도 아쉽게 작별하고 나는 호텔로 돌아와 짐을 쌌다. 11 조금 넘어 예약해둔 밴이 도착했다. 우리는 푸른 잎으로 넘실대는 해바라기 밭과 키가 보리만큼 자란 시금치 밭을 지나고 또 파란 알이 익어가는 넓은 포도밭 구릉을 내다보며 베로나 공항까지 달렸다. 암스텔담 스키폴 공항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귀국하는 공연단을 보내고 2시쯤 드디어 나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롬바르디아의 주도 밀라노, 나는 이제 아름다운 북부 이태리의 풍광을 헤치며 비즈니스의 도시 밀라노로 간다, 오직 그를 만나기 위하여. IC기차, 213 D 25. 옆 자리는 비어있었다. 다행이었다.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여행의 기술>, 우연히 펴든 페이지에서 알랭 드 보통은 모든 운송 수단 중에 생각에 가장 도움을 주는 것은 아마도 기차일 것이라고 적고 있었다.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차창 밖으로 미끄러지는 풍경은 넓은 시야 때문에 그다지 빠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늘 어떤 생각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었다. 풍경 따라 그와의 추억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왔다. 그와 보낸 그토록 짧은 시간이 어떻게 그렇게 긴 추억의 실타래가 되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빠르게 멀어지는 풍경처럼 지난 3년은 금방 흘러가버렸다. 그리고 이제 시간은 다시 나를 그에게로 데려 가고 있었다.  

 

여기요, 여기!

기차에서 내리니 짙은 감색 스웨이드 자켓에 같은 색 계열의 트렌디한 데님 바지를 입은 그가 나를 향해 손을 높이 흔들었다. 그의 다른 손에는 하트 모양의 초콜릿과 세 송이의 카라가 리본에 묶여 있었다. 2년 전 데산짜노 호반 마을 꽃집 앞에서 카라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지나치지 못하고 감탄하던 나의 모습을 그는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더 젊어보였다. 머리 스타일이 그 동안 달라졌다. 머리는 좀 짧아졌고, 뒤로 넘겼던 머리는 앞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그의 흰 피부는 푸릇푸릇 면도 안한 수염으로 인해 그를 더 유럽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단정하고 지적여보이는 그에게서 그 누가 그토록 새빨간 정열을 훔쳐 볼 수 있을 것인가. 

그가 나를 가볍게 안고  볼 인사를 건넸다. 그는 자켓 속에 내가 좋아하는 카키색 니트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내 볼에 닿은 옷 촉감이 좋았다. 그에게선 아르마니 향수 냄새가 그대로 났다. 긴장했던 내 근육이 갑자기 풀어졌다. 그래, 이거야. 내가 상상 속에서 수없이 연습했던 장면 하나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목을 꼭 껴안고 속삭였다.

‘르노,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우리를 태운 택시는 말로만 듣던 밀라노의 부티크 호텔 <스트라프 Straf>앞에 우리를 쏟아 놓았다.  

와우.

안으로 들어서자 검은 바위 벽과 반복적으로 사용된 타오르는 듯한 붉은 색 장식들이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냥 모든 걸 맡기고 나에게만 오세요 하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이 정도면 그를 믿어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최대한 장식을 아낀 미니멀한 디자인의 호텔은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스트라프는 알고 보니 건축가 겸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디자이너 빈센조 드 코티스(Vincenzo de Cotiis)가 디자인한 호텔이었다.

 

1984 70년대 스튜디오54의 전성기를 함께 한 이안 슈레저가 뉴욕에 자신의 호텔 모간스(Morgans)를 오픈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제 부티크 호텔은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릴 잡았다. 단순히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떠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의 공간으로 새로이 진화하고 있는 호텔들을 만나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내가 기대 이상으로 감탄하며 그의 센스를 칭찬하자 그는 활짝 웃으며 대꾸했다.

내 노력을 알아주니 고마워요. 희진의 센스가 보통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나름 애를 꽤 썼다고요.

 

나는 앞으로 독특한 여행을 기획해볼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니는 곳의 색다른 호텔이나 레스토랑은 미래에 투자하는 셈치고 돈을 아끼지 않고 찾아 다녔다. 방문하는 도시의 부티크 호텔들은 당연히 나의 관심사 1위였다. 부티크 호텔에는 보통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스탠드가 있어야하고, 룸 넘버를 적는 명패조차도 색달라야 한다.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런던의 <세인트 마틴레인> 로비의 의자는 치아 모양이고 싱가포르의 갤러리아 호텔의 룸 넘버는 어느 벽에서도 찾을 수 없어 헤매다 자신이 서있는 발 밑에서 찾게 되기도 한다. 페라가모 그룹이 소유한 <컨티넨탈레> 호텔의 컨셉은 to wear spaces. 스타일의 완성은 클로에나 이디스 백, 혹은 지미추의 새틴 펌프스에 그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머무는 호텔은 이제 잠자는 곳에서 하나의 패션으로, 라이프 스타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방사선으로 쇼핑 아케이드가 펼쳐지는 밀라노 두오모 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스트라프는 트래블러들로 혼잡한 밀라노의 번잡함을 그대로 흡수하는가 싶다가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세계 패션의 중심인 밀라노 심장부로 연결되고, 문을 닫으면 완벽히 고립된 하나의 다른 세계 속에 침잠할 수 있게 설계된 스트라프. 나는 르노가 좀 무리를 해서라도 우리들의 특별한 추억을 위해 스트라프를 선택한 것에 깊이 감탄하였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쉬크한 옷차림은 드디어 내가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 와 있다는 걸 실감케 해주었다. 그곳은 앞으로 이틀 간 여행의 흥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르노와 내가 완벽하게 둘 만의 시간을 보낼 보금자리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밀라노 시내 안에 있는 고대 유적지 포르타 로마나에 갔다. 그곳은 우리나라 남대문과 같은 밀라노 4대 문안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포르타 로마나 안에 있는 대형 카페 라뇨 도로(Ragno Doro)에서 저녁을 먹었다. 라뇨 도로는 여러 형태의 바와 식당을 갖춘 총 좌석 1,500석의 수퍼매머드급 복합 문화 공간이었다. 아레나 기둥처럼 아치형으로 뻗은 요새의 벽 로만 월(Roman Wall) 아래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아치마다 벽에 달아둔 등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야외 가든이라 좀 추웠다. 쉭쉭거리며 열기를 내뿜는 가스등 옆으로 당겨 앉으며 내가 몸을 부르르 떨자 그가 사람을 불러 무릎 담요를 가져오게 했다.

배고프지 않아요?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not that much 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결전을 코 앞에 둔 선수처럼 너무 긴장하고 흥분해서 식욕을 느낄 새도 없었다.

사실은 나도 그다지 배고프지 않아요. 그럼 우리 몇 가지만 시켜서 쉐어하는 건 어때요?

Share? 나는 크게 웃었다. 그도 웃었다.

 

우리는 이미 쉐어 의 맛을 본 사람들이었다. 3년 전 실미오네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그는 내가 시킨 음식을 조금 먹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남의 음식을 먹어보겠다는 서양남자가 드물어 그렇게 말하는 그가 내 딴에는 신기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음식을 먹어보겠다는 것은 서양사람들 상식에는 무례해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걸 상관하지 않고 내 음식을 가져다 먹는 르노를 보자 나는 오히려 그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같은 부류였다. 나는 늘 내가 주문하지 않은 음식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상대가 다른 걸 시키면 그걸 꼭 먹어보고 싶어 했다. 메뉴판을 들고 음식을 고르는 일은 늘 나에겐 매우 고역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실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내 것 네 것 없이 모든 반찬을 상 위에 올려놓고 서로 나눠 먹는 게 우리네 방식이라고, 그런 방식에 익숙한 우리가 각자 다른 걸 시켜 자기가 시킨 것만 먹는 요즘의 방식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는 한국 음식 문화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우리의 밥 먹는 방식이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 신이 나서 설명했다. 심지어 찌개라는 음식은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집어 넣어 같이 떠먹는다고 했더니 그는 크게 호기심을 보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음식을 나눠먹었고, 그는 한국의 방식이 너무나 좋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리바의 좁은 골목길 벽에 붙어 해도 해도 미진한 키스를 나누다 결국 우리만의 도피처를 달아나기로 무언의 합의를 했다. 리바 시내 안쪽의 작고 모던한 호텔 방을 하나 얻어 들어간 우리는 먼저 시칠리아 와인메이커 도나 푸가타(Donna Fugata)의 앙겔리를 한 병 룸 서비스로 시켰다. 도나 푸가타는 내가 제안한 와인이었다. 도망간 여자라는 뜻을 가진 그 와인이 우리가 함께 보내는 첫날밤과 더없이 잘 어울릴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나는 금발의 귀부인을 태운 멋진 , 태양과 , 선인장이 등장하는 와인의 레이블이 좋았다. 앙겔리는 여자를 아는 젠틀한 남자와 언젠가는 꼭 한 번 마셔보고 싶었던 와인이기도 했다. 치즈 안주를 한 입씩 손으로 먹여주다, 어느새 우리는 입으로 먹여주기 시작했고, 아예 와인을 한 입 물어 서로의 입으로 흘려주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You know how much you have spoiled a donna?라고 외쳤다. 그날 나는 앙겔리가 얼마나 키스하기에 좋은 와인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메를로에 이탈리아 남부 전통 품종인 네로 다볼라를 블랜딩해 만든 앙겔리는 적당할 정도로 묵직하고 부드러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거기에 시칠리아 태양이 전해주는 신비감까지 혀에 감돌아 고조될대로 고조된 우리는 와인과 입술을 섞어 나누었고, 담배 연기도 입술에 섞어 나누었고, 결국에는 남김없이 모든 걸 나누었다. 단단한 대리석 같던 나를 깨뜨리고 그는 내 안에 오래 머무르며 나의 여자를 모두 꺼내주었다. 내 안에 그토록 뜨거운 관능이 살아있다니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는 안티 파스티로 루콜라 크릴 새우 샐러드를 하나 시켜 나눠 먹고, 프리모로 파스타 하나를, 세콘도로 달콤한 포트와인 소스를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 하나를 시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단 것을 즐기지 않아 후식은 주로 생략하는 나는 그가 떠넣어주는 마롱 크림 타르트를 몇 스푼 먹고 한 껏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이태리 냄새가 더 물씬 풍기는 스타일리쉬한 옆의 바(bar)로 자리를 옮겼다. 멋진 음악도 음악이었지만 공간을 가득 채운 패셔너블한 선남 선녀들 때문에 그곳은 패션쇼장을 방불케 했다. 스탠딩 의자에 앉아 바텐더가 능숙하게 만들어주는 코스모폴리탄을 한 잔씩 마셨다. 몇 모금 마시지 않아 취기가 몸을 휘몰아쳤다. 나는 옆에 앉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Renault, go home!’.

뾰족한 첨탑 수만 개가 하늘을 향해 뻗은 거대한 두오모 광장을 가로질러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하루 저녁의 사랑이 나를 많이 바꾸어주었다. 우리는 밤새 사랑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한 러버였다. 서로 보지 못한 세월 동안에도 그가 얼마나 나를 완전한 한 사람(whole being)으로 사랑해왔는지, 그는 그의 온 맘과 몸으로 내게 알게 해주었다. 육체는 참 좋은 것이었다. 건강한 육체를 가진 남녀가 어떤 모럴과 사회적 가치의 배리어에 묶여 육체가 주는 즐거움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가여운 일이다. 내가 그랬었다. 이렇게 선연히 뇌세포까지 덮어버리는 육체의 아우성을 즐기지 않고 어찌 우리가 여자로, 혹은 남자로 이 세상을 산다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랑하는 한 사람, 그 사람에게서 사랑 받는다는 것은 서로에게 가장 근원적인 친밀감을 선물하는 일임을  르노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육체의 피에스타였다. 그것을 빼놓고 우리가 어찌 완전한 남자와 여자로 존재할 수 있다 말할 수 있으리...

 

이틀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그의 비행기는 아침 9였다. 우리는 거의 뜬 눈으로 마지막 밤을 새웠다. 떠나는 날 아침 우리는 뒤척이다 눈을 떴다. 그는 오래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흔들리는 촛불에 그의 모습은 아름답게 빛났다. 아름답다는 단어가 남자에게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땀에 젖은 그의 머리 카락을 쓸어내리다가 나는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가만히 안아보았다. 하프 프렌치에 하프 바바리안의 피를 물려받은 르노의 작은 두상은 조각처럼 매끄러웠다. 그가 내 젖가슴의 왼쪽 니플(nipple)을 가볍게 핥으며 말했다.

희진, 여기가 바로 내가 속해야 할 곳이라고 내 심장이 말하고 있어. 여기까지 오기 위해 내가 그렇게 먼 길을 걸어온 거야.

그의 눈에 스파크가 일었다. 그 속에 담긴 깊은 신뢰를 나는 가슴 깊이 들여마셨다.

희진,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의 음악을 되찾았어. 정말 고마워.’

그는 나를 통해 자신의 블리스를 발견했다고 했다. 근원의 부름에 다가서지 않는 한,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이라는 건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나 때문이 아니야. 르노 당신 속에 원래 있었던 것이지. 나는 당신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는지 알아. 나는 당신이 음악 때문에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 많아지길 바래.’

내가 첫 눈에 그에게 끌린 것은 그가 음악과 함께 사유를 삶으로 끌어들인 남자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생업을 위해 IT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라는 화두를 밀쳐두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 음대에서 오르간을 전공한 음악가였고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주일이면 스톡홀름 한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오르가니스트였다.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의 심벌은 꼼틀꼼틀 살아났다. 우리는 다시 서로를 탐닉했다. 어느 순간은 더 격정적이 되었고 어느 순간은 좀 더 고요했지만 우리는 지치지 않고 우리의 육체에 흠뻑 에로스의 샘물을 채웠다. 우리는 이미 전날 하루를 룸 서비스로 보내며 24시간 내내 방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도시를 탐험하는 일 보다 서로를 탐험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우리는 자고 먹고 떠들고 웃고 사랑하며 서로의 세계 속으로 끊임없이 자맥질을 쳤다.


조용히 그는 떠났다. 내 이마에 허망한 키스 한 점을 남기고. 그가 그렇게 떠나는 것은 내가 원한 것이었다. 나는 멀쩡한 표정으로 그와 공항에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침 잠자리에서 떠났다가 저녁 잠자리가 되면 다시 돌아올 사람처럼 그렇게 무심히 그가 떠나기를 바랐다. 나는 몸을 일으켜 그의 목을 가만히 안았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번에는 그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아무 말 없이 우린 그렇게 오래 앉아 있었다. 서로 더 무언가 갈망하는 것은 서로에게 짐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담담함을 가장하고서라도 편히 헤어지는 일 뿐이었다. 그 순간 약속은 우리가 입에 담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가 떠나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오래 침대에 머물러 있었다. 어질러진 침대 시트에는 그가 남기고 간 향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공항에 도착한 그가 전화를 했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이제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건 그가 떠나는 순간 내가 나 자신과 한 유일한 약속이었다. 일어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창문을 열었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창문 밖에 웅크리고 선 작은 정원과 주변 건물들은 희미한 새벽 가로등에 처연하게 실루엣만 드러내고 있었다. 깊게 빨아들인 연기를 뿌연 안개 속으로 뱉어냈다.

 

테이블 위에 그가 쓴 메모가 남겨 있었다. 그는 그렇듯 세심한 남자였다.

 

my sweetest lady, you know I miss you already and will miss you each and every day you are not next to me. your touch, sound, smell, sight, and even taste, your kisses, your voice, your skin, your warm body… how can I be away from all of those?. you might know how much I want to wake up with you every morning and each day, I love you so, heejin. your wonderful being just infuses all my essence. and it brings me the sweetest dreams ever. yours, yours only, Ren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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