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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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부터 잠을 잘 못자기 시작했습니다. 수면의 질도 좋지 않고, 잠에 들어도 금방 깨기도 하구요. 불면증에 이골이 난 몸이라 그다지 대수롭지는 않은데, 잠을 못 자면 일상이 힘들어지니 괴롭더군요. 회사일이며, 책을 쓰는 일, 그리고 여러 가지 개인사까지 해야 할 일과 잘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인데 잠이 부족해서 두통이 있다보니 도무지 능률이 나지 않았습니다. 일단 오늘 하루는 버티고, 좀 제대로 자고 나서 해보자- 하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왜 난 또 잠을 자지 못하는가 - 고민에 빠지게 되더군요. 스트레스가 없진 않지만, 정신적 고통을 야기할 만한 스트레스들은 아니였고, 건강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 상태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고민의 총량이 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얘기하는 고민은 모든 일상사와 과거,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과 판단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너무 신경 쓰는 것들이 많아서 뇌에 과부하가 걸린 거지요. 머릿속이 늘 꽉 차 있던 겁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머릿속은 항시 과열상태로 쿨링팬이 쉴새 없이 웅웅거리면 돌아가고 있는 거죠. 회사에서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런저런 이슈들이 터지고 있고, 올해말까지 끝내기로 계약한 책은 집필이 지지부진하고, 아이들 교육과 본가, 처가에 걸친 집안 일들, 그리고 왜 전 세계 경제는 이 모양이며(주식을 들고 있어야 하는지), 지인들은 왜 내 마음을 몰라 주는 건지 - 머리속의 온갖 암초 사이를 갈지자로 운항하고 있는 돗단배와 같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던 겁니다.
체력에 한계가 있는 것처럼 정신력에도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의지력, 판단력, 기억력 등 각각의 정신력 역시 그 세부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무한정 뽑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기에 한 인간이 정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고민에도 총량이 있는 겁니다. 이 스택(stack)을 넘어서면 예기치 못한 오동작들이 생기게 됩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비유하자면 하나의 프로그램은 자신이 쓸 수 있는 메모리의 한계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를 넘어서 버리면, 프로그램은 오동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윈도우같은 운영체제에서 이 프로그램을 강제종료시켜버리죠. 죽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상하게 동작하거나 동작이 느려지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지게 됩니다.
이럴 땐 '하면 된다!' 'Impossible is nothing' 이런 캐치프레이즈들은 장기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못 합니다. 정신력 고갈상태에서 정신력을 짜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물이 말라버렸는데, 물을 길어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죠. 우물 안으로 계속 들어가 봐야 마른 땅만 나옵니다. 고민을 고민해봐야 고민만 더 커져 보일 뿐입니다. 왜 고민이 많은지 고민하는 것은 고민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합니다. 그럴 때는 우물 안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우물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우물에 물을 길어다 넣던지, 자연스럽게 물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죠. 정신과 의사 하지현씨가 쓴 <고민이 고민입니다>라는 책에 보면 고민을 내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할 때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글이 나옵니다.
"...내면의 사소한 변화에도 예민해져 1미터 이상의 파도가 아닌 10센티미터의 물결도 의미 있는 파동으로 인식한다. 현미경으로 내안을 들여다보고 탐색하며 해석하다 보니 작은 일상의 문제들도 고통의 요소로 느껴진다. 단위가 작으니 고민의 절대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은 내면의 깊은 성찰을 통해 '진짜 자신'을 발견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진짜 문제들을 발견해 이 모든 괴로움을 단번에 끝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고민만 깊어지고 ,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만 쌓이게 된다."
내적 성찰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민의 상대적인 크기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내적 성찰은 때론 깊은 깨달음을 주지만, 스스로를 우물에 가둬버리는 양날의 칼날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방구석에만 쳐박혀 있으면, 영원히 방구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말이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너무 들어와 있으면 밖으로 나가고, 밖으로 너무 나가 있으면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마치 그네의 움직임처럼 말입니다. 끝없이 외적탐색과 내적성찰을 반복함으로써 극단의 상태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괴테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말했습니다. 고민이 많다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고민들을 잘 다룰 수 있을 것인지 저마다의 솔루션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일본의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고민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고민하는 동안에는 결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고민하면서 도무지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고민을 그만해야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고민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고민이라면 이것은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단을 내렸다는 것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실행의 단계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실행의 단계에 들어갔으면 고민은 접어야 합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3D노트라는 것을 써오고 있습니다. 한동안 썼다가 안썼다가 반복을 하고 있긴 한데, 되돌아보면 이 노트를 쓰기 시작하는 시점은 대부분 고민이 많아져서 힘들어질 때였고, 좀 살만한 시점이 되면 이 노트를 안 썼던 것 같습니다(인간의 습성이죠). 3D노트에서 3D는 Dream, Decision, Doing의 3단어를 말합니다. 계획하고(꿈꾸고), 결정하고, 그냥 하는 겁니다. 이 노트는 대부분 체크리스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써놓은 것들을 고민하고 일단 결정합니다. 결정 내용이 나오면 그 항목에 대해서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기로 한 시점에 맞춰서 그냥 실행하면 그만입니다. 물론 굉장히 단순화해서 말씀드린 것이고, 만사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갈 리는 만무합니다. 그렇기에 제 나름에 맞춘 이런 프로세스 역시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도구나 보조수단이 될 수는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맞닥뜨리는 숱한 고민에 대응하기 위해 정신력을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고민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결단과 실행, 그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편으로 말라버린 우물에 물을 채우려면 스스로를 리프레시할 수 있는 활동들이 필요합니다. 여행, 산책 등 말입니다. 물론 리프레시할 때는 고민은 두고 와야겠죠.
완연한 가을입니다. 고민은 적고 행복함은 가득한 일상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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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았다해서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 했다고 해서 다 깨달은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고민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인데 고민해도 해답을 알 수 없다면 전 본능적인 감각에 의존해서 주어진 시간 안에 결정합니다.
이 땐 망설이지 않습니다.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쪽이어도 좋습니다. 최소한 망설이다가 하는 후회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해도 다 알 수도 또 다 잘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행후의 행위들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행위 의 시도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감정적인 선택이 아닌 감각과 고행의 결과에 따른 감각적인 선택이기에 후회보다 더 생산적이고 진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길도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이니 스스로 가까이 세밀하게 보고 스스로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합니다.
'나는 이길에 마음을 담았는가 ?" 그렇다면 옳고 그러지 않다면 소용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결과가 끝이 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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