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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0일 01시 28분 등록
 
지난번 비빔밥 만들기(1)에서는 국민연금이 갖는 비빔밥적 특징 중 ‘세대내(世代內) 소득 재분배’에 관해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세대간(世代間) 소득 재분배’에 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소득 재분배란 좀더 잘사는 사람이 좀더 못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제도다.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있는 사람이 그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보듬고 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삭막해지고, 위험한 사회로 변해 갈 수 있다. 이렇듯 소득재분배는 우리 사회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 십시일반(十匙一飯)하는 제도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언제부턴가 ‘양극화 해소’가 정치권의 구호처럼 자주 등장하게 됐다. 소득 재분배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한 방편이기도 하다.

한 세대라면 보통 30년 정도의 기간을 말한다. 세대간 소득을 재분배 한다는 것은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를 부양한다는(도와준다는) 좋은 의미가 있다. 실제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이 없던 시대에는 자식들이 부모를 부양해 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노후를 자식들에게 의존했던 노인들의 모습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시몬 보부와르의 『노년』이란 책에는 이런 사례가 나온다.

“호피족, 크리크와 크로 인디언들, 남아프리카의 부시먼들은 마을에서 먼 외딴 곳에 지은 오두막으로 노인들을 데리고 가서 약간의 물과 먹을 것을 넣어준 다음 버리고 오는 풍습이 있었다. 식량 자원이 매우 불안정한 에스키모인들은 노인이 눈 속에 드러누워 죽음을 기다리도록 부추긴다. 고기를 잡으러 원정을 나갈 때 그들은 노인들을 바다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빙산 위에 놔두고 가거나 혹은 얼음집 속에 가둬놓고 가서 노인들을 굶어 죽게 한다.”[71]

“최근까지도 일본의 벽지에는, 너무 가난하여 살기 위해 노인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마을들이 있었다. 그들은 노인들을 ‘죽음의 산’이라는 산에 데려가 버리곤 했다.”[75]

아주 가난하지만 노인들을 제거하지 않는 부족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류 역사 속의 많은 부족들의 경우,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지경에 처하게 될 때 노인들은 흔히 자식들을 위한 희생양이 되곤 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자식들이 부모를 제대로 모신다는 것이 이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다. 경제력이 든든한 사람들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개인이 알아서 부모를 부양하라고 하면 역사 속 사례 같은 비극이 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함께 노후를 준비하고, 함께 노인을 부양하자는 것이 공적연금제도의 탄생 목적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 더 가진 사람이 조금 더 부담하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 소득재분배가 갖는 의미다.


공적연금제도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지금  수 천년동안 자식에 의해 노후를 의지하던 사회(사적부양 사회)에서 공적연금에 의존해서 노후를 보내는 사회(공적부양 사회)로 전환하는 역사적인(?) 시점에 와있다. 사적부양이 공적부양으로 바뀐 후에는, 다시 말해서 연금제도가 성숙된 이후에 노인들은 주로 공적연금으로 생활을 하게 된다. 자식들은 부모 생활비를 보조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공적부양 사회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을까?


< 60세 이상 노인들의 소득원천 비교(2000년) >
 

소득 원천

한 국

일 본

미 국

독 일

근로소득

26.6%

21.6%

15.5%

4.6%

자산소득(재산, 예금, 사적연금)

9.9

6.6

23.3

13.7

사적 이전 (자녀 지원 등)

56.6

6.6

1.6

1.9

공적 이전 (공적연금, 생활보호 등)

6.6

57.4

55.8

77.6

공적연금 도입 년도

1988년

1941년

1935년

1889년

 ※ 노인의 소득실태 분석과 소득보장체계 개선방안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0년


이 표는 2000년도 조사내용이다. 공적연금제도가 성숙된 나라에서는 노인 소득에서 공적 이전(부양)이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10%도 안 된다. 반대로 자녀 지원 등 사적 이전(부양)은 우리나라가 50%를 넘고 선진국들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2000년 기준으로 봤을 때 선진국 노인들은 자식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거의 받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반이상을 자식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수급자가 늘고 있고, 가입기간이 길어지면서 급여액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므로 공적 이전 부분의 비중은 앞으로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처럼 되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적부양 사회에서 공적부양 사회로 전환하는 데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있다. 수 십년에 걸친 이 전환 기간 동안 연금에 가입한 초기(初期) 가입세대는 연금을 받지 못하는 부모들의 생활비를 보조해주어야 하는(사적 부양) 책임과 자신의 노후를 위해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2중 부담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이 세대를 흔히 <낀 세대> 라고 말한다. 지금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낀 세대>에 해당한다. <낀 세대>가 갖게 되는 과중한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마도 보험료율을 조금 낮게 책정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부담을 고려해서 1988년 국민연금제도 시행 초기에는 소득의 3%를 납부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1993년 6%, 1998년 9%로 점진적으로 보험료율을 인상시켜 왔다. 그리고 2007년에는 12.6%로 조정하려는 법률개정이 시도 됐지만 현 가입자들에게 너무 과중한 부담이라는 여론에 밀려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가입자들이 앞으로 받게 될 급여액을 충족시키려면 약 15%의 보험료율이 필요하다고 한다. 6%의 추가인상이 필요한데 지금 상황에서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럼 보험료 인상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가?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으려면 받게 될 급여액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데, 공적연금이 갖는 “급여의 적정성 보장”이란 원칙 때문에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적정성 보장에 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한다.)  그럼 지금 보험료를 인상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부담은 누가 감당하게 되는 건가? 이 부담은 국민연금에 가입한 우리 후 세대들에게 이전된다.


세대간 소득을 이전한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앞으로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발전 할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조금 더 잘살게 될 후 세대가 이전 세대를 도와준다는 좋은(?) 의미 말이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 부모세대를 공양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훌륭한 미풍양속이고, 발전시켜 가야 할 문화유산이지만 공적연금제도를 통해 후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 세대가 살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우리 후 세대는 우리보다 더 치열한 ‘글로벌 경쟁’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할 세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연금제도 운영에 큰 어려움을 주게 될 “평균수명 연장”이라는 불확실성의 파도를 우리 세대보다 더 힘들게 넘어가야 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평균 수명은 계속 연장 될 게 분명하지 않은가?)

또 다른 이유는 ‘세대간 소득재분배’란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의사결정 주체인 현세대(시몬 보브와르는 이를 우리 사회의 “주도세력”이라고 표현했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소득재분배라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세대내’ 소득재분배는 현재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동일 세대 내의 문제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으면 협의를 통해 바꾸어 갈 수 있다. 하지만 ‘세대간’ 소득재분배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Counter part인 당사자들이 논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당사자들은 지금 엄마 뱃속에 있거나,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에서 어른들이 자신들을 상대로 어떤 결정을 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느라 아주 바쁘다.

우리나라처럼 부모가 자식들을 사랑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지극하다. 자식들을 위해 너무 과도한 희생을 하는 부모들이 많았었고 지금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이렇게 개개인의 자식들이 귀하다면 30년 뒤에 그 귀한 자식들이 ‘우리 부모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어려워 졌다’며 부모 세대를 원망하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좀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 방법은 아마도 <낀 세대>인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더 보험료를 부담 하는 게 될 것이다.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제2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이 의결됐다. 이 계획안은 매 5년마다 국민연금의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험료 조정 등을 결정하는 것으로, 그 요지는 ‘국민연금 재정상황이 비교적 양호하므로 2013년까지는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인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13년에 제3차 재정재계산을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국민연금 운영 방향을 조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지금 당장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다니 가입자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일단 2013년까지 5년은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게 과연 환영할 만한 일인지는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15%의 보험료율이 필요한데 9%만 부담하면서, 나머지 부담을 후 세대에 이전하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할 일이다. 시간을 갖고 충분한 검토를 거쳐서 2013년에는 <낀 세대>가 인정할 수 있고, 후 세대도 받아들일 수 있는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초기 <낀 세대> 들의 2중 부담으로부터 이전된 부담을 우리 후 세대가 털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주도세력”인 현세대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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