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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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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0일 11시 59분 등록

엄마.

오늘 엄마와 데이트 하며, 제가 엄마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는 것을 혹시 아셨나요. 엄마를 오리궁둥이라고 놀리던 아빠의 말씀이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엄마의 뒷모습을 자꾸 살피게 되었지 뭐예요.

이런 말 하면, 엄마가 살짝 화를 내실지도 모르지만, 제가 본 엄마의 뒷모습은 십대소녀와 같은 귀여운 모습이에요.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 앙증맞은 까만 배낭, 46키로그램의 체중을 자랑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누가 50이 넘은 중년 아주머니 뒷모습이라 하겠어요.

엄마는 오늘도 저와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는 데이트를 하면서도 음식을 조금 모자라게 주문하고, 제가 남긴 음식을 남김없이 다 드시며, 쓸데없이 돈을 쓸까 신경을 쓰셨어요.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옛일이라 말할 수 있는 구 년 전의 그 모습이 새삼 떠올랐어요. 본래도 알뜰하셨던 엄마가 더 알뜰해지신 건, 우리가족이 그 일을 겪은 후에 생긴 변화였어요.

당시 아빠는 그동안 근무하시던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셨었지요. 그날 저녁식탁에서 아빠가 아주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셨다는 것을 엄마가 드리시는 감사의 기도 중에 알게 되었어요.

저는 가끔 그때가 기억나곤 해요. 주일이면 온 가족이 단정한 옷차림으로, 교회에 가고, 남동생과 교회활동도 열심히 하던 고등학교 시절. 믿음의 가족, 그것이 부모님이 우리를 가르치신 방식이었어요. 작은 일이라도 가족회의를 통해서 결정하던 그때. 엄마를 무척이나 사랑하시는 아빠는 늘 엄마를 존중하셨기에 한 번도 엄마의 말씀에 반대의사를 표현하지 않으셨어요. 
우리남매는 엄마가 우리 집의 여왕이라면서, 가끔 엄마의 흉을 보곤 했지요.

그런데 어느날, 지금처럼 볕이 좋은 가을날, 학교에서 돌아 왔을 때, 낮인데도 아빠가 집에 계셨어요. 집안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어두웠지요. 그런 날이 계속되던 어느날, 가족회의 중에 아빠가 다니던 회사사정이 악화되어 결국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한참 후에야 저는 그것이 IMF의 여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빠가 회사에 출근을 안 하시고, 집에 계시게 되면서 엄마는 자주 화를 내시거나 무표정해지셨어요. 꼼꼼하게 우리를 일일이 챙겨주시던 예전의 엄마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는 저는 괜스레 엄마에게 짜증을 많이 냈어요.
한 번도 돈 때문에 힘든 기억이 없던 저는 그 상황이 너무 싫었어요. 학교에 내야 할 잡부금을 제때 내지 못하게 되고, 돈이 필요한 일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우리 집이 점점 가난해져 간다는 현실이 화가 났어요.
 그때까지 제법 상위권이던 저의 성적은 자꾸 내려갔습니다. 어쩌면,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못 갈지도 모르는데 공부는 해서 뭐하겠느냐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공부는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런 어느날 밤. 저는 화장실에 가려다 엄마와 아빠가 이야기 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어요.

“매달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오던 월급이 안 들어오니 너무 막막해.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거지.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곧 큰애도 대학에 가야하고, 저축해 놓은 것도 없고, 이제 막 대출받아 집장만해 이자 넣기도 바쁜데.  이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너무 비참해.
 베란다에서 떨어져서 죽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이해뿐만 아니라 나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야. 나도 이 십 이층에서 떨어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엄마는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고 계셨어요.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엄마의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방으로 돌아온 저도 펑펑 울고 말았어요. 어렴풋이 집안 사정을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상황이 안 좋은 것을 알게 된 거죠.

그 무렵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엄마는 낮이고 밤이고, 잠옷을 입고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유령처럼 베란다에 못 박힌 듯 서서 창밖을 내다보셨어요. 저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싫고 무서웠어요. 그 때의 엄마는 내가 아는 우리 엄마가 아닌 듯 했어요. 문득 저러다 엄마가 잠옷을 입고 허공을 날것만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집에 돌아와도 엄마가 우리에게 음식을 챙겨주지 않는 일도 생기고, 보일러까지 돌리지 않아 우리 집은 날이 갈수록 냉기가 돌았습니다. 대출 받아 마련한 아파트를 내어 놓았지만, 보러오는 사람조차 없는 눈치였어요.

그때 엄마는 아셨을까요? 동생과 제가 무엇보다 걱정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밤에 교대로 불침번을 서면서 엄마를 감시했던 이유는 엄마가 혹시 베란다에서 자칫 실수로 떨어질까 봐 너무 걱정이 되었던 탓이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다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제 성적까지 떨어지면, 엄마에게 정말로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시 단정하게 옷을 입고, 교회에 가고, 맛있는 음식, 기분좋은 외출을 하고 싶었어요. 엄마가 웃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어요.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엄마라도, 엄마가 안 계신 우리집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니 공부를 해야했어요. 엄마가 늘 말씀 하셨듯이 좋은 대학에 가서 사회에서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는것, 그것만이 엄마가 기뻐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일을 그만 둔 것을 몹시 후회하셨지요.  그리고 우리집이 예전처럼 돌아 오기까지 원치 않는  여러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아직도 그 몇 년간의 일을 말씀하시려면 눈물을 내비치시는 엄마.

그러고 보니 제가 좋은 대학에 간 것도, 지금 이렇게 수입이 괜찮은 것도 생각해 보니 다 엄마의 덕분인 거네요.

제 나이가 서른이 다되어 사회에서 제법 제 위치를 찾고, 좋은 남자친구도 생겼으니 이제는 지금처럼 환히만 웃으시면 좋겠어요. 막내도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고, 아빠도 직장을 가지셨고, 이제 모든 것이 예전처럼 평화롭잖아요.

제가 아빠보다도 훨씬 수입이 많아 더 알뜰히 하시려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동안 엄마가 저를 잘 가르치느라 이르신 말씀을 트럭에 쌓아 나른다면, 밤이 이울도록 나른다해도 다 나르지 못 할 거에요. 제가 그 덕에 이렇게 빨리 좋은 직업을 갖게 되고, 어디서든 가정교육 잘 받았다라는 칭찬을 듣는 거잖아요. 그러니 제가 출가하기 전까지는 제 수입을 이러니저러니 제게 의논치 마시고 아빠가 가져다주시는 것이라 생각해 엄마 요량껏 하세요.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엄마만 받드는 사람이라고 흉본 거 이참에 취소해요. 아빠가 현명한 엄마의 말을 잘 받아 들이시는, 두 분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저도 그런 남자친구, 저의 의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새로 이사한 이집을 고를 때 제가 오층 이상은 안 된다고 했던 것은 어릴 때의 그 기억 때문이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새집에 정이 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요. 어디든 어떠하겠어요.

우리가 함께 있었기에 돌아보는 고통은 이제 고통이 아닐 수 있는 것이란 걸 잘 알게 되었는 걸요.

오늘 엄마와 데이트를 하며, 엄마 눈 밑의 주름살을 세어 봤어요.  다음 데이트는 피부과에서 하려구요. 제가 너무 바빠져 언제 또 엄마와 데이트를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또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돈을 허투루 쓴다고 펄쩍 뛰실테니 살짝 예약해두었다가 데이트 신청할 생각이에요.

생각해 보면, 엄마 말씀처럼 모든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밖에 없어요.  엄마의 기도와 헌신으로 이렇게 저의 모든 것이 성장했어요. 앞으로도 엄마의 기도를 부탁하려면, 지금처럼 귀여운 오리궁둥이, 이십대와 같은 엄마 뒷모습 오래도록 간직하셔야 해요.

엄마의 모든 것을 사랑해요.  엄마.

IP *.71.2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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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1.11 13:32:34 *.97.37.242

효녀네요. 누군지 몰라도 딸 잘키웠네.
실직만한 어려움도 많지 않다네요.
하지만 사람은 시련을 통해 성장한다 잖아요.
그 시련을 통해 이런 효녀를 얻었으니 절반은 성공한거네요.
그런데, 궁둥이 엄마는 살아 계신거죠? 돌아가시는 분 얘기가 많은지라... ㅋㅋ
글이 이제 패턴을 찾은거 같네요. 편안해요. 부드럽고. 사랑이 느껴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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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5 11:16:01 *.160.33.149

좋구나.  
네 책이 나오면 나는 사서 읽겠다.  그리고 몇 권을 더 사서 선물하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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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7 00:04:47 *.180.129.143
부끄럽습니다. 반신반의 하는 제자를 응원해주시는 사부님 말씀에 힘입어 멀리 가도록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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