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 조회 수 1046
- 댓글 수 1
- 추천 수 0
지난주 마음 편지에서 잠깐 이야기했듯, 저는 지난 일요일에 일본어 능력 시험을 봤습니다. 사실 시험 결과가 나오면 다시 마음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험 결과가 나오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중간 공유를 한 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격리 기간 중 컨디션이 좀 회복되고 나서부터 저는 긴 격리 기간을 보내기 위한 하나의 유흥으로 일본어 단어와 문법들을 외웠습니다. 최신식 공부법과는 거리가 먼, 아주 오래된 공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시험 교재를 한 권 사서 작은 수첩에 단어와 문법들을 적고, 큰 연습장에다 계속 반복해서 써보고, 기출문제를 계속해서 풀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본 JLPT 3급 시험은 어휘, 문법, 듣기 총 세 과목이 각 60점으로 총 180점 만점인 시험입니다. 이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는 시험에서 취득한 점수의 총합이 180점 중 95점 이상 되어야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각 과목별로 20점을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휘나 문법만 공부하고 듣기는 버린다든가 해버리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점수상으로는 대략 반타작을 조금 넘기면 자격을 딸 수 있는 것이니 굉장히 높은 허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험의 난이도나 찍기 결과에 따라 변수가 커지니 최대한 넓은 범위를 공부해놓으면 한 만큼 바로 엄청난 전력이 되기 때문에 공부를 쉬거나 딴짓을 하는데 심적 부담이 컸습니다.
심지어 JLPT 3급을 신청하게 된 것은 취미의 연장선이었습니다. 반드시 자격증을 따야 하는 당위성이 약하다 보니 벼락치기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자막 없이 일본어 본래의 대사를 느껴보고 싶다든가, 다음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더 자연스럽게 관광을 다니고 싶다든가, 기회가 되면 현지인들과 짧은 대화도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취미 외에 업무적으로나 추가적인 경력을 쌓기에는 제한이 많은 언어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잘 구사할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작은 증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확진 이후 일주일 만에 바깥에 나가니 며칠 만에 날이 많이 추워졌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시험을 본 곳은 집 근처의 중학교였는데, 참 오래간만에 학교란 곳을 가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의자의 재질이나 칠판의 형태 같은 것은 좀 달라졌지만, 큰 칠판이 교실 전면에 있고 책걸상이 줄을 지어 놓여있으며, 콘크리트로 만든 추운 복도같이 큰 틀은 너무도 학창 시절의 학교 그 자체여서 그리운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화장실 세면대에서 뜨거운 물이 나온다든지, 교실마다 태블릿 등을 대량으로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가 있다든지 하는 부분은 개선된 부분이어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시험은 한시 반부터 시작해서 네시 반에 끝났습니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넉넉하게 있고 준비해 갔던 따뜻한 차와 간식을 마시고 먹으며 집중해서 시험을 다 풀고 났더니 세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남편과 저녁을 먹고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서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다섯 시간쯤 푹 잤습니다. 전사의 휴식처럼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감각이었습니다.
시험의 결과가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혹시 떨어진다고 해도 저는 코로나를 앓았던 사람이니 아주 적절한 핑곗거리가 있습니다. 또한 열공의 덕택으로 이제 어지간한 애니메이션 대사는 알아듣게 되었으니 공부의 목적은 상당히 달성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험과는 상관없이 살고 있는 직장인이지만, 이렇게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공부를 하고 레벨 업을 하는 경험은 나이에 상관없이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자극이 부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되신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시험을 준비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부수적으로 성취를 얻을 수도 있고, 공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의 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