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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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우리집 옆집에는 미자네 집이었다. 미자는 나와 동갑내기 였다.
기억에 미자와 나는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그저 동갑내기 촌뜨기 지지배였다.
그럼에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은 그 집의 울타리였다.
시골에서도 유난히 가난한 그 아이 집은 탱자나무 울타리였다.
집집이 집울 탱자나무, 가을이면 노랗게 열리던 탱자
그 탱자향 향긋하게 퍼지던 그 이쁜 울타리 너머로
그 집 울타리 너머로 달근한 밥내가 너머오곤 했다.
그렇게 탱자향과 밥내가 어우러진 토방에서
햇볕이 스물스물 내 몸에 기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탱자 같이 작고 노란 꿈 알맹이를 만들고는 했었다.
이젠 기억조차 가물 가물한 미자 얼굴 만큼이나
그 때 맹글던 꿈 알맹이들이 기억조차 없다.
하지만, 모든 것 다 잊어도 향기 가득한 탱자향 만큼은 기억에 선연하다.
미자가 탱자를 닮았던가? 그렇지는 않았던듯 하다.
미자는 덩치가 컸다. 나에 두배 정도는 했다. 힘도 셌다.
미자와 가시덤불의 탱자나무와 노랗게 익어가는 고운 탱자와
울타리 너머 동네를 물들이던 탱자향과 닮은 구석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왜 하필 미자네였을까?
시골집 탱자나무 물타리집이 한 둘이 아니었고, 뽀얀 연기 풀풀나는 신작로가에도 탱자나무 울이었는데…
가난했지만 울타리 안에서 오순도순 정겹게 속삭이던 그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들 때문이리라.
땅거미 어스름 내려 앉을 때면 저녁연기와 함께 탱자울 너머 오는 밥내 때문이었으리라.
어둠이 깊어지고 밥벌이에 지친 식구들 둘러 앉아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숟가락 소리 때문이리라.
그리운것은 꼭 크거나 화려한것은 아닌가 보다.
아름다운 탱자울에서 시골 촌뜨기 지지배 미자와 꿈을 맹글던 햇살 가득한 토방과 성큼 다가선 가을 하늘아래 동네를 물들이던 탱자향이 그립다.
지금 시골 어딘가에 가면 이 이쁘고 향기 가득한 탱자향 만날수 있을까?
탱자향 가득한 집울 너머 오는 밥내와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소리 만날 수 있을까?
가진 것도 없는 것이
가시만 날카롭다 말하지 말아요
알통 굵은 내 뿌리 근처
하얗게 쌓인 새똥무더기를 보아요
심장 뜨거운 단단한 새들
털끝 하나 흩뜨리지 않아요
그대에겐 시고 떫은
탱자에 지나지 않겠지만
헛된 욕심만 끌안고 사는 그대에겐
가시울타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대가 알겠어요 가슴 가득
자유의 새떼를 품는 뜻
피고름 그득한 세상을 향해
열매보다도 가시를 키우는 큰 뜻
이정록<탱자나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