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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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이제껏 한 해를 마감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들은 이랬습니다
성과는 있었는가? 발전이 있었는가?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질문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요.
재미는 있었는가? 내년에는 재미가 있겠는가?
올 초 3월에 "시작하다"라는 주제로 마음편지를 드렸었죠. 그때 키네시스와 에네르게이아라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언급한 움직임에 대한 두가지 종류죠.
'키네시스(kinesis)'의 특징은 시작과 끝이 명확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시작한 다음 끝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움직임은 중단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 움직임에서는 완성과 미완성 두가지 상태 이외에 다른 상태는 없습니다. 키네시스에서는 과정이 무의미합니다. 움직이고 있는 그 상태 자체는 언제나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에네르게이아(Energeia)'입니다. 이것은 순간 순간의 움직임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이 춤을 추고 있는 움직임이 바로 에네르게이아입니다.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은 어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춤을 추고 있는 순간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합니다.
삶은 둘 중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삶 자체는 언제나 '에네르게이아'일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젊은 날 키네시스적인 성장을 추구해왔고, 지금 역시도 키네시스적 결과에 매달려서 살고 있을지언정 말입니다.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삶이란 1살부터 80살까지 정해진 시점과 종점을 달리는 '키네시스'가 아닙니다. 내일도 삶이 지속되리라는 100% 확증은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부분 '키네시스'와 같은 삶을 삽니다. 대학입학이라는 종점을 위해 달리고, 그 다음은 취업이라는 종점을 향해 다시 내달립니다. 임원이 되면 그 다음 종착역은 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결혼만 하면 행복할꺼야, 이혼하면 진정한 내 삶을 살 수 있을거야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지금의 행복은 유보됩니다.
목표에 이르지 못했지만 애썼던 시간들을 있습니다. 자기자신조차 그 시간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평가절하한다면 '키네시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키네시스'의 삶에는 하나의 커다란 맹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종점'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달했다고 생각한 그 '종점'은 사실 또다른 '시점'일뿐입니다. '종점'이라는 것은 사실 죽음말고는 없습니다. 그것도 이번 생에서만 말입니다. 우주의 시공부터 인간의 영역까지 '키네시스'는 결국 불완전한 움직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올 한해는 어떤 시간들이였는지요?
고생했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역시 삶으로 충만한 하루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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