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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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향해하고 있는 배를 제외한 모든 배는 낭만적으로 보이게 되어 있다
-에머슨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두 책 모두 키치Kitsch의 세계를 극명히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키치는 쉽게 말해 가짜를 말합니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죠. 화장을 한채로 잠을 자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바로 키치입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났는데, 방금 화장한 듯한 뽀사시한 여주인공의 얼굴은 현실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죠.
어느 정도는 키치가 삶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SNS, 유투브, 대중문화는 대부분 키치입니다. 대중음악, 상업적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큐멘타리에서 똥싸는 장면은 그냥 일상이지만, 상업영화에서 똥싸는 장면이 나온다면 그건 무엇인가를 노린 술수에 불과합니다. 어리석은 우리는 행복을 키치에서 찾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키치가 아니라는게 또한 함정입니다.
키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실제 삶으로 오도하기 때문입니다. 내 삶은 구질구질한데, SNS로 보는 친구의 모습은 화려합니다. 키치에는 서사가 없습니다. 불은 훨훨 타지만, 정작 연기는 나지 않습니다. SNS에서 보게 되는 캠핑장 바베큐 풍경은 부럽기 그지없지만, 연기와 뜨거움으로 고생하는 실제 디테일은 우리의 시선안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사는 줄거리가 있습니다. 사연이 있단 말입니다. 많은 것들이 단일한 하나의 장면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정과 대비되지만, 그렇다고 키치가 서정은 아닙니다. 서정은 모두에게 똑같이 보이는 풍경과 상황이 주관적으로 전환된 감정입니다. 그래서 한사람의 인생은 서정과 서사가 엉켜있습니다. 서정이 없는 서사는 단순한 기록일 뿐이죠. 전인미답인 모두의 인생에는 각자의 서정이 있습니다.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지만, 느끼는 감정은 다 다릅니다. 서정은 주관적 사실이고 서사의 단위가 되므로 타당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키치는 가짜 서정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대부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죠). 나의 감정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강요된 타자의 감정에 불과합니다.
2032년 계묘년 새해가 벌써 열흘이나 지났습니다. 지금의 마음가짐은 어떠신가요? 어떤 서정을 마음에 품고 어떤 서사를 꿈꾸고 있으신가요?
절실함을 마음에 품고 이른 새벽 해돋이의 장엄한 광경에 의지를 다졌지만 작심삼일로 그친다면 그것은 키치에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그 해돋이의 풍경을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넣어놓고 게을러질때마다 사진을 보며 스스로를 고무하고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며 무엇인가를 성취한다면 그것은 주관적 현실이 됩니다. 남 부러워하는 것은 그만두고 자신의 일상에 충실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디에나 고난이 있고, 어디에나 행복은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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