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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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시험관 일정이 끝나 이제서야 좀 컨디션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번잡한 시간대를 피해 조금씩 외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지난 1월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왔습니다. 슬램덩크는 90년대에 연재됐었던 고교 농구 만화로 저와 비슷한 또래들에게는 거의 성장 동화나 다름없는 작품입니다. 슬램덩크를 감명 깊게 봤던 부모님이 강백호라고 지은 선수가 현재 야구선수로 뛰고 있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한 세대에 큰 영향을 준 작품입니다.
평일 조조여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영화관에는 제 또래의 혼자 온 삼사 십 대 남자들이 예닐곱 명 있었고, 90년대에 세상에 존재하기는 했을지 모를 어린 학생 두 명이 있었습니다. 조용히 팝콘을 먹는 소리가 들리며 영화가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극장판에서 가장 기대한 것은 주인공이었습니다. 슬램덩크의 북산고교 주전 다섯 명 중 제 최애는 포인트 가드 송태섭이었습니다. 신장이 가장 중요한 농구 경기에서 170도 안되는 키로 디펜스를 돌파하는 것이 아주 멋지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외모나 성장 스토리로 인해 서태웅이나 정대만을 가장 좋아하는 것과 꽤 다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본편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강백호였고, 정대만과 서태웅도 각자의 스토리 역할이 있었기에 송태섭의 비중이 크지 않아 좀 아쉬운 면이 있었는데, 이번 극장판에서의 주인공이 송태섭이라는 소문을 듣고 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대가 컸던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확인한 송태섭의 과거는 정말 불우하고 힘들었습니다. 아버지, 형을 차례로 잃고 농구에서도 형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형만큼 의지가 되지 못하는 둘째였던 송태섭이 오랫동안 방황하는 것이 안쓰러웠습니다. 이 영화가 12세 이하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던데 아마 대부분 송태섭의 과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현재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모습, 그리고 극장판의 메인 경기인 산왕고교와의 경기에서 이제 어머니를 위로할 수도 있고, 농구에서도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서 팀의 운영을 책임져가며 성장하는 것을 보며 그가 이전의 어린아이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내가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는 아닐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것으로 나에게 주어진 한계에 도전하는 것은 어쩌면 천재의 신화보다도 더 멋진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내게 주어진 전략은 몇 개 없기도 하지요. 뜨거움을 간직한 이야기는 늘 마음의 불꽃을 다시 살려냅니다. 여러분의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함께 불꽃을 다시 깨워보시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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