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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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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8일 06시 33분 등록

오늘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일요일이다. 나한테는 모든 요일이 똑같지만 사람들에겐 일요일은 특별한가 보다. 매주 일요일이 되기를 기다리고 그 때마다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들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들은 계획만을 세울 뿐이다. 계획을 세우고 그들이 계획대로 실천하는 것을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신, 일요일에 잠을 잔다. 우리집 주인 양반도 마찬가지다. 아침 10시가 다 되도록 침대와 사랑에 빠진 듯 꼭 껴안고 헤어나질 못한다.

 

밖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중이지만, 주인은 침대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술관 가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가 내 마음을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몰래 담을 넘었다. 집을 나선지 한 20분쯤 되었는데 어느 새 미술관이 가까워 온다. 비 때문에 젖은 발바닥만 아니라면 미술관 기는 길가의 풍경도 과히 나쁘진 않다. 가을비에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바닥을 온통 노오랗게 물들이고 있다. 그러나 발은 꽤 시렵다. , 차거워. 발만 시렵지 않았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으련만…’

 

에취, 에이 취이.’

 

재채기가 나더니 몸이 으슬으슬 해진다. 다행인 것은 미술관처럼 보이는 건물이 눈 앞에 떡 서있다는 것이다.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몰려가고 나도 어느 새 그들 사이에 섰다. 요리저리 발길에 채이지 않도록 몸을 피해 그들을 따라 간다. 젖은 내 발바닥이 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슬슬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시관 입구에서 고개를 들이밀고 궁금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 작품이 바로 티노 세갈(Tino Sehgal)’‘This is exchange’입니다. 지금부터 자유롭게 관람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blog.naver.com/podo81?Redirect=Log&logNo=100016185459

 (전시장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저작권 위반이래나 뭐래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양이 한테도 저작권 위반이 적용되나? 어쨌거나 그래서 겨우 같은 작가의 비슷한 작품을 하나 찾아서 올린다. 그것도 굉장히 보안에 신경을 쓰는 사이트라서 스크린 캡쳐도 안 된다. 아무튼 내가 이번 주말에 본 작품은 첫번째 사진의 하얀 벽과 가장 가까웠다. 등 돌리고 계신 분이 20대의 젊은 여자 아이로 변신을 해 준다면 딱 내가 본 전시랑 비슷하다.)

 

아니, 이런, 이런 도대체 작품이 어디 있다는 말이야? 하얀 벽 뿐이쟎아. 현대 미술가들이라는 것들은 정말 이제 양심도 없다. 이제 하얀 벽을 내밀고 작품이라고 우기는 건가? 대체 뭘 말하려는 거냐? 제목이 뭐랬지? This is exchange.  이것이 교환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고 받는 것입니다? 이건 마르셸 뒤샹이 소변기를 갔다 두고 *이라고 제목을 붙여 두었던 것만큼이나 심상치 않아 보인단 말이지. 
마르셸 뒤샹.jpg

<샘(Spring)_마르셀 뒤샹(Marcel DuChanmp)>
 

 

조금 있으려니 20대의 젊은 학생이 나와서 우리를 향해 물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서 저랑 시장 경제에 대해서 토론을 해 보실 분이 있으신가요?”

 

우와, 정말 이상한 작품이다. 20대 여자가 이제 그럼 작품인가? 그녀가 질문을 하자 사람들을 하얀 벽을 보는 것보다 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다들 야릇하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한다.

 

이런, 나 같으면 벌써 두 손을 아니 두 발을 번쩍 들었을 것이다.

저요, 저요,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제가 한 번 토론해 볼게요. 저 좀 시켜 주세요.”

 

이럴 땐, , 고양이로서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다. 누구든 좀 적극적으로 뭔가 한 번 덤벼 봤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다들 남의 일처럼 한 발자국 물러서서 누구 나 대신 해 주는 사람 없나 하고 이 도시의 사람들은 다들 간이 콩알만 한지 멀뚱멀뚱 누가 그런 일을 하려나 하고 살피기만 한다.

 

그 때, 베이지색 점퍼를 입은 배 나온 중년 아저씨가 손을 번쩍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제가 한 번 토론해 볼께요.”

,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 계신 분 말고 또 다른 분은 안 계신가요? 저희들과 함께 시장 경제에 대해서 토론을 하실 분 안 계신가요?”

이번엔 청바지 입은 여대생이다.

저요.”

자 그럼, 제가 먼저 질문을 하나 드릴께요. 우리가 오늘 토론하려는 시장 경제는 무엇인가요?”

베이지 아저씨가 말한다.

그러니까 시장 경제란 인간의 본성, 그러니까 욕구에 가장 충실한 경제 시스템이지요. 욕망에 충실하게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그런 경제 시스템이지요.”

,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 계신 분은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번엔 청바지 대학생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시장 경제라는 것은 시장이라는 자유로운 경쟁으로 인해 가격이 결정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수요와 공급이 맞아 들어가는 그런 제도 아닌가요?”

, 맞습니다. 두 분 다 시장 경제에 대해서 잘 아시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럼, 시장 경제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

 

그들은- 정확히 말해서 그 셋은- 본격적으로 토론을 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내 눈엔 그들이 신기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베이지 색 아저씨는 베이지 색 점퍼를 벗어 둥글게 공을 말아 안내자에게 건넨다. 안내자는 그 둥근 공을 씩 웃으면서 받아서 노란색을 칠했다. 노란 색 공은 드디어 청바지 여대생에게 갔다가 다시 노랑색 정육면체로 정체를 달리했다. 노랑색 정육면체가 어느 쪽으로 넘어가는 지 나와 토론에 참가하지 않은 멀뚱이 관람객들이 관심 있게 쳐다 보고 있다.  이제 노란색 정육면체는 다시 아까 그 베이지 색 아저씨에게로 갔다. 아저씨는 그 정육면체를 펼쳐서 다시 옷을 입는다. 이번에는 청바지 여대생이 회색 털모자를 벗어서 둥글게 공을 만다. 그리고서는 그 공을 힘차게 다시 베이지 색 아저씨에서 던졌다. 아저씨는 회색 공을 가볍게 받아 든 후에 안내자에게 톡 손으로 쳐서 넘겨준다. 이제 멀뚱이 관람객들도 그 공이 어디로 갈 것인가 궁금해 하고 나도 매우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웃고, 궁금해 하고, 조바심 내고, 짜증을 내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시니컬하게 받아 치고 하는 가운데 우리 모두 지구가 아닌 다른 별나라에 도착한 듯 하다. 우리가 도착한 이상한 행성은 소통의 행성이다. 그것이 바로 주고 받는 것(Exchange) 의 위대함이다.

 

**이 글은 아트선재센터의 Platform Seoul전에 전시되어 있는 티노 세갈(Tino Sehgal)의 작품 ‘This is exchange’를 보고 저자가 재구성 한 글입니다.

IP *.33.6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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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00:16:12 *.180.129.143
고양이를 아예 의인화 하면 좋겠다. 이름도 지어주고.  재미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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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11.19 13:06:35 *.122.143.151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부터가 작품에 대한 상상력인지 좀 감이 안 온다...
물론 내 머리가 나빠서겠지만, 그래도 이해 좀 시켜주면 안될까?
초록 고양이가 등장하면서부터 포맷도 좀 바뀐 것 같고...
음.. 아직 잘 모르겠다. 헛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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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고양이
2008.11.19 14:34:29 *.152.239.217
"차칸양? 넌 맨날 뭐가 그리 헛갈리냐? 이해하지말고 그냥 느껴라. 그래도 헛갈린다고? 그래도 헛갈리면 나처럼 한 번 미쳐봐..그럼 단번에 이해가 갈 걸..ㅎㅎ. 그래도, 또, 자꾸 자꾸 헛갈리면 전화줘. 내가 너만 가르쳐 줄께."

1분 후,

"여보세요. 나 차칸양인데 아직도 헛갈려....네가 헛갈리면 전화 주라며."
"자~ 잘 봐...마지막에서 두번째 단락, '그런데, 왜 갑자기 내 눈엔 그들이 신기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부터가 내 상상력이다. 어때, 이제는 이해가 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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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1.19 14:23:22 *.97.37.242
알듯 모를듯 한 면도 있지만 재미난 발상이야.
작품을 통해 개인들이 마음 속으로 느끼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 소통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거지?  그렇다면 그건 대단한거지.
그게 어떤 내용에 관한 소통이 됐든, 그 경험을 통해서 뭔가를 느끼게 한다면...

아주 가끔 산에 가는  데, 산에 가면 사람들이 변하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산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아주 친절해 지거든. 소통이 되는거지. 
길도 물어보고,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 지, 수고한다고 격려도 하고...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면 전혀 모르는 남이 되는거야.  소통이 안 되는거지.
왜 그럴까? 난 아직도 이게 궁금해. 고양이야 넌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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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2008.11.19 19:27:58 *.33.67.19

야오옹~ 소통이 글쎄,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끼리의 소통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열어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게 그러니까 산에서는 사람들이 마음을 온전히 열어 둔 거죠..그런데 산에서 벗어나면 다시 살던 버릇대로 마음을 닫아버린 거야..그래서 그런게지...그냥 고양이 생각이에요..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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