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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4일 17시 38분 등록

인물화를 그리면서


“이마만 닮았다.”

“코가 너무 커.”

“이게 뭐야? 나이를 많이 먹어버렸잖아.”


주변사람의 사진을 가져다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은. 지금은 위험하다. 꿈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을 하고도 그릴 때마다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가 그린 그림이 그 사람이 마음 속으로 그린 이미지와 다를까봐서이다. 당연히 다르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내야 할까?


인물화를 몇 개 그렸는데, 반응들이 대체로 자신이 기대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특히나 막 뒤집기를 끝내고 기기 시작한 친구의 아이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에서의 반응이 가장 격렬했다. 친구놈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귀여운 놈을 나는 어느 구석은 닮았지만 어느 구석은 닮지 않게 그렸기 때문이다. 닮지 않았던 것이라면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그림 속에서는 그냥 눈이었을 뿐이다. 나는 한껏 내가 아는 것과 그동안에 배운 것을 동원해서 그렸다. 그러나 친구 놈은 결국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아들은 ‘훨씬 더 귀엽다’라고 주장했다.


나는 애써 그렸지만 당사자의 눈에는 차지 않는 그림이라니..... 그릴 때 그림을 선물할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귀여운 아기를 그리느라 생글생글 웃음이 났다. 다 그렸을 때는 그림속의 아기는 사진과 닮았지만 나이를 조금 더 먹어버린 듯했다. 그래도 안 닮은 것보다 닮은 구석이 많아서 기쁘게 선물했는데 퇴짜였다.

“다시 더 잘 그려줘.”

속상한 말이었다.

“줘! 지금의 내 실력은 이렇단 말이다. 다시 못 그려.”

그렇게 나도 토라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아들놈이 그놈에게는 아주 이쁜 놈이지.’


화실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처음에 인물화를 그릴 때 흔히 겪는 일이라고 한다. 그림에서는 아주 사소한 차이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도 하고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단다. 인물화에는 그 사소함이 아주 잘 드러난다. 내 경우처럼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게도 된다.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에는 파리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에는 약 3만5천종의 파리가 있다. 그런데 신학자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의 파리만 존재한다. 그들에는 파리는 그냥 파리를 뿐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드러커는 ‘창조자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다양성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어떠한 피조물도 두 발로 걷는 인간들보다 더 큰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라는 말로 자신이 빠져든 다양한 인간의 매력과 함께 자신이 그들로부터 배운 많은 것들을 자서전에 기술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그 사람의 매력에 빠져 들었나? 그릴 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여쁘지 않은 사람, 어여쁘지 않은 구석, 어여쁘지 않은 사물이 없는데, 이런 나의 의심은 나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과 때문에 나타는 것일 게다. 세상에 단 한 종류의 아기만을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은연중에 주장했나? 난 아니라고 하는데, 그림은 그렇게 되어버렸다. 내가 놓친 세부묘사가 인물의 특성을 잘 파악하기 못했다는 것 때문에 속상해서 두고 두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마다 물었다. 그건  꿈그림을 그릴 때 나타날 증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물이 들어가야 하는 그림에서 나는 주춤거릴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 점을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하냐고 물었다. 많이 그리면 된다고 한다. 좋아하면 많이 그리게 된다는 말도 ‘양의 증대’를 요구하는 말과 함께 꼭 세트로 따라 다닌다. 답답해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무심한 대답이다. 연습을 하겠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묻을 때, ‘연습을 하라’라는 대답해 준 것과 같다.


얼마 전 이런 답답한 심정을 이해해 주고 거기에다가 이를 극복할 연습방법을 알려준 이를 만났다. 자신도 동물은, 특히 동물 털을 아주 잘 그리는 데, 인물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해서  따로 연필초상화를 배웠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해준 이 사람과 내가 동의하는 바는 사람들은 누군가(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아주 잘 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리는 사람이 전업작가이건, 그것도 초상화 전문 작가이건, 미대생이건, 나처럼 배운 지 몇 달 안 된 사람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는 사람이야 잘 그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처럼 잘 그리지 못할 때 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 초보자들은 인물화를 그릴 때는 주변의 사람을 화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유명 영화배우를 그리는 것이 좋다는 것을 화실에 가서 선생님께 배웠다고 한다. 아직 잘 그리지 못하는 시기에 주변 인물을 그리면, 아주 꼭 닮은 게 아닌 상태여서 가까운 주변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 말에 기가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친구의 아들을 그린 내 경우처럼 그 사람이 애정을 갖고 있는 어떤 대상일수록 감정적인 비평을 듣게 되기 일쑤다. 반면 유명 영화배우 사진들 보고 그림을 그리면 조금만 닮아도 닮은 것 같다는 인상에 주위 사람들이 응원을 해 주지 배울 의욕을 꺾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 인물화에 자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주변사람들을 그리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팁일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인물이 이러하다면, 꿈그림은 어떨까? 자신의 꿈에 애정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인물화를 그릴 때 하나씩 얻게 되는 것들이 꿈그림에도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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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일기의 '1부: 그림배움일지' 와 '2부: 꿈 그림 일지'를 '꿈그림'이라는 주제에 맞춰  서로 연관짓고 있는 중입니다.  기존에 썼던 '화실일기'는 1부에 집중하고 있어 조정하려 합니다.)

IP *.247.8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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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8.11.24 20:15:29 *.230.153.133

글을 쓰는 거랑 똑 같네.
좋은 그림을 많이 봐라. 깊이 생각해라. 많이 그려라.

누나, 초상화 그릴 때,
연애편지 쓰듯이 그리면 어때?
난 연애편지 쓰듯이 쓰면 글이 좋아지던데.
가슴 속에 한 명을 품고 그 사람을 위해서 글을 쓰는 거야.
책을 쓸 때도 그렇게 쓰거든.

그럴러면 감정이입을 할 줄 알아야 하고,
감정이입을 하려면 관심이 있어야 하겠지.

예전에 노만 밀러인가, 타임지 표지를 도 맡아 그린 초상 전문화가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해.
"초상화(인물화)를 그릴 때는 안부터 그려야 한다.
즉, 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것을 품고 그려야 한다.
그러면 (어느 정도 기술이 갖춰진 사람이라면) 겉은 저절로 완성된다."

그림을 모르겠는데, 글은 이 사람 말이 맞거든.
적어도 나한테는.
누나도 그럴까?

나 좀 그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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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11.25 12:33:27 *.247.80.52
승완, 나 지금 별로 그리고 싶지 않은데.
용기가 없어서.
잘 그리는 사람에게 그려달라고 해.
나처럼 그리다가 이게 그림인지 정신수양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하는 사람보다는 나을 거 아냐.
실물 인물 초상화는 한번도 그려본적인 없어. 난 초짜야.

그린다면 실물보고 그릴거야.
살아있는 사람으로.
6~8시간 정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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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11.25 17:00:56 *.244.220.253
그림이나 세일즈나 진리는 매한가지네......... 그리는 것을 좋아해라 그리고 많이 그려라~
헛빵 & 까칠 승완을 보니 반갑네. 연인한테 쓰는 연애편지처럼 써라~ 음~ 좋은 조언. 인정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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