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라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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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앓고 있다. 앓고 있는 이유는 나도 모른다. 뚜렷한 병명도 없으면서 나는 주말 내내 앓고 있었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니고, 어디 다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군데 뚜렷이 아픈 곳도 없다. 그런데 나는 아프다. 너무 졸립고 일어날 수가 없다. 아무 것도 하기 싦은 병. 그것은 무기력증이다.
머리 속에서는 슬슬 내가 왜 이리 아픈가에 대해서 이유를 찾고 있다. 그러니까, 이 주에 갑자기
추워졌지. 그래서 추위를 싫어하는 내 몸이 반란을 하는 거야. 그럴거야. 그래서일거야. 그런데 왜 특별한 증상은 없는 거지? 기침을 한다거나 콧물이 흐른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하는 증상은 전혀 없는거냐구? 그건 아마 네가 그 동안 아프면 안 된다고 네 몸에 주입을 시켜 놓았기 때문일거야.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는데 일어나 지질 않는다. 하루 종일 누워서 책을 폈다 접었다만 반복하고 진도가 나가지질 않는다. 해야 할 것도 있는데, 북리뷰도 해야 하고 칼럼도 써야 하고 게다가 시간이 남으면 화랑들도 둘러 보려고 했단 말이지. 알고 보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산더미 같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하는데. 끄응.
그러고 보니 왜 이리 해야 하는 must가 많은 건가? Must, must, must, must, must, must 이게 한 번 누르니 고장난 기계처럼 막 쏟아져 나온다. 끊어지질 않는다. Must…라. 그걸 누가 지웠나? 아무도 지우지 않았던 짐을 스스로에게 지우고 나서 스스로 매우 힘들어 한다. 해야 한다니까. 해야 한다고. 해야 한다고 해야 한다고…해야 한다고가 당나귀 등에 지워진 짐처럼 무거워진다.
그러고 보니 그 아무도 그 모든 ‘해야 한다’ 들을 나에게 하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처음 시작은 내
자발적인 발로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하소연 할 데도 없어진다. 그래 그렇담, 자발적인 발로로 시작했으니 자발적인 발로로 몇 가지를 떼어내면 되겠지. 사실, 북리뷰도 칼럼도 한 편 빼먹고 한 주 편하게 쉬면 된다. ? 연구원 생활 수료 하고 받을 돈이 줄어 드는 것만 감수하면 말이다. 쳇, 말은 쉽다. 금방 잡아 눌렀는데도 또 다시 기어 올라오는 것은 ‘해야 하는대’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번식력이 뛰어난, 특히나 현대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서 득시글 댄다는 그 말로만 듣던 벌레가 또 스물 거린다.
그런데, 그 벌레의 실체는 무엇일까? 죽여지지도 않는 ‘해야 하는데’ 를 헤집고 그 안에 들어가 본다.
그러니까, 나, 힘들다. 사실은 몸이 아니고 마음이 힘들다. 가뜩이나 메마르고 바쁘기까지 한 새로운 회사 생활에 적응도 힘들지만, 떼려 치운다고 뾰족한 수가 나지 않는데다가, 이게 싫으면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다. 다 익지도 않은 떫은 감 같은 ‘내 인생의 첫 책’을 내 놓는 것도 힘들어 죽겠다. 주말이 끝날 때마다 상상력의 고갈된 내 머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뱉어 놓는 칼럼들이 홈페이지에 떠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이제 두렵기까지 하다. 덕분에 기분도 의기 소침 X 100만 정도로 에너지 다운됐다. 자신감 상실에 무력감이 나를 찾아왔다. 게다가 매주 끊임없이 읽어대야 하는 책들을 보라. 도대체가 한 주도 쉴 겨를이 없다. 이 책이 끝났다 싶으면 또 다른 책이 그리고 한 주가 지나면 또 다른 책이 파도처럼 나에게 밀려 온다.
쳇, 이런 생각의 숲 속 안에 갇힐 줄은 연구원 시작할 때 꿈에도 몰랐는데, 이상한 생각의 숲 안에 내가 갇혔다. 아니, 갇혔다기 보다는 깔렸다는 생각이 맞을래나?
그런데, 그 생각의 숲은 키운 게 누구지? 부인할 수 없다. 나다. 나 자신이다. 다시 그 생각의 숲의 갇히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 보면 이 모든 것들을 재미있을 거라고 쉬울 거라고 생각하던 내가 보인다. 그 때는 그 생각의 무게를 그리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다. 태도다. 같은 것에 대한 태도들 앞으로 다가올 책 읽기에 대해,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 책 쓰기에 대해 새로 탐험해야 할 재미있는 여행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제서야 고민들의 무게가 약간씩 줄어 들기 시작한다. 숲에서 나갈 구멍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내가 너희들을 멋지게 탐험해 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