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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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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6일 01시 53분 등록
 

무서운 벌레(1)


  나는 ‘신’이란 존재를 아직까지 믿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신’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해야 맞다. 아내가 가끔 촛불을 켜놓고 꿇어 앉아 ‘기도’라는 것을 할 때 그저 조용히 있어주는 것이 내가 해본 유일한 일이다.  ‘신’의 존재가 아내에게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는 몰라도 나에 관심사는 그것과 항상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 내가 아내의 부탁으로 기도문을 읽고 있다. 이제 아내는 기도문을 읽을 힘조차 없어졌다. 내가 읽을 때 가끔씩 신음하며 따라할 뿐이다. 그건 통증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통증을 참게 해달라고 애원하듯 그분을 이름을 소리도 나지 않는 입모양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내는 응급실 병상에 누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에 괴로워했다.  일주일 전부터 오르기 시작한 열은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고열은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38.5도 부근의 정상체온 보다 2도 높은 열은 아내의 기운을 조금씩 빼앗아 가고 있다. 열 기운이 조금 가라앉을라치면 4일째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는 속이 매스꺼운지 구토 증세를 호소한다. 아주 가끔씩 과음을 하는 나는 그 구토가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안다. 아내의 토사로 나오는 것은 그나마 조금 먹은 물과 위액이 전부다.

  그것을 진정시켜 달라고 간호사를 찾아가 설명하면 그녀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비닐에 포장된 약물을 들고 온다. 수액을 맞고 있는 투명호스에 마련된 보조 투입구에 바늘을 꽂아준다. 약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구토를 참으며 힘들어하던 얼굴이 잠시 풀린다. 힘겨운 어둠속으로 기대는 아내의 머리는 떨어지는 낙엽처럼 이미 그녀의 의지가 아니다. 더 이상은 아픔 없이 꿈도 꾸지 않고 곤히 잠자기를 바라지만 그건 내 바램 일 뿐이었다. 30분 정도가 지나면 열이 조금 더 오르면서 오한과 통증이 다시 찾아온다. 아내의 신음소리는 이제 마지막 남은 힘마저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안타깝게 작아지며 길어졌다. 신음소리 마저 힘겨워한다.

  나는 간호사에게 통증을 가라앉혀달라고 불쌍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간호사는 하루에 항생제와 구토 증세에 쓰이는 약 그리고 진통제를 3번씩 투약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기다리라는 말을 전한다. 도대체 무슨 병 때문에 아내가 아픈 것인지 그 이유라도 알면 좋으련만. 아프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점점 더 이틀 전 이곳으로 오기 전 입원했던 병원 의사선생님의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내를 동네 좀 큰 병원에 입원시켜 놓았다. 큰아이를 유치원에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전화가 왔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다. 아내가 입원한 병동의 간호사였는데 그녀는 곧바로 의사선생님과 통화를 해보라며 전화를 돌렸다. 의사 선생님은 전화를 받자마자 말을 쏟아냈다.


  “환자는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어제 찍은 초음파검사 결과 감상선 쪽에 암이 보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의심된다고도 하지 않고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이건 별 문제가 아닙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습니다. 환자는 지금 병균과 싸워야 할 몸의 저항체가 바닥 난 상태입니다. 정상인이 90이라면 환자는 지금 60도 되지 않습니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췄다. 의사 선생님은 내 심정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어제 6인실에서 다른 병실로 일단 옮겼습니다. 지금 바로 서울의 A병원이나 S병원 같은 큰 병원을 알아보시고 빨리 그곳으로 환자를 옮기셔야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전화 드린 겁니다. 병동에 자리가 없으면 응급실이라도 밀고 들어가야 합니다. 급합니다.”

  난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잠시 잊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혹시 제 아내가 이 상황을 알고 있나요?”

  다급하게 나온 첫 마디였다.

  “아니요. 환자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제 아내가 간호사였는데 혹시 혈액검사 차트를 보고 알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잠시 적막이 흘렀다.

  “아! 그래요....... 그럼 알 수도 있겠네요.”

  “한시가 급하니까 빨리 병원 알아보시고 이 번호로 전화 주세요. 퇴원 수속은 지금 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알아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빨리 알아보셔야 합니다.”

  의사선생님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미 끊긴 전화기를 들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암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백혈구 수치가 낮아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면.......“

  순간 넋을 잃고 멍해있을 아내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IP *.137.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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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08:52:48 *.180.129.143
얼마나 놀랐을지 그 상황이 그려진다.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걱정했어. 무척이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야. 한잠 편하게 자라니, 누나 말 안 듣고 그새 글 올렸네. 오프 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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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11.26 09:42:55 *.122.143.151
어제 통화에서 들린 너의 웃음 뒤에는 이런 급박한 상황이 있었구나..
힘든 상황의 끝이 보였기때문에 네가 웃을 수 있었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어서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렴..
숙제가 많이 밀려있잖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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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14:42:34 *.64.21.2
힘들었던 만큼이나 빠르게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거야.
그 상황이 보이는것 같다.
힘내라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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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1.26 14:45:57 *.97.37.242
많이 놀라고 걱정되었겠구나.
집 식구가 갑자기 큰 병에 걸리게 되면 주변 사람이 정신이 없어지지.
그래도 무사히 퇴원했다니 다행이다.
고생했다. 그리구 집사람  빨리 건강되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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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11.26 22:16:10 *.51.218.167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얼마나 놀랐을까.
현웅씨 힘내.
힘든 시간을 견디느라 너무 애썼는데 아무 도움도 못되어주었네.
빨리 회복하길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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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11.27 15:05:28 *.244.220.253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수님과의 애정이 더욱 깊어지신 것 같은데요........
이제 빨리 완전군장하고 빨리 나오세요~ 이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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