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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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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0일 15시 15분 등록

[내 삶의 단어장] 꽃잎처럼 피어난 아나고


 한겨울에도 꽃이 피었다. 하얀 꽃잎이었다. 사람마다 뿜어내는 입김이 하늘로 흩어졌다. 물고기가 뻐끔거리며 물방울을 튕겼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오가며 발끝으로 그 물방울을 채어 여기저기로 옮겼다. 고무 대야를 뛰쳐나온 물고기 한 마리 파닥였고 질척거리는 바닥엔 미꾸라지 몇 마리 꿈틀거렸다. ‘잘 살아있네’, 누군가 말했지만 물에서 떠난 물고기는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매서운 날의 소란한 어시장이었다. 아주머니의 손놀림은 바람보다 매섭고 무서웠다. 도마엔 바닥에서보다 더한 펄떡임으로 뒤틀어대는 물고기가 줄이었다. 도마 위 우뚝 솟은 꼬챙이에는 뱀처럼 긴 생선이 눈알이 꽂힌 채 아가미를 달싹였다. 선명하게 흘러내리는 시뻘건 핏물은 수차례 끼얹어진 물에 옅어졌지만 내 눈살은 더욱 짙게 찌푸려졌다. 생선이 단번에 썰리는 것이 아니라 껍질이 쭈욱 찢어지는 모습을 볼 거라곤 생각지 못했으니까. 같은 말들이 코러스처럼 울려 퍼졌다. ‘싱싱해’, ‘정말 싱싱해’ ‘앗싸, 도로 바다로 가겠네.’

  그 말들이 향한 곳이 수조도 대야도 아닌 도마였기에 쉬이 이해할 수 없었다. 활발히 움직이는 것에 싱싱함을 붙일 수는 있어도 고통으로 파닥거리며 죽어가는 것에 싱싱하다며 웃는 모습을 보는 내 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싱싱하게 움직였을 게다. 그곳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뒤돌아 다른 곳을 쳐다보았지만 칼을 쥔 사람과 피 흘리는 생선만 다를 뿐 같은 풍경이었다. 도마로 고개를 되돌렸을 때 무언가 내 입술에 닿았다. 나는 꼬챙이에 눈알이 박힌 도마 위의 그것처럼 파닥거렸다. 우악스러운 아주머니로부터 더 멀리 달아나지 못한 내 발을 원망했다. 나를 쳐다보는 어른들은 내게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웃음 가득한 얼굴이었다.

 “꼭꼭 씹어봐. 맛나지, ? 아나고 맛있지?”

  아주머니가 매서워 무조건 고개부터 끄덕거리며 본 도마 위엔 꿈틀거리는 것은 더 이상 없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꽃잎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나무 무늬 종이 위였다. 봄날 흩날리는 벚꽃처럼 그날의 시장통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하이얀, 정말 꽃잎이었다. 핏물을 지워낸 칼을 내려놓은 아주머니는 달라보였다. 마술쇼를 본 듯했다. 다시금 아주머니가 하얀 꽃잎을 초장에 찍어 내 입으로 들이밀었다. 꽃잎을 느껴야 하는데 칼을 쥔 아주머니는 너무 말이 많았다. 그 꽃잎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새하얗게 잊어먹었다. 아주머니의 재촉만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좀, 웃었던 것 같다.

한접시 가득 채워진 꽃잎을 들고 엄마는 병원으로 갔다. 그 겨울 엄마는 자주 병원으로 갔고 그때마다 난 방을 치우고 빨래를 했다. 그리고 꽃잎 한점 생각했다. 엄마는 또 시장에 들러 아나고를 가지고 병원으로 갔을까. 참 달았다. 아나고는.

겨울방학이 끝났다. 꽃무늬가 수놓인 하얀 스웨터를 입고 학교에 갔다. 스웨터는 따뜻했고 복슬복슬한 감촉이 좋았다. 방학 숙제를 내는 내 얼굴을 보며 선생님은 웃었다. “방학동안 잘 먹고 잘 놀았나 보네.”

  고개를 옆으로 흔들어야 했지만 아래로 내겨가기만 했다. “아닌데요. 정말 아닌데요.” 내 소리는 너무나 조그마해서 입을 열고 나온 것 같지 않았다. 스웨터가 답답했다. 수놓인 꽃잎이 꿈틀거리며 아나고로 되살아나 내 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려 했다. 방학동안 아나고 한 점 먹었을 뿐인데 그 한 점이 이토록 나를 살찌운 건가. 볼에 열이 올랐다.

  그때의 난 조금 억울했다. 겨울 방학 내내 병원과 집을 오가느라 바쁜 엄마를 대신해 열심히 집안일을 도왔으니까. 아이의 성장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했으니 해가 바뀌어 내 키가 자랐고 몸무게가 늘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조차 내가 먹은 아나고, 그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더욱 더 선명해질 때가 있다. 그날 엄마와 함께 간 병원은 시장과 같은 느낌이었지만 침대 위 사람들은 도마 위 생선보다 펄떡임이 덜했다. 엄마가 아나고를 펼쳤을 때만큼은 더러 웃음꽃이 피었던 것도 같은데 내 기억 속엔 그 하이얀 꽃잎같은 아나고가 내 입속으로 하염없이 들어가는 기억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아빠의 부러진 다리뼈가 굳는데 좋을 거라던 아나고는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 뼈를 키우고 나를 살찌웠나보다. 병원에 누워 계신 아빠의 뼈는 꽃잎처럼 변한 아나고를 탐한 나로 인해 여전히 굳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런 아빠를 두고도 잘 먹고 놀며 자라고 있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솟아나던 죄책감.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던 아나고를 보며 싱싱하다는 어른들을 괴이하게 여기다 금세 잊어먹고 음식으로 받아들이던 날을, 아빠의 안부가 아니라 아나고를 먹기 위해 병원을 따라갈까 했던 나를 기억하며 억울함도 눈물로 쉬이 사라졌다. 다시 아나고를 먹은 기억은 없지만 아나고가 일본말이라는 것을 안 후로는 더욱 더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아나고가 아니라 붕장어라고 이름을 전환시키며 그 기억도 사라지는 듯했는데나는 어쩌다 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게 되었나.

  그리고, 새삼스레 수치스러워졌다. 하나의 생명체가 죽어가는 모습에 몸서리쳐대다 장면이 전환되자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만 그때의 내가, 비로소 내 입에 들어올 때야 아나고라고 이름을 각인했던 내가, 굳이 하얀 꽃잎같다라고 생각하며 먹을거리로 쉬이 전환시켜 버린 내가, 누군가의 명명식행위와 다를 바 없이 보여서였다. 그때의 나는 열 살 어린 애였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애정하는 것이 사라질 때 몹시도 슬퍼하는 것이 아이의 일 아니던가!

  큰 돌덩이가 떨어진 듯 가슴을 아려대는 수치스러움은 한동안 깊이 자리잡을 듯하다. 살아 있을 때까지는 대게라는 하나의 종으로 불리다가 큰돌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 음식 맛은 어땠으려나. 나는 쉽게 대해도 좋을 ()’에서 선택되어 점점 죽어가는 큰돌이가 되어만 가는 것 같다. 점점 누군가의 먹거리로 전락해 가는 하루하루가 시장통 도마 위에 놓인 그것과 같게 느껴진다. 미꾸라지 어항 속에 넣어 둔 메기 한 마리는 미꾸라지의 생명력을 더욱 끌어올린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로 채워지는 수치심이 더욱 커지면 마지막 파닥거림도 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갈지 모른다. 그렇게 되어 갈까봐 안타깝고 두렵다. 새삼 아나고는 저 멀리 일본으로 보내고 해대려(海大鱺)라고 불러본다. 정약용 선생이 자산어보 속에 부른 붕장어의 이름이다. 낯선 어감이다. 이렇게 읊조리며, 새삼스레 수치심보다는 죄책감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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