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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7일 09시 41분 등록
 

무서운 벌레(2)


  의사선생님과 통화한 곳은 아파트 현관 앞이었다. 난 그곳에서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발걸음을 옮길 자신이 없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그런 생각조차 내 머릿속엔 들어있지 않았다. 혼자 병상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명치끝에서부터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놈의 기운이 내 눈물샘을 밀어냈는지 어찌할 수 없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차라리 소리 내어 울기라도 하면 어찌할 수 없는 심정이 누구려지려는지 잠시 하늘을 보며 쉼 호흡을 해보지만 내 숨소리는 조금씩 더 가파져만 갔다.

  집으로 들어왔다. 오른 손으로 컴퓨터를 켜면서 왼손은 전화기를 눌렀다. 미경이를 찾았다. 미경이는 내 오랜 친구다. 8년 전 같은 병동에 근무한 후배인 지금의 내 아내를 나에게 소개시켜준 친구다. 미경이는 A병원에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오전 시간은 워낙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줄 알면서도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미경이는 지금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전화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 현웅아! 잘지냈니.”

  미경이의 첫마디다. 언제나 똑같다.

  “그럼....... 잘 지내지.”

  나 또한 첫마디는 그녀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날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가 힘겨웠다. 나는 숨을 가다듬기 위해 심호흡을 해야 했다.

  “통화 괜찮니. 지금 바쁜 시간 아냐.”

  “괜찮아. 잠간은 통화할 수 있어. 그런데 너 무슨 일 있니.”

  내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지 미경이가 먼저 말고를 틔었다.

  나는 더 이상 참고 있다가는 말을 이을 수 없을 것 같아 아내의 소식을 바로 전했다.

  “순호가 아파.”

  난 다시 숨을 가다듬었다.

  “몸살이 꽤 독하게 걸렸다고 생각해서 동내 개인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었는데 아무런 차도가 없었어. 더 심해지기만 하는 거야. 그래서 동네 큰 병원엘 갔어. 거기서 피검사와 초음파검사를 했는데. 의사선생님이 빨리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거야.”

  난 아내가 ‘암’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하면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왜. 뭐라는데.”

  미경이가 다시 물었다.

  “갑상선에 ‘암’이 의심된데”

  나는 차마 암이 보인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백혈구 수치가 낮아 지금 빨리 큰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위험하데.”

  잠시 동안 미경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의심된다는 거지. 그렇지.”

  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현웅아. 지금 병동 알아보고 바로 연락 할게. 의심된다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조금만 기다려.”

  전화를 끊고 1분도 되지 않아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 간호사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오고 계시나요.”

  “아....... 예. 아직 병원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어디로 갈지 결정되면 바로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예. 알았습니다. 빨리 오세요.”

  전화를 끊자 이번에는 미경이 한테 전화가 왔다.

  “현웅아. 오늘은 예약이 끝났고. 내일 9시 15분으로 예약해 놨어. 그 시간 맞춰서 병원으로 오면 돼.”

  하루를 더 기다려야 했다.

  “미경아. 병원에서는 지금 당장 옮겨야 한다는 데.......”

  “지금 오면 응급실로 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미경이는 자기가 더 미안에 했다.

  “알았어. 미경아. 일단 응급실로라도 가봐야 겠다. 고마워.”

  “현웅아.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전화해. 알았지. 그리고 너무 걱정 하지 마. 아직 아무결과도 없는 거니까....... 그런데 어쩌냐.”

  

  전화를 끊고 곧바로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린다. 건널목을 건너자 병원이 보였다.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난 내가 눈물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심호흡을 하며 속으로 다짐하던 것이 나도 모르게 입으로 튀어 나왔다.

  “침착하자.”

  “침착해야 한다.”

  난 계속 중얼거렸고 병원은 점점 가까워왔다. 병원에 들어서서 곧바로 아내가 입원해 있는 6인실로 갔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아내는 없었다. 병동 간호사에게 아내의 거취를 물었다. 간호사는 2인실로 옮겨다며 호실을 가르쳐 주었다.


  아내를 보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내는 검사 시트를 보며 울고 있었다. 아내도 나에게 말하지 못했다. 난 끝내 아내의 어깨만 두드려주고는 A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아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짧은 순간 아내를 더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 난 뒤 돌아 창밖을 바라봤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IP *.137.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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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11.28 17:02:02 *.247.80.52

쾌유를 빕니다. 현웅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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