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어니언
  • 조회 수 896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23년 4월 27일 07시 24분 등록

4월 들어 회사 내 새로운 목표를 어쩌다 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에 한 번도 같이 식사해 본 직장 동료와 한 주에 한 번 이상 점심 먹기’입니다.


회사에는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러 이유로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업무상 드문드문 연락하는 사이거나, 전에 같이 일했다가 조직이 멀어지는 경우도 많고, 회식 때 잠깐 말을 섞고 다시 접점이 없어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한 사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생판 정보가 없는 사람을 바로 식사에 초대하자니 낯을 가리는 저에게는 너무 괴로운 시간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을 갖고 어떤 사람인지는 최소한 알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점심 먹기 전략을 짰습니다.


다행히 저의 지금 상황이 이런 전략과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제가 속한 조직은 조직 책임자는 작년부터 여러 번 바뀌었지만 구성원들은 계속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는 몰라도 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정도는 파악이 되어있었습니다. 또한 흔히 얘기하는 빌런이나 미친놈 같은 캐릭터는 (있을 수도 있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전 회사에 있을 때는 함께 일하는 조직의 평균 연령이 위로 차이 나고 저도 관심사의 폭이 좁다 보니 주변 동료들과 사적으로 점심을 먹겠다는 시도 자체가 매우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현재 직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랑 나이가 비슷하거나 더 어린 동료들이 더 많아서 그들의 고민거리에 대해 저도 고민한 적이 있고 저도 그들의 관심사와 어느 정도 맞춰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동안 누군가와 교류가 없었던 게 어느 쪽에서든 먼저 밥 먹자는 얘기를 한 적이 없어서라면 제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프로젝트의 뼈대는 작년에 우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룹사의 연구조직에서 일하는 분이 저희 조직에 파견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엄청 활발하게 새로 파견된 조직의 사람들과 소셜라이징을 하고, 많은 정보들을 모으고 사람을 사귀곤 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그래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런 직장인의 방식도 있다는 것을 처음 목격했었습니다.


연초에 제가 휴직을 하고 돌아왔을 때 이 분을 다시 만나면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더 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걸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휴직 이후, 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돌아가며 만나고 나니 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 대한 욕구가 생겼습니다. 여기에 몇 번 회사 동료들과 주말이나 저녁에 액티비티를 함께 했던 것이 용기를 주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을 열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사실 막상 같이 밥 먹으면서 대단한 업무 얘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영영 모르고 지나갔을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 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추천해 줬던 영화 감상 후기를 나누거나 제주도 한 달 살기 경험을 듣거나 쌍둥이가 태어나서 육아를 어떻게 해내고 있고 육아 템을 추천받거나 좋아하는 음식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대리 정도 였을 때, <회사에서 혼자 밥먹지 마라>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제목을 들으면서 부끄럽지만 ‘극한의 관계지향자’, ‘한국형 관계지향문화에 뇌를 지배당했다’ 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런 조언이 필요한 환경, 상황이 존재하고, 또 잘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면 조금 용기를 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막상 밥을 먹어보니 별로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점심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같이 밥 먹자고 호의를 표현하는데 대놓고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새로운 사람과 점심먹기’는 현재 상황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P *.143.230.48

프로필 이미지
2023.05.17 19:24:20 *.169.227.149

보여지는 것, 그리고 생각되어지는 것과 사실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얼핏 드네요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736 [용기충전소] 멀티페르소나, 팔색조 말고 십색조라 불러주오 김글리 2020.08.06 869
3735 낭중지추 [1] 불씨 2022.06.21 869
3734 [자유학년제 가족 독서 #01] 피터 히스토리아 file [4] 제산 2018.04.16 870
3733 [일상에 스민 문학] 허클베리핀의 모험 정재엽 2018.07.18 870
3732 이제 진짜 백수의 삶을 앞두고 있습니다 [6] 차칸양 2018.07.24 870
3731 [금욜편지 93- 현실에서 관계를 지키는 법] 수희향 2019.06.21 871
3730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구름 속에서 탄생한 와인의 기적 3 file 알로하 2019.07.14 871
3729 [금욜편지 97- 내일을 바꾸는 오늘] 수희향 2019.07.19 871
3728 훗날을 기약하는 인생 설계 [1] 옹박 2017.08.21 872
3727 [금욜편지 101- 책쓰기와 글쓰기의 차이점] 수희향 2019.08.16 872
3726 [수요편지] 전전하며 쓰다 장재용 2019.10.16 872
3725 [수요편지] 깨어남에 대해 [3] 김글리 2022.01.05 872
3724 부모님의 삶 [1] 어니언 2022.07.14 872
3723 [내 삶의 단어장] 쵸코맛을 기다리는 오후 2 [1] 에움길~ 2023.05.07 872
3722 부모가 익어가는 시간 옹박 2017.06.12 873
3721 고객은 상품보다 경험을 사고 싶어한다 이철민 2017.11.30 873
3720 가족처방전 – 종갓집 여성들의 미투(나도 힘들다)는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제산 2018.04.09 873
3719 드디어 호그와트에 입학하라는 부엉이를 받았습니다. [1] 어니언 2023.02.23 873
3718 [금욜편지 50- 신화속 휴먼유형- 하데스형 3- 유형분석] [2] 수희향 2018.08.17 874
3717 [화요편지]그렇게 엄마를 완전히 소화했다고 믿었다. file 아난다 2020.08.11 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