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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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올림픽대로를 타고 출근하다 보면 하늘에 까만 새떼가 열을 지어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새들이 아득히 먼 나라에서 날아온 것을 상상해 보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천만 명이 살고 있는 이 대도시에 한강이라는 커다란 강이 동서로 흐르고 있어 새들도 쉬어갈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 숙련된 비행사들은 대체 아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얼마나 자주 휴식을 취하는지 같은 것들이 말입니다. 다행히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책이 지난달에 나왔습니다. 바로 스콧 아이덴 솔의 <날개 위의 세계>입니다.
이 책의 저자도 어렸을 때 저처럼 철새들의 장엄한 비행을 매년 목격해왔고, 그래서 탐조의 길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다만 좀 더 적극적이었던 것은 철새들의 이동경로를 관측하기 위한 국제적인 기관에서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전 세계의 철새 학자들과 다양한 철새 도래지를 돌아다니면서 철새들의 다리에 관측용 가락지를 끼우기도 하고 철새들의 서식지를 환경파괴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책도 철새들이 쉬었다 가는 습지와 강, 갯벌을 지키기 위해 쓴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어떻게 철새의 몸이 그렇게 긴 여행을 해낼 수 있게 진화해왔는가?라는 질문의 답이었습니다. 저자는 크게 세 가지를 꼽습니다. 첫 번째는 우선 새들의 눈이 양자역학적인 원리로 지구의 자기장을 볼 수 있게 진화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들은 자신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동일하게 알더라도 모든, 같은 종의 철새들이 동일한 루트를 통해 그 목적지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지구의 자기장이 보인다니 어떻게 생겼을지 하루만이라도 새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로 새들은 자기 몸의 체성분 구성을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도 체지방을 근육으로 바꾸기도 하고, 철새 도래지에서 휴식과 번식을 할 때에는 근육을 다시 지방으로 바꾸어서 더 유리한 체형으로 변경합니다. 이동 중에는 위나 장과 같은 소화기관을 작게 만들어서 오랫동안 무엇을 먹지 않고 이동할 수 있게 만든다고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들의 뇌는 반쪽씩 잠을 잘 수 있다고 해요. 좌뇌만 쉰다든가 우뇌만 쉬는 것이 가능해서 누워서 잠을 자지 않고도 반쯤 쉴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얘기는 즉 뇌를 반씩만 쓰면서 쉬지 않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신기하죠?
특히 체성분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이야기는 정말 부러웠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근육질의 몸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멋지더군요. 양장류가 진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렇게 다른 동물들의 진화 흔적을 볼 때마다 생명의 신비함을 느꼈습니다. 인간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렇듯 연례 행사라고만 여겼던 철새들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다음 철새이동이 기다려집니다. 올해도 고작해야 출근길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다겠지만 언제나 장엄한 비행을 하는 수많은 새들의 무리를 언제까지나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운동과학에서 본능이라고 말하는 무의식행동이 학습을 통해서 무의식화 행동이냐 아니면 타고난 무의식적 행동 이냐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것들은 계속해서 진보하는 과학에 의해 밝혀지겠지만, 오늘날, 우리의 관점(곧 현대인류)에서는 어느쪽이냐 보다는 얼마만큼 제어할 수 있는 통제력을 갖고 있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예감같은 것은 본능에 가깝겠지만 급제동하는 반응능력은 분명 학습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때때로 놀라고 감탄하는 초인간적인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더 많은 능력들에 감탄하고 경이롭게 생각합니다. 저도 한 때 국가대표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세계를 무대로 살고 있던 때에 보았던 선수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보면서 감탄하고 경이롭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