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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5일 10시 39분 등록


영업 3개월 차, 아직 보험영업 햇병아리 시절.
대학동기에게 소개를 받은 고객과 상담하게 되었다. 그는 골프연습장에서 고객들에게 골프 레슨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세미프로’ 라 불렀다. 언젠가는 정식 프로가 되어 PGA 무대에 진출하는 당찬 꿈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계발을 위해 호주나 미국으로 골프연수의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성격은 활달했으며, 적극적이었다. 첫 만남부터 상당히 호의적이었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자연스럽게 계약은 만족스럽게 체결되었다. 계약 체결 후 소개를 부탁했을 때도, 그는 과거 동료였던 세미프로 5명을 소개해 주었다. 소개전화를 부탁했을 때조차 흔쾌하게 전화를 해주었다.

“요즘 잘 지내냐? 뭐~ 다른 좋은 일은 없고? 그래 오랜만에 통화하는 데 반갑다. 언젠 한 번 소주 한잔 해야지! 오늘 전화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너 보험 많이 들었냐? 응~ 요즘 보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내가 정말 믿을만한 사람 한 명 소개 할테니, 꼭 한 번 만나봐. 이 보험은 다른 보험하고 틀리더라구. 너무 괜찮은 내용이니까. 그리고 웬만하면 보험 하나 들어.”

그는 적극적인 소개 전화를 해주었다. 무척 고마웠다. 가망고객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기대감이 밀려왔다. 일반적인 시장이 아닌 골프 세미프로라는 특화된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몇 번이나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다음날 어제 받은 소개용지를 꺼내 들뜬 마음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저는 OOO라고 합니다. OOO세미프로님, 맞으시죠?
저는 OO생명에 근무하는 OOO라고 합니다. 혹시 친구분 되시는 OOO님 잘 아시나요?"
“네~ 어제 전화 받았습니다.”
“오늘 전화를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어제 친구분 되시는 OOO님께 상담을 드렸더니, 정말 만족해하셨거든요. 그래서 주변에 정말 소중한 분 소개를 부탁 드렸더니, 가장 먼저 OOO세미프로님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잠깐의 시간이면 되니까,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보험이죠? 저는 관심 없습니다. 기존에 가입한 보험도 있고……만나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상치 않은 답변이었다. 강한 소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마음을 추수리고, 거절처리를 시도했다.

“네~ 어떤 말씀인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소개해주신 OOO님도 처음에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저를 만나뵙고 대단히 만족해하셨습니다. 보험 가입에 대한 부담은 갖지 마시고 편하게 인사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요. 오셔도 소용없다니까요.”


거절은 완강했다. 그는 몇 번이고 거절했고, 마찬가지로 나는 몇 번이고 거절에 응대했다. 결국 그는 만남을 승낙했다. 기대 하지 말라는 단서를 남기면서. 그가 근무하는 지역은 아직 개발이 많이 되어 있지 않은 용인 부근의 야외 골프 연습장이었다. 전화 약속을 잡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또한 험난한 여행이었다. 당시에는 그 흔한 네비게이션 조차 없었기에 지도책을 펴들고 물어물어 목적지를 가야했다. 그가 알려준 대로 지도를 살펴보았지만, 그가 근무하는 골프연습장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 수 밖에 없었다. 전화를 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짜증이 더해갔다. “와도 소용없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2시간이 넘게 찾아 헤맨 상태에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3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급한 마음으로 골프 연습장에 들어섰다.

도착했을 때, 그는 다른 고객의 스윙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었다. 나는 약속에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는 환영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잠깐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손짓으로 대기실을 가르켰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1시간을 기다렸다. 인내심이 임계점을 넘어설 즈음에 그는 대기실로 들어왔다. 미안하다는 말 조차 없었다. 아주 성가신 존재를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그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말씀드린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용인 쪽은 초행길이라서요.
혹시 마음 상하셨으면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건 됐구요. 무슨 말씀을 하려고 온 겁니까? 바쁜 사람한테……”


그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양해도 없이 담배를 베어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친구분 되시는 OOO님께서……”
“그 자식 이야기는 됐구요. 본론만 말씀하고 가세요.”


그는 내 말을 중간에 끊었다.

“김프로님. 보험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특별히 갖고 계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보험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싫어요. 관심 없어요. 관심 없다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내게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준비는 충분히 하고……”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재수없는 소리를 해!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무슨 사고라도 났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럴 줄 알고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에이~ 보험하는 사람들이란……”


소리가 아니라 고함이었다. 그는 대기실 문을 ‘꽝’ 닫으면서 방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다른 고객에게 다가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레슨을 계속했다. 정적이 흘렀다. 강하게 망치로 머리를 구타당한 듯, 한동안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우울한 침묵이 대기실을 휘감았다. 내면에서 혼란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매너 없는 그의 멱살이라도 잡고 한바탕 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굳이 오겠다고 한 것이 원인이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그러나 고민 끝 결론은 그냥 말없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새파랗게 젊은 친구에게 면박을 당하고 나오는 심정이 참담했다. 어쩌면 아무 대응도 못하고 뒤돌아서는 바보 같은 자신이 더 싫었는지도 모른다. 운전대를 붙들고 있었지만, 운전을 하고 있지 않았다. 차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적 없이 길을 가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홀로 걸어가는 듯했다. 자괴감 서린 질문들이 계속해서 엄습해 왔다.

‘계속 이 일을 할 것인가? 가슴 설레며 꿈꿨던 모습이 이런 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뭐가 부족하다고 저런 사람에게까지 무안을 당해야만 하는가? 성공에 대한 열망이, 생명보험에 대한 믿음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 날은 사무실로 귀점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어둠이 차장 너머 풍경을 채워가고 있었다. 차 안은 철저히 혼자 있는 독립된 공간. 오로지 침묵만이 존재했다. 간간히 흘러나오는 라디오 DJ의 음성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이내 라디오를 껐다. 그러자 이내 다른 질문들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지금 이 일을 그만 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래도 괜찮은 직장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선택한 일이지 않은가? 이 일을 시작하라고 강요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처음 이 일의 시작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금방이라도 비웃음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무수한 장면들이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교차되었다. 어느새 차는 집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그 다음날 출근을 했지만, 어제의 충격이 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선배 한 명이 조용히 불렀다.

“어제 무슨 일 있었니? 너 답지 않게 표정이 어두운데……”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어제 경험했던 사건을 이야기하였다. 그는 마음 속으로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했다.

“음~ 꽤 힘든 경험을 했구나.”

그는 내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끝까지 경청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했던 가슴 아픈 과거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믿었던 친구에게 심하게 거절당한 당했던 이야기, 고객의 문 앞에서 면박 당했던 경험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 마디를 남겼다.

“이 일은 아무나 시작할 수 있어. 그러나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일이라면, 형은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런데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네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 믿는다. 형이 너 믿는 거 알지?”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 메일함에는 어제 대화를 나눴던 선배의 짧은 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난 우리가 바람개비라고 생각해. 어떤 사람들은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원망을 하지.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거야. 지금 너는 바람을 기다릴 때가 아니라, 달려 나갈 때야~ 우리 함께 달려 나가자.”

매일 날씨가 좋으면, 푸른 초원도 사막이 된다. 모든 비즈니스는 거절에서 시작된다. 시련과 고통 없이 만들어진 괄목할 만한 성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 비밀을 이미 알고 있다. 그 비밀은 외로움과 힘겨움을 홀로 담담히 받아 안았을 때, 비로소 마법이 된다.  어느날 당신이 지쳐 쓰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문이 닫혀있다고 느낄 때, 이미 다른 곳에 당신의 문은 열려있다. 

좌절이라는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우산보다 함께 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는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가슴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과 함께 마음을 나눌 사람 한 명 있다면, 세상은 희망적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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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
2008.12.15 16:23:23 *.5.56.64
감동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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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2.15 19:22:09 *.5.98.153
눈물겹다.
보험영업의 어려움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자리에 가기까지 수많은 좌절을 딛고 넘어섰을 거란 생각이드는구나.

이제까지 겪었던 좌절들이 모아져서 내년엔 희망의 꽃으로 피어나길 바란다.
잘~ 될끄야! 재우버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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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5 20:40:13 *.163.65.81
같이 한번 달려볼까.
바람개비가 돌지를 않아.
바람을 만들어야 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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