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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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 10년간의 업적(10대풍광, 직업의 회고 포함)
미래로부터의 회고(나를 기다리고 있는 멋진 장면)
1) 일상의 루틴(남편과 함께)
10년후(2033. 6. 26.) 아침해가 떠오르기 직전이다. 4시에 기상하여 책을 보다가 5시쯤 침실로 들어가 자고 있는 남편을 부드러운 입맞춤을 해주며 깨웠다. 우리집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낮은 산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바다쪽으로 테라스를 넓게 내어 질 좋은 나무바닥을 깔았고, 1인용 편안한 의자 2개, 간이 목재 탁자 한 개를 두었다. 또 해먹이 하나 매달려있다. 나의 안내로 짧은 명상을 시작하였다.
들숨과 날숨이 교하하는 순간의 텅빔을 알아채고 내 몸의 어느 부분에 긴장이 많이 되었는지 확인하였다. 그리고 날숨으로 그 부분의 힘을 빼주었다. 이어서 요가매트를 펼쳤다. 내가 좋아하는 20개의 아사나로 1시간동안 음악에 따라 천천히, 부드럽게 몸을 이완시켰다. 땀이 송글송글 코 끝에 맺혔다. 몸은 가벼워졌고 식욕이 돌았다.
샤워후 우리는 우리가 재배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 과일 몇 개 그리고 요거트, 주스와 차로 아침을 차렸다. 천천히 서로의 눈을 응시하면서 아주 천천히 아침을 즐기며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였다. 오전에 해야할 일을 마치고 오후 4시쯤 집 뒷산의 산책로를 따라 1시간 정도 산책을 즐겼고 저녁식사후에 바닷가로 나가 파도소리를 들으며 달빛을 몸에 담아왔다. 이런 편안한 일상이 들어온 지 이제 10년이 되었다.
2) (나를 성장시켜주는 일) 2023년 7월말 직장을 나오고 난 뒤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고민이 많았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무엇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지 결정이 쉽지 않았다. 이제 나가야 할 직장은 사라졌고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하루를 채우면 되었지만 그렇다고 취미생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무엇을 할까? 고민한 끝에 심리상담과 코칭을 공부했다. 남들보다 많이 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더 즐거웠고, 배운 것을 현장에서 접목하면서 기쁨을 얻었다..
지난 5년간 내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하면서 스스로도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내 강점인 공감을 활용하면서 내가 하는 일을 더욱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몸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소매틱 접근법에 의한 치유상담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프리랜서로 제2의 인생을 걸으면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내가 진정 어떤 일을 잘하고, 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앞으로의 10년에 대해 생각하니 그 황홀함으로 가슴이 뛰었다. 이런 결정을 내리고 최선을 다한 내가 고마웠다.
3)(내가 즐겨하는 일) 1년중 11월부터 3월까지 5개월은 베트남에 와서 생활하고 있다. 서울의 춥고 긴 겨울이 부담스러워 남편과 함께 결정을 내렸다. 이미 6년을 베트남에서 보내고 생생한 실무경험과 지식을 얻어 귀국한 남편은 베트남 전문가로서 서울에서 베트남관련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나는 1주일에 2일은 한국어를 가르치고 3일은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베트남도 구석구석 도로 인프라가 많이 개선되었고 기차나 버스, 자동차로도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1달에 한번 동생인 투, 란과 함께 베트남의 안 가본 도시들을 방문하여 유적지를 제대로 공부하고, 지역음식을 맛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고 미래를 상상해보면서 글을 썼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였다. 이렇게헤서 2026년 여행작가로서 데뷔할 수 있었다. 이 바탕에는 2023년부터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일이 습관이 되었었고 나를 탐색하고 치유하는 글쓰기 덕분이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나를 찾아왔던 감정의 단어들을 시로 옮겨 적어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연말에 365편의 글중 12편을 골랐고 5년동안 60편을 정리하였다. 2028년 내 생일기념으로 남편이 이렇게 엮은 문집을 먄들어 선물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내가 인정하는 시인이 되었다.
4)(내가 즐거하는 일2) 중1때 짝사랑한 영어선생님을 시작으로 내 외국어 사랑은 각별했다. 지금까지 만난 언어를 꼽아보면 영어, 일본어, 불어, 중국어, 베트남어까지 5개 언어가 나를 통과해갔다. 그 중 2024년부터는 내가 존경하는 차(tea) 스승님 때문에 일본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일본어룰 시작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그 감각을 다시 일깨우면서 지리적으로 가까우나 전혀 몰랐던 일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일본의 차 문화에 대한 공부를 확장해나가면서 선생님과 일본어 어원공부를 병행하면서 공부에 공들인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말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 더 추가되었고 또 하나의 세계를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스승님은 요즘 몸이 많이 연로해지셨다. 그래서 슬픔이 차오른다. 10년전 만나 뵙고 많은 얘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한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어떤 시간이었는지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었지만, 이제 우리앞에 놓여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다시 10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더 많이 하고 싶을까?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일들은 무엇이 있었을까? 지금이라도, 지금이나마 할 수 있는 일, 더 많이 사랑을 주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뿐이다.
5) (내가 사랑하는 사람) 2025년. 남편과 나는 특별한 여행을 준비했다. 여행도 가급적 60대 이전에 가고 싶은 곳을 가보고, 감각으로 체험하고 여행에서 배운 아름다운 것들을 일상에 녹여 소소한 즐거움을 더 많이 불러오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매년 2곳을 정했고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잉군아줌마가 계시는 노르웨이의 북쪽 트레킹으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알제리, 마다가스카르, 크리스마스 섬, 칠레의 남쪽 끝, 그리고 여름날 알레스카 등. 우리는 가급적 많이 걸었고, 자연속에 있었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시장과 골목을 누볐다.
6) (내 몸을 아껴주는 방법) 건강한 몸을 위해 매일 운동으로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고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앗다. 남편과 함께 건강한 몸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었고 잠도 충분히 잤다. 건강한 몸을 위해 도시 농업으로 재배할 수 있는 농작물을 직접 재배했고 건강한 식단으로 함께 요리하는 것을 즐겼다. 나보다 요리를 잘 하는 남편의 요리실력은 날씨 좋은 주말, 친구들을 초대하여 집 마당 정원에 앉아 웃고 애기하고, 모닥불을 지피고 별을 헤는 날들로 이어졌다. 우리는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행복해졌다. 그리고 2023년 시작한 태극권은 이제 10년동안 내 몸과 마음을 사랑해주는 방식이 되었다. 이 서서하는 명상을 통해 내가 내 몸을 소중히 다루는 습관을 체득하게 되어 기뻤다.
7) (함께하고 싶은 장소) 장헌 다실
한국의 차에 대해 사람들은 물었다. 일본, 중국, 대만과 다른 한국의 차문화는 어떻개 다른가요?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내 공간을 오픈하고 가까운 사람들부터 초대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의 1층은 찾아오는 친구들과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차를 마시면서 찾아오는 감정과 이야기를 공유하고,사방으로 열린 큰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앞마당의 꽃과 식물들을 감상한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릴때마다 마음도 부드러워졌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옛날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차를 마시고 내가 구워주는 빵과 디저트를 먹으며 그 날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함께 들었다. 이 여백의 공간으로 인해 지난 10년동안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고, 땨뜻함을 주고 받았고, 우리는 조금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
8) (사회적 모성) 아이가 없는 삶은 어때요? 내가 많이 듣는 질문이었다. 아이들을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부모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상처는 아니었다. 다만 아이들을 볼 때 좀더 애뜻해지고 아이들의 표정을 오래 바랄 볼 뿐이다.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입도 예쁘고 말하는 것도 예쁘고 행동도 예쁠 뿐이다. 그래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모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살폈고 그 아이들에게 부모가 되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서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어린 신생아부터 자립이 필요한 아이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돌봄, 시간을 함께 하고, 고민을 들어주고 필요한 것들을 사주는 일들이다. 벌써 10년이 되었고 그 사이 아이들이 많이 컸다. 그 아이들이 머금은 미소가 더 자주 오래 머물기를 바랬다.
9) (사랑하는 엄마) 2033년 엄마가 95세가 되셨다. 엄마는 여전히 주름이 없는 예쁜 할머니다. 나는 엄마도 닯지 않고 아버지도 닮지 않았다. 외모에서 부모님의 특징들이 절묘하고 적절하게 혼합되어 각갂의 뚜렷한 특징을 찾아 낼 수 없다. 2020. 10월부터 2023. 12월까지 엄마와 3년 3개월을 동거했다. 결혼후 친정엄막와 같이 사는 일이 가능해진 것은 남편의 해외근무때문이었다. 이 기간동안 늙어가는 엄마의 몸을 보았고,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들었고, 치매약을 복용하며 한 두개씩 서서히 단어를을 잊어버리는 모습을 뵈었다. 엄마 사랑해! 뽀뽀를 해드릴때마다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는 엄마의 모습도 매일 보았다. 과거의 많은 기억을 잊으셨지만 손재주가 많았던 엄마는 뜨개질은 잊지 않으셨다. 내 차 주전자의 뚜껑에 모자를 만들어 주셨고 내 책상위에 놓여진 아끼는 사물들에게 모두 엄마표 받침을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2023. 12월까지 엄마를 친구로, 내가 돌봐주어야할 아이로, 또 같은 여자로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매일 듣고 싶은 말.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볼에 여러번 뽀뽀를 해드리고, 블루스를 추기도 하고, 많이 안아주고 가끔은 엄마를 놀리면서 웃기도 했다. 그리고 10년후 엄마가 아직 내 곁에 계신다는 사실 만으로도 눈시울이 적셔진다. 엄마 이렇게 건강하게 저희들 곁에 오래 머물러주세요.
10) (친구들과 가까운 사람들) 2023년 직장을 관두면서 친했던 동료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이제는 사무실이 아닌 밖에서 만나고 안부를 묻게 되었다. 가까운 친구들 역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승진을 했고, 여전히 일을 통해 자신의 핵심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나를 아껴주는 친구들과 지인들과 좀 더 자주 만나고 즐거운 일을 나누고 슬픈 일들을 함께 아파하면서 보냈다. 친구들 역시 나의 꿈을 지지해주고, 그 순간을 함께 했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었다. 어렸을 때 만났고 긴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들 덕분에 길에서 방황하기도 했었지만 되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나의 풍광들이 하나 하나 이루어지는 것을 애기했고 친구들 역시 업데이트된 자신들의 10대 풍광들을 들려주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천천히 늙었고 생각은 더 말랑말랑해지고 삶은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
2028%. 7월 친구들을 초대하여 이전에 장만해둔 소형 모터 보트를 타고 낚시를 나갔다. 태양빛을 부서지고 바다는 더 없이 잔잔했다. 나는 시동을 걸고 키를 잡았다. 모터가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내가 사랑하는 여름이 왔다.
그녀를 보면 시인 오규원이 쓴 ‘한 잎의 여자’라는 시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가녀린 몸, 하늘하늘한 미소, 고요한 움직임, 그럼에도 그녀는 조용한 열정을 품고 있으며,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지를 잘 알고 그 일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을 가지고 있다. 남편과 함께 아침을 여는 그녀의 일상은 싱그럽고 생생하다.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배워둔 외국어 실력과 호기심으로 무장한 그녀의 특별한 여행들은 그녀의 삶을 흥분으로 물들인다. 그녀가 베트남에 머무를 때 그녀에게 연락하여 함께 즐긴 특별한 여행은 내 인생의 몇 안되는 명 장면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