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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6일 06시 14분 등록

오늘은 전시장에서는 사람이 별로 없다. 무언지 심각한 얼굴로 전시장을 조심조심 걸어 다니고 있는 가늘고 긴 중년의 여인을 제외하고는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아마 너무 일찍 온 탓 일게다. 일요일 남들은 다 단잠에 빠져 있을 이런 미술 전시장을 찾는 이는 아마 나, 초록 고양이 말고는 없을 게다. 그런데 저 가늘고 긴 중년의 여인은 아침부터 이 미술관에 왠 행차를 하셨을까? 다행이 가늘고 긴 그 중년의 여인은 이 몸을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다.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시며 당신의 관람에 빠지신 듯 하다. 덕분에 나는 마음을 놓고 쉬이 전시장을 돌아 다니게 됐다. 유난히도 깜깜한 조용한 전시장. 어디선가 삐꺽삐꺽 소리가 들린다. 삐꺽삐꺽 삐꺽삐꺽. 깜깜한 데다가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니 뒷목덜미의 털이 모두 곤두서는 느낌이다. 보호 본능이 동한 나는 두 분에 불을 켜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사진HJ_1.jpg
<마르쿠스 쉰발트 - 엘리 - 2008 두아트> 

커다란 인형이다. 나무로 만든 커다란 인형이 점잖게 전시장 중간에 매달려 있다. 아주 점잖게 바

른 자세로 앉아서 한쪽 발을 끄덕끄덕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규칙적인 그 소리, ‘삐걱삐걱 삐걱

삐걱이 전시장 안의 고요를 뚫고 이상 야릇한 느낌을 주고 있는 가운데 인형은 아무 생각도 없

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조도가 매우 낮은 전시장과 인형의 무표정한 얼

굴과 뻥 뚫린 채 그대로 있는 인형의 모습이 그냥 봐도 왠시 스산하다. 여기서 내가 야옹하고

울어 준다면 그거야 말고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지난 번 혼자 산에 가는 길에 만났던 울보 아저씨랑이 크다란 인형이 비슷하다는 생각

을 하게 된다. 이 크다란 인형을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가슴이 텅 빈 걸까?

 

그러니까, 지난 번 우리 주인한테 된 통 혼나고 혼자 우리 집 뒷산을 올랐을 때다. 내가 식탁 위

에 계란 후라이 였든가, 고등어 구이 였든가를 슬쩍 내 발로 건드려 놓았을 때다. 우리 주인이 나

때문에 매우 화가 나 있었고 그 화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럴 땐 주인의 눈 앞에서 잠

시 사라져 주는 게 예의다. 잠시 사라져서 주인이 화가 풀릴 때쯤 집 안에 들어오면 주인은 그

동안 나를 찾다가 매우 반가운 척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슬쩍 집을 나왔던 거다. 집을 나와 얼마 간 어슬렁 거리다가 등산가는 사람들 틈에 끼여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야트막한 산이라 별로 힘들지 않게 올라서는 어딘가 낮잠 잘 곳을 물색

하고 있었다. 겨우 딱 맞는 자리 하나를 찾아서 등을 데고 누웠다. 따뜻한 볕에 상쾌한 바람을 맞

으며 배를 뒤집고 누워 조용이 있으니 신선노름이 따로 없었다. 그 때 나의 신선 노름에 평화를

깨뜨린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누군가의 울음소리였다.  

 

분명 울음소리였다. 누가 이 산 속에서 울고 있을까? 등산 길에 길을 잃은 아이라도 되는 걸까?

아니면 실연이라도 한 젊은 여인일까? 누가 도대체 어떤 사연으로 울고 있는 걸까? 나는 점점 궁

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일어나는 궁금증을 무시하고 그냥 따뜻한 햇볕이나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궁금증을 누를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울음 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나는 궁금증을 견디지 못해서 풀숲을 지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해 갔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선 한참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나는 슬금슬금 그에게로 갔다. 몸집이 제법 커

다란 게 어린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슬금슬금 그에게로 다가섰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다 큰

어른이었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남자가 왜 이런 곳에서 울고 있을까? 분명 무슨 사연이 있겠지

만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이 초록 고양이의 마음의 눈으로 보니, 그는 올해 딱 40살이 되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다. 조그만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고, 개구쟁이 두 아들과 평범한 아내와 나름대로 오손도손 잘 살고 있다.

런 그가 여기서 왜 울고 있는 걸까? 따지고 보자면 그가 울 이유는 별로 없다. 두 아들은 아주

잘 자라고 있고 아내는 살림도 잘 하고 있으니까. 조그만 아파트도 한 칸 마련했고 회사에선 일

도 잘 하고 있으며 겉으로 보기엔 별로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런 그가 여기 와서 정기적으로 울게 된 것은 3년쯤 전부터이다. 그러니까 삼십하고도 칠 년 정

도의 그의 인생에서 그는 한 번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 전부터

내 자식은 울면 안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는 것을 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자신이 울고 싶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회사에서는

날이 갈수록 책임이 점점 무거워졌다. 자신이 하는 일에 부하 직원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위치로 올라갔으니까. 아니, 책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루하루 점점 더 경쟁은 거세

어 졌다. 그런 그의 무거운 어깨도 몰라주는 듯 아이들은 모두 쑥쑥 잘도 자랐다. 남들 다 시키는

과외도 외국 유학도 안 보내는 터이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돈이 점점 많이 들어 갔다.

런 처지에도 꼬박꼬박 시댁에 부모님께 용돈을 부치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은 모두 접고 사

는 아내가 고마웠다. 너무 고마워서 그런 아내에게 사실대로 힘들다고 한번 투정 한 번 해 본 적

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냥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대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삶은 그 커다란 인형의 뻥 뚫린 가슴처럼 공허했다. 모든 것이 잘 돌

아가고 있는데도, 그의 삶은 무언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공허했다. 인형이 돌리고 있는 발처럼 자

신이 삶이 반복하는 리듬 같았다. 이대로 10 20년쯤 살면 얼굴은 아마 그 인형처럼 무표정 해

질 것이다라는 생각에 미쳤을 때. 우연히 지금의 그 장소를 발견한 것이다. 거기서 그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놓아 울어 버렸다. 한참을 울고 났을 때, 그가 알게 된 것은 세상이 다시 살

아 볼만 하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그에게 남은 날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그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 곳에 홀로 와서는 한 번씩 울고 간다고 그랬다. 아마,

울보 아저씨가 마음 놓고 울만한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그 때의 표정은 아마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무표정한 전시장의 커다란 그 인형과 같지 않았을까?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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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12.18 05:15:31 *.178.33.220
가슴이 뻥 뚤린 전시인형과 그 울보 아저씨의 뻥 뚫린 가슴이 서로 연결되는구나.
웬지 내 가슴도 뻥 뚫려 있는 듯 시리다...
이제는 그 가슴, 조금씩 조금씩 메우며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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