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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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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4일 21시 06분 등록

[내 삶의 단어장]

담배 가게 아가씨

 

  나로 말하자면, 그 유명한 담배 가게 딸이다. 오래 전엔 아마도 아가씨로 불리었고 나름 청년이라 외치는 이들의 지랄 속에서 외출한 아버지 대신 가게를 보는 일은 고난도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해 젊은이랄 수 없는 그들을 비롯하여 가게를 찾는 동네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은연 중 느껴지는 이들의 질서정연함에 놀라곤 한다.

  담배를 사는 사람들은 그렇다. 여간해선 담배의 품종을 바꾸지 않는다. 그 독한 내면의 집착에 박수를 보낸다.

  때론 그 집착이 지겨울 수도 있다. 그러면 잠시 집착을 벗어 던지고 피던 담배를 바꿀 때가 있다. 대표적인 순간은 내 수중에 담배가 없을 때다. 이 때야 말로 품종전환의 적기다. 절대로 늘 사는 그 담배만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담배 한 개비를 피고자 담배갑을 열었건만 텅 비어있음을 발견할 때, 기쁜 듯 빈 갑을 멀리 튕겨 버리고 주머니를 뒤졌건만 돈 한푼 나오지 않을 때면 얼굴 색깔이 파리해 진다. 마침 그때면 더더욱 절실하게 담배에 대한 욕구가 살아나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방황한다.

  그럴 때면 그들은 이제까지 본 모습 중에서 가장 순한 양이 되기도 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할 줄 아는 모습을 보인다. 그 어떤 담배라도 상관없다. 그 순간에는 개별적인 이름을 뚜렷이 가지며 독립적인 담배가 그저 담배라는 일반 명사로 뭉쳐질 뿐이다. 저렴한 담배이든, 독한 담배이든, 순한 담배이든, 남이 몇 모금 빨던 담배이든 상관없다. 담배, 한 가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안을 그들의 태도 때문에 어떠한 담배를 가진 자라도 은인이 된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 나눔에 대해서 사람들은 제법 관대하다.

그러나, 이 당연한 진리를 습관을 빗겨가는 순간이란 있기 마련이다. 그 예외 또한 일련의 흐름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들의 익숙한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지 않아 예측가능하다는 면에서, 말이다.

  예외라면 예외! 이 동네에서는 담배 한 개비 빌립시다보다 , 담배 사줘라는 말을 더 듣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딱히 이유도 없이 담배를 사달라고 하는 당당함에도 박수를 보낸다.

그럼 상대의 반응은 또 어떤가. ‘헛헛하며 헛웃음을 켜면서도 담배를 사주는 사람이 제법 있다. 가만 보면 사달라는 사람은 늘 그래왔던 것 같고 사주는 사람 역시 늘 그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원칙은 있다. 어떤 원칙인가.

  내 담배가 아니라 딴 놈혹은 딴 년에게 담배를 사 줄 때는 그 사람의 담배는 내가 피는 담배보다 꼭 가격이 낮은 담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용하게 일이 끝나지 않는다. 필시, 자기가 피는 담배보다 더 높은 금액의 담배를 사주지 않기 위해 소란은 소란을 부른다.

내가 4,000원짜리 디스나 라일락을 피건만 덥썩 6,000원짜리 에쎄 골든리프를 들고서 숨넘어갈 듯 졸라대면 바로 싸움이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뭣이, 쥐뿔도 없는 것이!”

  “쥐뿔이 있건 없건 이거밖에 못 먹어!”

  어쩌면 담배의 세계만큼 제 순수한 기호에 주눅 들지 않는 것이 또 있을까. 제 아무리 제일 싼 담배를 피워댄대도 저런 싸구려 같은 놈, 가진 게 없으니 그 따위 담배나 피워대지라거나 제 아무리 비싼 담배를 사 피운다 해도 , 그런 담배를 피우시는 분은 도대체 어느 고귀한 족속이기에?” 이따위 시선도 받지 않는다. 평소라면, 어차피 제 돈으로 사서 피는 경우에는 말이다.

나는 이 모습을 볼 때마다 줄 세우기, 선 긋기, 갑질이란 우리나라 사람이 가지는 민족성이 아닌가, 정체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흔히 말하는 부자들, 가진 자들은 정부가 절차나 목적 등 비합리적이고 무계획적으로 낭비하는 세금 낭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전혀 문제삼지 않는다. , 부자들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그러나, 자연재해나 인재로 인해 빚어진 사고로 인해 보상금을 책정하거나,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제공되는 보조금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고, 꼼꼼하다. 그리고 당연한 듯 조롱을 일삼는다.

  절대, 내가 피는 담배보다 비싼 가격의 담배를 사서 피면 안 된다는 것! 이 논리는 익숙하게 듣는 이야기다. 보상금이나 보조금을 받으려면 받는 이들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을 받아도 되는 태도!라는 게 존재한다.

  대패 삼겹살은 가능해도 생고기 삼겹살은 안돼!

  시장통에서 산 메이커 없는 패딩은 가능해도 노스페이스는 안돼!

  아니 선풍기면 되지, 에어컨이 왜 필요해?

  나도 못하는 외식을 니들이 한다고?

  왜 그렇게 밝고 화사한 색깔의 옷을 입었지? 좀더 어둡고 칙칙한 색이 맞지 않아?

  아니, 뭐 그렇다고 치고. 그 태도는 뭐야? 그게 잘못됐잖아.

  감사하게, 그냥 감사가 아니라 엄~청나게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생각만 하며 안되니까 표현하라고! 더 더 수구려서! 바로 그 모습으로 계속, 계속!

  한때, 담배 한 개비에 관대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의 인심이 참 좋구나,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이지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담배가게에 들어섰을 때 세상은 달라 보였다.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잘 알지 못한다.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담배가게 딸이 아니던 시절엔 담배는 낭만이기도 했고 평등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담배가게 딸이 되었을 때 담배는 결국 한국사회는 희뿌옇고 독한 사회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IP *.221.4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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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0:19:55 *.169.54.201

언젠가 보았던 글귀가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삶은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같은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느껴야하는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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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3 09:21:22 *.143.230.48

이번 글 너무 좋네요! 다음에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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