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 조회 수 1238
- 댓글 수 2
- 추천 수 0
[내 삶의 단어장]
담배 가게 아가씨
나로 말하자면, 그 유명한 담배 가게 딸이다. 오래 전엔 아마도 ‘아가씨’로 불리었고 나름 청년이라 외치는 이들의 지랄 속에서 외출한 아버지 대신 가게를 보는 일은 고난도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해 젊은이랄 수 없는 그들을 비롯하여 가게를 찾는 동네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은연 중 느껴지는 이들의 질서정연함에 놀라곤 한다.
담배를 사는 사람들은 그렇다. 여간해선 담배의 품종을 바꾸지 않는다. 그 독한 내면의 집착에 박수를 보낸다.
때론 그 집착이 지겨울 수도 있다. 그러면 잠시 집착을 벗어 던지고 피던 담배를 바꿀 때가 있다. 대표적인 순간은 내 수중에 담배가 없을 때다. 이 때야 말로 품종전환의 적기다. 절대로 늘 사는 그 담배만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담배 한 개비를 피고자 담배갑을 열었건만 텅 비어있음을 발견할 때, 기쁜 듯 빈 갑을 멀리 튕겨 버리고 주머니를 뒤졌건만 돈 한푼 나오지 않을 때면 얼굴 색깔이 파리해 진다. 마침 그때면 더더욱 절실하게 담배에 대한 욕구가 살아나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방황한다.
그럴 때면 그들은 이제까지 본 모습 중에서 가장 순한 양이 되기도 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할 줄 아는 모습을 보인다. 그 어떤 담배라도 상관없다. 그 순간에는 개별적인 이름을 뚜렷이 가지며 독립적인 담배가 그저 ‘담배’라는 일반 명사로 뭉쳐질 뿐이다. 저렴한 담배이든, 독한 담배이든, 순한 담배이든, 남이 몇 모금 빨던 담배이든 상관없다. 담배, 한 가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안을 그들의 태도 때문에 어떠한 담배를 가진 자라도 은인이 된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 나눔에 대해서 사람들은 제법 관대하다.
그러나, 이 당연한 진리를 습관을 빗겨가는 순간이란 있기 마련이다. 그 예외 또한 일련의 흐름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들의 익숙한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지 않아 예측가능하다는 면에서, 말이다.
예외라면 예외! 이 동네에서는 ‘담배 한 개비 빌립시다’보다 ‘나, 담배 사줘’라는 말을 더 듣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딱히 이유도 없이 담배를 사달라고 하는 당당함에도 박수를 보낸다.
그럼 상대의 반응은 또 어떤가. ‘헛헛’하며 헛웃음을 켜면서도 담배를 사주는 사람이 제법 있다. 가만 보면 사달라는 사람은 늘 그래왔던 것 같고 사주는 사람 역시 늘 그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원칙은 있다. 어떤 원칙인가.
내 담배가 아니라 ‘딴 놈’ 혹은 ‘딴 년’에게 담배를 사 줄 때는 그 사람의 담배는 내가 피는 담배보다 꼭 가격이 낮은 담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용하게 일이 끝나지 않는다. 필시, 자기가 피는 담배보다 더 높은 금액의 담배를 사주지 않기 위해 소란은 소란을 부른다.
내가 4,000원짜리 디스나 라일락을 피건만 덥썩 6,000원짜리 에쎄 골든리프를 들고서 숨넘어갈 듯 졸라대면 바로 싸움이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뭣이, 쥐뿔도 없는 것이!”
“쥐뿔이 있건 없건 이거밖에 못 먹어!”
어쩌면 담배의 세계만큼 제 순수한 기호에 주눅 들지 않는 것이 또 있을까. 제 아무리 제일 싼 담배를 피워댄대도 “저런 싸구려 같은 놈, 가진 게 없으니 그 따위 담배나 피워대지”라거나 제 아무리 비싼 담배를 사 피운다 해도 “아, 그런 담배를 피우시는 분은 도대체 어느 고귀한 족속이기에?” 이따위 시선도 받지 않는다. 평소라면, 어차피 제 돈으로 사서 피는 경우에는 말이다.
나는 이 모습을 볼 때마다 줄 세우기, 선 긋기, 갑질이란 우리나라 사람이 가지는 민족성이 아닌가, 정체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흔히 말하는 부자들, 가진 자들은 정부가 절차나 목적 등 비합리적이고 무계획적으로 낭비하는 세금 낭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전혀 문제삼지 않는다. 아, 부자들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그러나, 자연재해나 인재로 인해 빚어진 사고로 인해 보상금을 책정하거나,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제공되는 보조금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고, 꼼꼼하다. 그리고 당연한 듯 조롱을 일삼는다.
절대, 내가 피는 담배보다 비싼 가격의 담배를 사서 피면 안 된다는 것! 이 논리는 익숙하게 듣는 이야기다. 보상금이나 보조금을 받으려면 받는 이들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을 받아도 되는 태도!라는 게 존재한다.
대패 삼겹살은 가능해도 생고기 삼겹살은 안돼!
시장통에서 산 메이커 없는 패딩은 가능해도 노스페이스는 안돼!
아니 선풍기면 되지, 에어컨이 왜 필요해?
나도 못하는 외식을 니들이 한다고?
왜 그렇게 밝고 화사한 색깔의 옷을 입었지? 좀더 어둡고 칙칙한 색이 맞지 않아?
…
아니, 뭐 그렇다고 치고. 그 태도는 뭐야? 그게 잘못됐잖아.
감사하게, 그냥 감사가 아니라 엄~청나게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생각만 하며 안되니까 표현하라고! 더 더 수구려서! 바로 그 모습으로 계속, 계속!
한때, 담배 한 개비에 관대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의 인심이 참 좋구나,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이지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담배가게’에 들어섰을 때 세상은 달라 보였다.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잘 알지 못한다.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담배가게 딸이 아니던 시절엔 담배는 낭만이기도 했고 평등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담배가게 딸이 되었을 때 담배는 결국 한국사회는 희뿌옇고 독한 사회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810 | [수요편지 16- 스승님과의 공저] [4] | 수희향 | 2017.10.25 | 985 |
3809 | [수요편지] 내가 사랑한 치앙칸 [1] | 장재용 | 2019.05.29 | 985 |
3808 | [금욜편지 101- 책쓰기와 글쓰기의 차이점] | 수희향 | 2019.08.16 | 985 |
3807 | [용기충전소] 하면 할수록 쉬워져! [2] | 김글리 | 2020.08.13 | 985 |
3806 | 화요편지 - 당신을 위한 친절한 노년세계 가이드, 코민스키 메소드 | 종종 | 2022.04.26 | 985 |
3805 | [일상에 스민 문학] 허클베리핀의 모험 | 정재엽 | 2018.07.18 | 986 |
3804 | [수요편지] 마당에 열린 망고 [2] | 장재용 | 2019.01.30 | 986 |
3803 | [화요편지]10주차 워크숍_나, 세상의 중심 | 아난다 | 2019.11.05 | 986 |
3802 |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 제산 | 2020.02.10 | 986 |
3801 | [수요편지] 깨어남에 대해 [3] | 김글리 | 2022.01.05 | 986 |
3800 | [수요편지] 별을 보는 방법 [1] | 불씨 | 2023.05.03 | 986 |
3799 | [수요편지] 월급쟁이 | 장재용 | 2020.01.07 | 987 |
3798 | 책읽기의 기쁨을 다시 찾기 위하여 | 제산 | 2019.12.30 | 988 |
3797 | [금욜편지 24- 스승님 소천] [2] | 수희향 | 2018.02.09 | 989 |
3796 | 타임캡슐, 10년의 꿈을 드러내다 [2] | 차칸양 | 2018.05.29 | 989 |
3795 | [금욜편지 65- 기질별 인생전환 로드맵- 5번 인색한 은둔자] | 수희향 | 2018.11.30 | 990 |
3794 | 화요편지 - 생존을 넘어 진화하는, 냉면의 힘 [1] | 종종 | 2022.07.12 | 990 |
3793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디오니소스의 실수 [1] | 알로하 | 2019.02.23 | 991 |
3792 | [수요편지] 존 스튜어트 밀과 월급쟁이 | 장재용 | 2020.01.21 | 991 |
3791 | [용기충전소] 여행자의 눈이 필요할 때 | 김글리 | 2020.08.21 | 9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