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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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단어장]
차렷, 억수로
벽,에 바짝 기대어 섰다. 동생과 나, 그리고 동네 아이 한 명 총 셋이었다. 벽에 등이 바짝 붙어 있는 채로 어쩌면 더 이상 갈 곳이 막혀, 갇힌 채로.
그날 우리 셋 앞에는 나무 막대기를 든 또 다른 아이가 있었다. 골목 끝자락 집 중학생이었을 게다. 우리 셋에게는 아이가 아니었던 그 애 앞에 어쩌다 돌이 튀어나온 담벼락에 등을 맡긴 채로 꼼짝없이 그 꼴로 있어야 했었는지 시작에 대한 기억은 없다.
교관처럼 나무 막대기를 휘휘 휘저으며 으르렁거리는 중학생과 대척점에 있는 우리 셋 중엔 내가 연장자였다. 어린 남동생은 내 등 뒤에 서서 눈망울을 꿈쩍였다. 동생 때문에라도 어떡하든 집으로 잘 돌아가기 위해, 무사히 가던 길을 가기 위해 힘껏 주먹을 쥐었다. 그렇게 전투적으로 선 채 그 남학생의 일장 연설을 들었다.
함께 어울려 놀던 기억도 없고 오가며 특별히 부딪힌 기억도 없던 남학생이 대장처럼 누비던 그날 그 골목에는 그 꼴을 보고 이상타 여길 어른 하나 지나가지 않았다.
“따라해라! 언능!”
무엇을?
“그거는 틀렸다고. 그거는 말이 안 맞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엄청, 엄청,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내게는.
“억.수.로!!”
난 입도 뻥긋하지 않았지만 동생도 아마 그러했던 것 같다.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더더욱.
“알긋나? 엄청이 아이라니깐.”
그러니까, 어쩌면 시작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엄청 그거는 쪼매이뿐이 아이라고. 그런 말은 너거나 쓰고 여기서는 억수로다. 알긋나? 억수로가 이빠이 많다는 말이지, 니처럼 엄청은 택도 없다니까는. 여기서는 여기 말을 써야지. 자, 따라해라. 억수로라고!”
우리, 엄청 많이 사자? 골목을 걸으며 동생에게 이런 정도의 말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열 살이었고 동생은 일학년이었다. 새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전학을 왔다. 이사 온 그 골목은 햇볕 한 줌 없는 어둠의 골목 같았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는데, 낯선 곳에서 난 꽤 오래도록 진득한 어둠에 휘감긴다고 생각했다. 함께 뛰어놀 친구들이 그 골목엔 없었고, 나이 따위는 잊고 담벼락을 뛰어내리며 온 동네를 누비는 아이들의 무리는 더더욱 없었다, 대신 내가 겪은 세계는 뭐랄까. 그냥 경계와 단절, 끝없는 구분과 분류의 연속이었고 또한 짓누르고 억압하면서 동시에 과시하는 사람들이 더욱 눈에 띄는 세계였다. 어린왕자 속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는 말이 실현되고 있는, 그 문장을 절절하게 이해하게 해주는 세계였다고나 할까.
그렇게, ‘엄청’이란 단어는 ‘억수로’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외치던 경상도 사나이의 외침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억수로’라고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경상도 말에 동화되어 간 후에도 말이다. 경상도말이 입에 붙지 않아 계속 서울말로 나오곤 하는 단어가 몇 개 있다. 어릴 적 이미 기억에 각인되어서인데, 굳이 무엇보다 강하게 각인된 억수로만은 전혀, 입에서 나가질 않았다.
그 조그마한 아이 셋이 벽에 붙어 서서 차렷 자세로 서 있어야 했던 날을 생각해 본다. 무엇이 그렇게 ‘불편’하여 어린아이들을 불러다 줄세워 놓고 윽박질렀던 걸까. 아니, ‘불쾌’였던가. 물론 그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말이다. ‘억수로’는 경상도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며 동화되는데 장벽으로 존재하는 말이었다.
어쩜 내가, 막 전학을 와서 아직 낯선 경상도 사나이의 억양과 말투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좋은 뜻이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보려 한 날도 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며 지난 기억을 전환시킬 이유는 없다. 실제로 난 그런 일을 겪었고 이후로도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무수히 만났으니까. 꽤 오래 ‘왜 서울말을 하냐’는 말을 들었고 서울말을 쓰는데서 오는 막연한 동경과 지나친 차별의 언어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경상도에서 서울로 이사를 갔더라도 그곳의 누군가도 어린왕자 속 어른들과 같은 질문을 해댔을지 모른다. 뉴스에 나오는 얘기들처럼, 드라마에 나오는 얘기들처럼 다름에서 오는 당연한 듯한 차별의 말들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지, 무엇을 듣고 자라는지, 살아가는지와도 연결되는 문제다.
경상도에 살면서 오래도록 열중쉬어 없이 차렷으로 있어야 하는 일들을 많이 겪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여성’이라서였고, 또 하나는 ‘정치성’이었고, 그리고 또 하나를 들자면 ‘야구’였다.
어릴 적 모든 사람들이 롯데를 응원하는데 놀라며 ‘엄청’ 잘하는 팀인가보다 막연히 생각했고 왜 그토록 해태를 저주하며 욕을 해대는지 몰랐지만 그럴 때마다 그 거북하고 기막힌 욕설들에 몸서리쳤다. 그리고, LG팬이라서 외로웠다. 야구를 통해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 차별을 알게 되었는데, 적처럼 간주하며 내뱉는 욕설의 강도가 여성과 정치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끊임없이 겪고, 본다.
지속되는 차별, 차별에서 이어지는 혐오의 언어와 정서가 누군가에겐 마치 권리인 듯이 행해지는 모습에 우리 삶에 ‘세뇌’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누가 나에게 ‘억수로’라고 강요하고 있는지, 누군가는 왜 ‘억수로’라고 할 수밖에 없는지, ‘억수로’라고 말하지 않으면 배제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고 자꾸 어떠한 집단들이 부추기는 것만도 같다.
여기, 이 세상의 시작과 끝 귀퉁이에는 내가 전학을 와 마주친 그 골목의 중학생이 나뭇가지를 들고 서서 외치고 있는 것일까. 차렷 자세를 풀지도 못하고 논리도 감성도 없는 단어들을 배출하며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며 윽박지르는,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그런 중학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