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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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사실 적지 않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많을수록 삶은 무거워집니다.
연말이라 회사에서는 평가라는 것을 합니다.
사업부에 따라 팀에 따라 그리고 개인에 따라 점수가 매겨집니다.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나 다음 해 연봉이 결정됩니다.
평가를 A를 받아서 나름 만족하고 있는데 다른 팀원들이 모두 자기 빼고 A+이라는 사실을 알면 어떨가요?
작년에는 한푼도 못받았는데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100만원 보너스가 통장에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서 팀 동기에게 전화를 겁니다.
"야~ 보너스 나왔더라~아싸~^^"
"어, 그러네? 200만원 들어왔네! 아싸~^^"
"어?? 어....ㅡ.ㅡ;;;;"
'아싸'가 'what the f...'이 되는 순간입니다.
가족행사에 회사일 때문에 바빠서 못 온다는 아들이 실은 여자친구와 여행을 간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서운한 마음에 한참동안 아파트 베란다 창만 바라봅니다.
아들은 엄마가 서운해할까봐 거짓말한건데 말입니다.
나름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사석에서 자신을 안 좋게 말했다는 얘기를 3자를 통해 듣게 되면 관계를 고민하게 됩니다.
전해지는 과정에서 왜곡된 이야기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나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다가 알게 되면 나 역시 고통스러워집니다.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며, 우린 다만 폭력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라는 매를로 퐁티의 말이 떠오릅니다.
분위기를 바꿔서 같은 말인데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는 것은 무엇이든 가슴 아프긴 매한가지이지만,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읊조림 대신 머리가 번쩍 깨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정도면 맡은 업무 진행하는데 문제 없다고 나름 스스로의 역량에 자신만만하다가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모르고 있던 것들의 존재를 지각하게 되면서 본인이 우물안 개구리였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아... 내가 얼마나 바보처럼 보였을까 뒤통수가 아려옵니다.
메타인지가 발생하는 순간입니다.
메타인지는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면 결코 더 나아질 수 없습니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본의 아니게 알게 되었어도 모르는 척 덮어두고 사는 지혜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나 일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는 태도,
삶에는 이 두 가지 모두 필요한 것 같습니다.
2023년 마지막 수요일이네요.
올 한 해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듯하고 행복한 연말연시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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