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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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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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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8일 16시 35분 등록

지난 12월 11일을 마지막으로 휴직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은 남은 연차를 소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연차를 모두 소진함과 동시에 출산 전후휴가를 받고, 그 이후에 육아휴직을 들어가게 됩니다. 회사를 다닌 이래로 가장 긴 휴직입니다.


마지막 날은 참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오래전 같은 팀에서 일했던 책임님들과 마지막 점심을 먹고, 회사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디저트를 먹으며 마지막 티타임을 하고, 짐 정리를 한 뒤, 팀장님과 담당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회사를 조금 일찍 빠져나왔습니다. 고맙게도 같은 팀원들이 꽃다발과 선물, 편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선물이 든 가방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지하통로를 걸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회사를 뒤로하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긴 통로를 걸어가면서, 제 뒤로는 인생의 어느 한 단계의 문이 닫히고, 제 앞으로는 그다음 어느 단계의 문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시작에서도 치히로가 이사 갈 동네에 거의 도착해서 꽃다발을 손에 쥔 채로 눈을 뜨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눈을 뜨고, 주인공 소녀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지요. 그런 시작과도 같은 순간이 아닐까 하고 혼자 조용히 상상하며 걸었습니다.


회사 생활 13년 차. 생각해 보면 13년 동안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원하던 바는 아니었지만 제 한 해의 큰 계획은 언제나 회사의 연간 일정에 매여 있었습니다. 연초에는 연말 정산을 하고 연중 업무 목표를 작성하고, 출장 보고서를 쓰고, 여름에는 여름휴가를 가고, 가을에는 사업 보고회를 준비했습니다. 회사에 나와서 업무를 하고 집에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그 이외의 방법으로 하루 일정을 짜는 법은 알지 못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새삼 제 시간의 주인이 제가 아니라 회사였고, 그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가지고 제가 따라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회사가 아니라 제가, 아기라는 새로운 일과로 채워진 하루하루를 스스로 운영해야 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나 자신의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고, 전체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이가 좀 커야 가능할 것 같네요.)


여의도 지하통로에서 역으로 이어지는 표지판을 보면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리고 간판을 지나 뒤돌아보면 ‘어서 오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익숙한 삶에게, 새로 만날 일상에 인사를 건네며 올 연말을 마무리해봅니다. 여러분의 한 해는 어떠셨나요? 산뜻한 마무리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즐겁게 맞이할 준비를 해봅시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P *.166.8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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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9 10:39:07 *.97.54.111

연초 퇴사한 직원이 회사의 약점을 잡아 각종 형사고소, 고발, 민사소송으로 한 해를 고소, 고발, 소송 대응으로 시작해 소송으로 끝나가네요.
경찰서 조사실에 몇 차례 불려가 조사도 받고 어떤 사건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지만, 어떤 사건은 회사의 열악한
자금 사정으로 변호사 없이 직접 답변서를 쓰고, 반소문도 쓰면서 보냈네요.
이러한 과정이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소중한 나의 자산으로 남아있는 것 같고, 더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어니언님도 처음으로 가보는 길을 가지만, 겨울이를 기쁘게 만나고, 겨울이와 기쁨과 고통을 겪으며, 시야가 넓어지고 더욱 강해지기를 바랍니다.
금년 한 해도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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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9 17:23:31 *.167.58.183

늘, 진솔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마도 님도 그 길을 깨닫고 그 길에 들어 선 것 같군요 ! 

그 아주 오래된 새 길,  모두가 갔으나 언제나 새로운 길,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배워서 오직 나만 갈 수 있는 그 길 말입니다. ^-^ 

몸과 마음이 온건한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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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4 08:28:12 *.247.144.146

직장인으로써 공감가는 글들을 재미있게 그려주시어 잘 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축복이 들어오셨군요^^ 새생명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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