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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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 그 무엇으로부터도
호수 위에는 여전히 거위와 머스코비 오리가 쌍을 이루며 움직이고 있다. 종이 다른 두 생물체의 인연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나 호수를 유영하는 많은 조류들 속에서 유독 두 마리가 붙어 있음은 호수를 처음 찾은 그 어떤 생물체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막연히 알고 있는 지식을 끄집어내어 오리의 각인이려니, 그리하여 오리가 거위를 어미로 여기며 따르는 것쯤으로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넓은 호수에서도 머무는 장소가 거기서 거기쯤인 둘의 모습을 알게 된 건 사계절이 지나고도 훨씬 전이었는데 그냥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곤 한다. 두 새의 가족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호수에 무리지어 있는 많은 새들 중에서 왜 그들만이 무리없이 사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딘가로 흘러가지 않는 두 텃새의 마지막을 생각해보다 조금, 서글퍼졌다. 오로지 둘만이 있는 듯한 호수 속 세상에서 어느 날 하나가 사라진다면…….
어떠한 인식체계가 작동하기에 각인이 발동되는 것인지, 각각의 가족들이 나타난다면 자신과 모습이 같은 가족들에게 동요할까 궁금증이 일었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오리 새끼’에서 미운오리는 결국 제 가족인 백조를 찾아간다. 그들에게 끌리며 가족임을 인지하게 되는데 그건 그만큼 힘겨운 일을 겪고 오리와 다른 새들에게 배척당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각인으로부터의 탈피는 가능한가. 그냥 두 새들을 바라보다 스며든 물음이었다.
방송에선 종종 종을 뛰어넘어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동물의 이야기를 다루곤 한다. 방송카메라가 주어진다면 그들의 시작과 사연을 들을 수 있을까. 새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이가 없을 테니, 꾸준히 지켜본 자가 없다면 그 이야기는 만들어질 리 없다. 그리하여 실제의 상황과 사실과는 상관없이 이야기는 그들을 바라보고 인식한 대로 이야기를 발화(發話)한 이들의 관점에서 전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각인(imprinting)에 대한 발화는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콘라트 로렌츠를 통해 발전한다. 각인은 동물이 태어났을 때 처음 시야에 들어온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 애착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처음 보게 된 움직이는 물체가 어미인 경우가 많기에 어미를 졸졸 따르는 경우가 대표적인 각인 사례다. 물론 조류뿐만 아니라 포유류, 어류, 곤충류에서도 각인은 이루어지며 짝짓기 등 종에 따라 각인의 시기와 내용은 다르다고 보고되고 있다. 또한 각인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어 그 시기 전후에는 대상에 대한 애착 형성, 각인이 불가능하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어떠한 시기가 지나면 각인에서 벗어나기도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각인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떡해야 할까. 저 둘은 마냥 행복하고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늘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뜬금 이 둘을 보며 각인에 집중되어 이런 생각 따위를 하고 있는 것도 오로지 나의 관점, 내 지금 상황과 맞물린 생각일 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이들의 모습을 행복한 상황과 관계로 여기지 못하고 있어 더더욱 의문은 종결되지 않고 생각은 뻗어나가기만 할 뿐이다.
거위와 머스코비 오리의 현재의 관계는 누구의 ‘각인’ 상태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거위와 머스코비 오리가 사는 세상은 더없이 작게만 보인다. 호수의 한 귀퉁이에 머물러 있을 뿐인 두 새를 보며 종족을 뛰어난 사랑이라는 놀라움으로 바라보기보다 안쓰러움에 더 마음이 꽂혀 버린 나도 참 애잔하긴 하지만 왜인지 벗어날 수 없는 저 두 새의 상태가 새뇌, 아니 세뇌인 것만 같아서, 그런 것만 같아서 달리 생각되지 않는다. 단 한번이라도 그 새들을 호수의 다른 곳에서 보았다면 다르게 생각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언제쯤인지 모르게 각인되어 행동이 굳어져 버린 것이 비단 저 두 새들만은 아니다. 각인은 조류만의 것이 아니니 멀리 돌아볼 것 없이 인간에게서도 뚜렷이 제법 오~래 나타나고 있다. 그 변하지 않는 길고 오랜 세월의 ‘어떤 각인’을 감히 칭송할 수 없는 것은 늘 부정적으로 ‘세뇌’된 인간의 행동 패턴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점점 더 과격해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내 것에 대한 집착과 내가 아는 세상만이 옳다고 소리소리 외치기만 한다. 입은 끝없이 열려 있으나 귀는 한없이 닫혀 있다. 물론 그들 나름으로 이를 절대적 신념이라 하겠지만. 혹은 절대적인 믿음이라거나.
왜 어떤 이들의 신념은 다수의 많은 이들을 눈물 흘리게 하는가. 기쁨과 감동의 눈물이 아닌 슬픔과 아픔과 분노의 눈물을!
호수 한 귀퉁이, 지나치게 한 귀퉁이에 눌러 앉아 꽤애액 소리지르며 파닥이는 거위와 오리가 있다. 호수를 바라보는 일도 호수의 다른 곳을 가보는 일도 없는 둘 중 하나는 제가 인식하는 세상을 만끽하는 ‘각인’의 주체이지만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해 ‘가스라이팅’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저 세뇌의 결말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생각과 행동을 가두는 것이 나 혼자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타인까지를 끌어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아찔해진다.
과거의 암울한 시대를 ‘각인’한 꽥꽥이는 거위에게 꽥꽥대지도 못하는 오리가 너무 넘쳐난다. 2024년은 내 어린 시절 공상과학으로 그려냈던 기대 가득한 미래였는데, 달탐사도 할 수 없고 우주선도 탈 수 없는 미래였다. 나는 그때 2020년을 그려내는 공상과학 글짓기나 그림그리기에 우주 따위가 아니라 1970년대를 1980년대를 그렸어야 한다. 진정한 타임머신의 이 세계를.
각인이란 단어가 세뇌와 가스라이팅으로 치환되는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을 머릿속에 각인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생각한다. 세상을 뒤엎을 만큼 파탄하다거나 무지하다거나 공감 따위는 모르는 그런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으며 그 무엇으로부터도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을 삶을 살아가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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