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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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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6일 20시 55분 등록

[내 삶의 단어장]

호박, 마법 또는 저주



   봄이, 온 건가?

  비는 내리지만 매서운 바람기는 잦아들었다. 곳곳에서 봄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도 전해져 온다. 계절은 기후변화에도 꿋꿋하게 봄을 알려오고는 있다. 오랫동안 푸석하게 닫혀 있던 땅도 조금씩 들썩이는 게, 입춘(立春)이란 이런 걸까.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문기둥에 써 붙이지는 않았지만 2024년에는 좋은 기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없지는 않다. 글귀를 써 붙이면 좋은 기운이 흘러들어오고 저주를 퍼부으면 그것이 실현되는지 의문이 드는 것과는 상관없이.

  늘 그러하듯이 계절과는 무관하게 땅 위를 점령하는 잡초 무리 사이로 봄이면 쑥 튀어나오는 풀들이 있다. 풀들을 캐고 꺾어 나물을 만들며 엄마의 봄은 시작된다. 올해 엄마의 봄은 더 늦게 찾아 올 것이기에 엄마의 봄을 불러들이기 위해 산과 들을 다니며 몇 바구니쯤 쑥을 캐어 놓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때에도 벌써 쑥을 캐지 못할 것에 심란해 하던 엄마이니 만큼 이제 가까워진 봄에 쑥 이야기는 계속되리라. 엄마의 몸이 언제쯤이면 쑥을 캘 수 있을 상태가 될지 알 수 없는 시간은 흘러 이렇게 봄은 오고 있고 나는 불쑥불쑥 쑥을 꼭 캐러 가야지 다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엄마의 사계절은 늘 그렇게 나물을 캐고 작물을 키우고 거두는 일과의 연속이었다. 찌개가 한창 끓고 있을 때에도 엄마는 냉장고가 아닌 텃밭으로 고추와 파를 가지러 갔다. 일찌감치 도마 위엔 그 텃밭 출신 호박과 가지가 가지런히 잘려 있었다. 어떤 날은 콩이 잘 익었다고 함박웃음을 지었고 넘쳐나는 상추를 뽑아 이곳저곳 나누며 또 웃음 지었다. 가을이면 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을 대비했다. 상추며 파며 고추는 마트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밭에서 뽑아 먹는 것이 당연한 듯 여겨지는 시간이었다. 엄마는 어둠이 물러나기 무섭게 텃밭으로 가 엄마의 사랑스러운 농작물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배춧잎을 갉아먹는 달팽이도 잡고…….

  출근 준비를 하려고 방을 나서는 그 시간에도 엄마는 거실에 있지 않았다. 내 방 창문 아래 텃밭에서 들리는 엄마 목소리, 귀 기울이지 않아도 지나는 사람들과 풍성하게 자란 가지와 호박, 토마토와 콩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예쁘게 잘 키운 딸이 아니라 예쁘게 잘 키운 농작물을 자랑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밝았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텃밭에서 들리는 엄마의 노랫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했던 것도 같다.

  그 텃밭의 풍성한 수확은 내가 먹고 또 먹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텃밭을 보는 풍경은 좋았다. 매번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는 것도 못 들었는데 텃밭은 늘 채워졌다. 싹이 자라면 이번엔 어떤 작물일까 궁금했고 그 자라는 모양을 기다리는 재미도 있었다. 엄마가 심은 작물이 얼마만큼 자라고 있는지 얼마나 잘 자랐는지 얼마나 풍성하며 맛도 좋은지를 얘기하는 엄마에게 ‘그렇네’, 심드렁하게 답하기도 했지만 그러면 살짝 눈 흘기는 엄마였지만, 농작물을 얘기할 때면 늘 엄마의 마음이 행복으로 벅차있다고 생각했다. 그 활기와 충만함 가득한 엄마를 보는 나 또한 좋았다. 그랬다. 엄마의 텃밭은 사랑스러웠다.

햇살이 창문을 때려 비추는 날임에도 평소와는 달리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유달리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었고, 그 소리가 정확하게 어떤 의미를 담은 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뛰쳐나갔다. 누군가를 향한 저주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은 엄마였다.

  “에이, 가다가 넘어져라. 삼년 동안 재수가 없어라”

  그런 말이었다. 잔뜩 화난 어조로 퍼붓는 엄마에게 아침부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놀라운 마음과 더불어 그때까지 누군가를 향해 그토록 모진 말을 하는 엄마를 본 건 처음이었기에 놀라운 마음은 더했다.

  “무슨 일인데?”

  가라앉지 않고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한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웃었다. 아주 크게. 편을 들어주지는 않고 웃어젖히는 나를 보며 엄마는 소리쳤다.

  “내가 어제도 보고 딱 오늘 따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빛깔이 좋게 탐스럽게 잘 익은 건데, 그걸 그걸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걸 들어와서 톡, 떼 가고!”

  “호박 하나에 삼년은 너무 하잖아”

  “뭐가 너무해! 내가 얼마나 아끼고 공들였는데. 오늘 따면 딱 알맞은 걸, 그걸 하필 오늘 딱, 톡 떼 가지고 가!”

오랫동안 웃고 또 웃는 내가 얄미웠을 것 같다. 호박 도둑을 향한 엄마의 노함을 언니들에게도 전화하여 널리 퍼뜨렸으니까.

하긴 정말로 탐스럽게 열린 호박 덩굴에서 톡 떨어져 나간 자리를 보니, 아직 덜 영글은 다른 호박을 보니 뭔가 모르게 휑하게 느껴지긴 했다. 호박 도둑 또한 아무거나 가져가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엄마는 다른 호박만큼은 열심히 지켜낼 것이라는 각오를 다졌고 그런 엄마의 삼엄한 경비를 받으며 호박은 좀더 일찍 식탁에 올랐다.

  나는 가끔 동그란 호박을 볼 때마다 신데렐라 이야기 속 마차로 변한 호박을 떠올린다. 호박은 역시 마법 아니면 저주에 걸릴 만한 식물에 딱이다 싶으면서 그 호박 도둑은 울 엄마의 저주에 걸렸을까, 가끔씩 궁금해 했다.

  새해가 된지 얼마되지 않았건만 두 건의 농작물 절도 기사를 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가까운 김해의 딸기 농장에서 밤사이 수백 kg의 딸기를 도난당했고 시설 하우스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범인 찾기 어렵다고 했던,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에 큰 타격이라며 안타까워했던 딸기 절도 사건. 범인은 동네 주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사. “시골 인심이 야박하네”

  시골에서 머위를 기르고 있는 어떤 이가 외지에서 온 4명의 중년 여성들이 자신의 머위를 마구 따고 있어서 개인 사유지 농작물을 마음대로 들어와서 채취하면 안된다고 했더니 한 말이란다. 실랑이가 있었고 결국 그들이 딴 머위대를 던져 놓는 걸 그냥 가져가 먹으라고 보냈다고. 그들이 떠난 자리는 초토화됐고 머위를 기르던 그 사람은 아무 의욕이 없어 그냥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고. 이 기사를 보며 나는 머위에게도 저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옛날 울 엄마의 호박처럼.

  내가 호박 도둑을 저주하던 엄마에게 웃던 모습도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들렸을까. 야박하게 그까짓 것쯤하며 흘려버린 딸이 얼마나, 얼마나 밉상이었을까. 엄마의 호미질과 매번 물을 받아 계단을 오르내리며 텃밭에 들였던 애정을 떠올렸다. 그때 그건 엄마가 온 마음을 다해 정을 쏟아부은 것이었다. 그 애정과 사랑을 도난당한 상실감을 너무 가벼이 여겼다. “3년이 뭐야 5년, 아니 7년은 재수 없어야지”라고 말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반성한다.

  세상에 도둑놈이 너무 들끓는다. 보이지 않는 틈을 타서 도둑질하다 못해 대놓고 뻔뻔스럽게 도둑질하면서 “야박”하다고 궁시렁대며 버럭버럭 하는 이들이. 시골인심이란 제 농작물을 빼앗아가도 그대로 두어야 하는 건가. 우습게도 시골인심처럼 누군가에게는, 어떤 집단에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여기고 퍼붓는 사람들이 있다. 특정한 집단에게만 요구하는 절대적인 선, 절대적인 도덕과 올바름. 그러면서 도덕이며 질서를 지키지 않는 이들......

  내가 꿋꿋하게 길러 온 호박을 쉽게 야박타령하며 빼앗으려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내가 애정하며 열심히 키운 호박을 던져주리라.  평생, 재수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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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7 09:42:10 *.97.54.111

어렸을 때는 집 주위가 온통 텃밭이고, 논밭이었지요.
텃밭에서 바로 딴 가지와 호박, 부추, 파가 다 반찬 재료였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우리 어머니도 이런 텃밭을 가꾸면서 지내시면 좋으시련만
요양원에서 하릴없이 보내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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