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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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지에서 행복에 대한 이런 저런 잡설을 늘어놓으면서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아니 찾아오는 것이라고 얘기했었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인줄 알면서도 우리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마찬가지로 행복이라는 것을 측정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행복을 정의하고 가치를 따지고 그 양을 어림짐작하려 합니다. 공리주의자로 유명한 제레미 밴덤은 행복을 계산하는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제레미 밴덤의 행복계산법의 주요 인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강도(intensity)
2)지속도(duration)
3)확실성(certainty)
4)근접성(propinquity)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짐작이 가능 단어들이죠?
추가옵션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옵션 1) 다산성(fecundity)
옵션 2) 불순도(impurity)
옵션 3)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effect on others)
옵션 1과 2는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네요. 다산성은 새로운 쾌락 내지 고통을 낳을 가능성을 말합니다. 플러스값이면 쾌락쪽일테고, 마이너스값이면 고통쪽이겠죠. 불순도는 고통이나 쾌락이 반대로 바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각 인자들에 개인별, 상황별로 다른 상수값(constant)을 곱한 다음, 다 더하면 행복값이 나올텐데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과는 다 상대값일테니 수치에 관심을 둘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그보다는 행복을 결정짓는 요인들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주요 인자들보다 현대인들에게는 옵션 3이 더 중요한지도 모릅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타인의 삶을 볼 수 있는 채널들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보다 어쩌면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마침 철학자인 몽테스키외가 한 말이 폐부를 찌르고 들어옵니다.
"만일 우리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눈에는 남들이 실제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행복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볼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진짜 행복인지는 되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하십니까?" 라는 누군가가 불쑥 던지는 질문에 "행복합니다!"라고 당차게 말하는 대신, 주저주저하며 '과연 난 행복한가...'라는 독백을 되뇌일 수 밖에 없다면 행복이란 것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서인국 교수는 행복은 결국 본능에 닿는다고 말합니다. 매슬로우의 자아실현과 같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결국 성욕, 식욕에 수렴한다는 얘기죠. 외모와 행복의 연관도에 대한 실험을 했는데요. 자신이 다른 사람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 즉 객관적 미모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과 관련이 없었다고 합니다. SNS를 많이 하는 현대인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약간 의외죠. 실험결과로는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 즉 주관적 미모가 행복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냐보다는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행복이 좌우된다는 겁니다.
그럼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좋아하느냐 아니냐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원래 태어날 때부터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 유전적이라는 거죠. 더 정확히 말해서는 외향성이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서인국 교수는 외향성은 일종의 사회적 위도라고 말합니다. 이 값이 높을수록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이 높아지고, 바로 이 점이 행복에 절대적 기여를 한다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해 저 역시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선천적 기질은 행복의 여부가 아닌 단지 행복의 양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행복은 99% 상대적입니다. 휴양지에서 야자수 그늘 아래 선베드에 누워 모히또를 홀짝거리고 있을 때 느끼는 행복감에는 남들이 일하고 있는데 나는 놀고 있다는 사회적 상대성이 작용합니다. 또한 어제는 일했는데 오늘은 놀고 있다는 개인적 상대성도 존재합니다. 만약 돈이 많아서 매일 몰디브 고급리조트에 퍼질러 있다면 개인적 상대성이라는 것은 없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상대성으로 인한 행복은 유효합니다.
햇볕이 모든 토지의 기온을 높이듯이 좋은 사회적 경험은 개인이 가진 선천적 기질과 무관하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렇기에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있어 좋은 사회적 경험을 가지는 것이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외향적인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속에서 행복과 에너지를 얻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니 오히려 사회적 관계가 적은게 더 행복감을 주지 않냐는 거죠. 물론 많은 관계는 내향인들에게 벅찰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관계의 질이겠죠.
어떤 행복연구결과에 따르면 열대나 온대보다 한대기후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더 높았다고 합니다. 이 차이는 식량확보에 관련된 생존문제로 추정됩니다. 더운 지방에는 코코넛, 바나나 등 먹을 것이 널려 있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을 동기 요인이 약합니다. 하지만 추운 지방에서는 식량확보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긴밀히 협력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사이좋게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회적 관계가 행복감을 늘려준다는 것이 연구결과의 결론입니다.
변경연 구성원들 대부분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니코스 카쟌챠키스가 쓴 <영혼의 자서전>에 나오는 제가 좋아하는 글귀를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나는 그 짐승이 내 체취를 맡고 도망치지 않도록 숨을 멈추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서 나도 모르게 아주 작디 작은 외침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여우는 소리를 듣고 어느 방향으로 달아났는지 미처 내가 찾아보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인간의 행복이란 항상 그렇다고 나는 생각했다.."
굳이 소리 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느끼면 됩니다. 잡을 수 없는 것이 행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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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끝의 니코스 카쟌차키스의 글과 대비되는 글이 되겠습니다.
오래전에 나비와 곤충사진에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매크로렌즈와 카메라만 있으면 곤충에게 가까이 가서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부근만 가도 전부 도망가서 촬영할 수 없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다음 알게되었지요.
풀밭에 들어가기 전, 한참을 쉬면서 자연과 동화되기,
온몸에서 긴장을 풀고 호흡도 편하게 하기,
좋아하는 곤충에게 사랑한다는 사인을 보내기 등등, 이렇게 해도
도망가는 친구들이 있지만, 내 모델이 되준 친구들이 많습니다.
사람이나 길냥이나, 곤충이나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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